2008년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득템한 영화다. 무임승차로 나라의 복지를 탐하는 사람들(일명 잉여 인간)을 찾아 벌하는 영화. 잔혹하고 심각할 것 같은 주제를 해학적으로 풀어서 내 뇌리에 확 박혔다. 영화가 괜찮으면, 관람 후 그 영화의 정보를 캐낸다. 덴마크 영화. 덴마크? 그 당시만 해도 내게 덴마크란 나라와 연관된 검색어는 2개뿐이었다. 배드민턴을 잘하는 나라, 그리고 덴마크 우유. 정보의 흐름은 영화에서 덴마크로 넘어갔다. 덴마크를 검색하니 익숙한 키워드들이 즐비했다. 레고, 칼스버그, 안데르센, 인어공주. 그리고 덴마크의 직업학교 ‘프리 김나지움’. 히피 학교이지만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개인의 특성을 살려주며 선순환이 도는 교육 현장. 나에게 이 모든 게 덴마크를 환상으로 이끌었다.
코펜하겐의 중심부부터 시작하자.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길 건너면 보이는 곳이 시청 앞 광장. 그리고 거기에서 시작하는 코펜하겐 최대 번화 거리가 바로 스트뢰이어트 Strøget이다. 시청 앞 광장에서 콩겐스 광장을 잇는 길이기도 하다. 스트뢰이어트는 덴마크 언어로 ‘걷는다’란 뜻이다. 관광객이나 시민들이 오감을 즐기며 걸을 수 있는 보행자 전용 거리다. 길 양쪽에는 각종 상점과 레스토랑 및 카페들이 늘어서 있으며, 사람들은 여유롭게 앉아서 휴식을 즐기고 있다. 거리 곳곳에서는 고유의 예술을 선보이는 아티스트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스트뢰이어트 거리 옆으로 나 있는 골목으로 빠지면, 중세의 향취가 느껴지는 중후한 교회와 화려한 색채의 건물들이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거짓말이 아니라 코펜하겐의 거리에는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더 많다. 물가가 워낙 높으며, 그중 자동차 세금도 부담스럽기 때문에 덴마크는 국회의원도 자전거를 주로 이용한다. 출근길, 사거리에 신호를 기다리는 자전거 행렬이 생각보다 길다. 큰 도로에서는 한쪽 차선만 100대가 넘는 자전거가 신호대기를 받고 있다. 덴마크는 자전거전용도로가 잘 되어 있어서, 우리나라처럼 도로에서 자전거 통행자들을 무시(?)하지 않는다. 자전거가 우선이다. 물론 그 이전에 보행자 우선이기도 하고…
자전거가 운송의 기능뿐 만 아니라 운반의 기능도 함께 갖춰져 있다. 앞바퀴에 바구니가 있는 건 기본이고, 유모차를 겸한 자전거가 거리에 즐비하다. 또한, 개인 편의에 따라 자전거에 다양한 장치들을 하고 다닌다. 자전거 선진국이란 말을 눈으로 확인하는 현장이다. 자전거 복장이 따로 없다. 쫙 달라붙는 자전거 전용복장보다는 정장을 입고 자전거를 이용하는 국민이 많다. 특히나 바이킹 후손이다 보니, 훤칠한 체형에 슈트 차림 한 젊은 남녀들이 자전거를 타고 움직이면 시선이 간다. 짧은 치마를 입고 아슬아슬하게 페달을 밟는 아가씨도 적지 않다. 덴마크에는 Cycle Chic란 말이 있다. 사이클 시크는 자전거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시작된 자전거 라이프스타일 운동으로 ‘패셔너블한 일상복을 입고 도심과 어울리게 자전거 타기’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다. 사이클 시크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옛날처럼 자전거에 바구니와 휀더를 장착하고 자전거 외에 관련된 제품은 사용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로 헬멧을 착용하지 않는 것을 들 수 있다. 사이클 시크에서는 헬멧의 법적 의무착용은 오히려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이용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코펜하겐의 출퇴근 시간대의 수많은 자전거 이용자 중에 헬멧을 쓴 사람보다 안 쓴 사람이 더 많다. 이는 코펜하겐 도심에서 자전거에 대한 배려가 높기 때문이다. 자전거 도로는 차도와 인도 사이에 엄격히 분리되어 있으며, 면적도 넓다. 심지어 자전거 신호등이 따로 있으며, 자전거가 좌, 우회전할 때 손을 뻗으면, 자동차들은 알아서 피해 주거나 속도를 줄인다. 그리고 레이싱하듯 자전거를 타기보다는 시속 20km 이하로 천천히 즐긴다.어느 나라 도시에 가도, 양이 있으면 음이 있고, 백이 존재하면 흑이 존재한다. 코펜하겐의 중심가에서 남쪽으로 떨어진 곳에 희한한 공동체가 존립한다. 시내 중앙역에서 9A 버스를 타고 Badsmandstraede 정류장에서 내리면 크리스티아니아 Christiania의 입구에 도착한다. 이 지역은 1970년대까지 군사 지역이었고, 군용 막사들이 운집했었다. 그 이후 이 땅은 히피들과 힙스터 등 사회 저소득층 집단들이 본거지로 이용해 왔다. 뉴욕의 할렘 지역과 비견될 정도로 음산한 지역이지만, 이곳은 엄연히 관광지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2가지에 놀랐다. 허물어져 가는 건물에 칠해진 그라피티와 웃음기 없이 관광객을 바라보는 거주민들에 살기가 느껴졌지만,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반 이상은 가족 단위라는 게 의외였다. 미성년인 어린아이들도 통제 없이 입장이 가능했다. 심지어 여름철(6월 말~8월 말)에는 매일 영어와 덴마크어로 가이드 투어가 진행되었다. 가족들이 거부감없이 입장하는 광경이 내겐 문화적 충격이었다. 크리스티아니아 지역민들은 자부심이 강해서 곳곳에 덴마크 국기가 아닌 빨간 바탕에 노란 원이 3개 그려진 깃발을 꽂아 놓고 있다. 이 지역은 덴마크와 또 다른 작은 국가로 외부인들에게 인지시키기 위함이다. 보통 이런 지역은 정부가 알아서 대청소하기 마련인데, 덴마크 정부는 달랐다. 정부는 이 지역을 특성화시켰고, 이곳의 정착민들에게는 세금을 면해주며 최소한의 전기료만을 지불하게 했다. 그래서 돈 없는 예술인들의 작업장이자 공연장이 되었고, 관광객 입장에서는 저렴하게 공연을 즐기고 음식도 사 먹으며 싸고 좋은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알찬 곳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마냥 청사진만 있는 건 아니다. 아직도 이곳에서는 대마초 밀거래가 성행하고 있으며, 이곳저곳에서 사진촬영을 금한다는 표시판이 있을 정도로, 공간을 기밀 화하였다. 카메라를 들으면, 여지없이 “No Photo!!”라며 무섭게 외치고 경고한다. 나도 몇 번 카메라를 만지작거렸으나, 쉽게 셔터를 누를 수가 없었다. 이처럼 크리스티아니아는 사랑받는 관광지이자, 범죄의 진원지이기도 한 아이러니한 지역이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이 지역을 쉽게 철거하지 못한다. 최근에는 지역민들이 2018년까지 부지 전체를 직접 매입하겠다고 발표했으며, 그 기금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관광지라고 하지만, 어수룩한 밤에 방문하는 것은 비추한다. 아무튼 이곳은 공동체를 연구하는데 세계적으로 관심이 쏠려있는 흥미로운 지역이다.낮술이 생각나는 날. 다시 시내로 들어와 사전에 검색했던 수제 맥주 펍으로 향했다. 최근 덴마크 수제 맥주인 미켈러 Mikkeller가 서울에 입성했다. 미켈러 브루마스터가 내한하고 현재 서울 가로수길에 아시아에서 2번째로 미켈라 바가 생길 정도다. 개인적으로 미켈러 맥주만큼이나 우수한 맥주가 있으니 바로 뇌헤브호 브히크후스 Nørrebro Bryghusddptj 맥주다.
맥주 펍이라기 보다는 레스토랑의 느낌이 좀 더 강했다. 펍의 위치는 코펜하겐에서 찾기 어렵지 않다. 코펜하겐 중심부의 서쪽에는 긴 호수가 있다. 로젠보르 팰리스 가든을 지나 보이는 호수 위 다리를 건너 지도를 따라 5분 정도 찾아 걷다 보면 반지하의 이 펍이자 레스토랑을 만나게 된다. 이 양조장은 덴마크가 낳은 맥주인 칼스버그에서 근무한 브루마스터인 앤더스 키스메이어 Anders Kissmeyer가 2003년에 설립하였다. 덴마크의 전통과 미국식 맥주를 함께 결합한 맥주를 만들고자 하는 게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양조장이 결합한 이 레스토랑은 2003년에 만들어졌으며, 2005년에는 마트에 병맥주를 공급하기 위해 코펜하겐에서 멀지 않은 지역인 Hedehusene에 40만 리터를 생산할 수 있는 양조장을 추가로 건립하였다. 2008년도 부터는 세계의 맥주 컵 대회에서 수상할 정도로 등급이 올라와 있다. 이 양조장의 특징 중의 하나는 이산화탄소 중립 양조장 CO2-neutral brewery를 표방하고 있다. 맥주 생산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줄여서 환경에 기여한다는 취지에서 설비하였다고 한다. 소규모로 빚는 맥주 양조장이기에, 맥주의 종류는 약 10가지가 되며, 뉘헤브로 필스너 Nørrebro Pilsner, 뉴욕 라거 New York Lager, 레몬 에일 Lemon Ale과 같은 클래식한 맥주와 함께 Sunshine of your hop과 같은 에일과 Hop Lop의 IPA 등 유니크한 맥주도 제공한다. 일단 사람들이 야외에서 서서 맥주를 즐기고 있다. 이 건물도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1857년에 고전학자들이 지은 붉은 벽돌 건물이다. 레스토랑 발코니의 소박한 맥주 주전자와 거대한 발효기 및 저장 탱크가 이 레스토랑의 인테리어를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