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자몽에이드의 맛에 의문을 갖는다. 단맛보다는 쓰고 신 맛이 강한데, 어떤 기준으로 맛의 상하를 평가할까. 아직도 그 멜랑꼴리한 맛에 길들려면, 내 미각세포를 변형할 수밖에 없는가. 자몽에이드만큼이나 논란의 맥주가 존재한다.
바로 람빅맥주. 이 맥주는 야생효모를 사용하여 자연적으로 발효한다. 쉽게 말해, 인공적인 첨가물 없이, 오랜 기간 내버려둬 놓은 맥주라 할 수 있다. 그 맥주의 현장을 경험하고자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있는 칸티용 양조장 Brasserie Cantillon을 방문하였다. 주소를 구글맵에 찍고 찾아간 양조장은 브뤼셀 남쪽에 있는 역 근처에 위치. 그랑플라스와는 가까운 거리지만, 거리 주변 분위기는 을씨년스럽다. 찾는데도 쉽지 않았다. 양조장에 들어서면, 오른편에 있는 직원들이 투어 일정 등을 안내한다. 이 양조장 투어를 하는데 드는 비용은 6유로이며, 카운터에 맥주 및 각종 브랜드 기념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cool ships”. 끓인 wort(맥아즙)을 이 넓은 쿨십이란 곳에 옮겨서 식힌다.
람빅맥주는 야생효모가 붙어 발효하는 과정을 밟기 위해 창을 열어서 효모가 자연스럽게 붙길 기다린다. 이 과정부터 인내가 필요하다. 인공 효모를 넣은 맥주와는 달리, 느림의 미학이 깃든 맥주이기에, 람빅맥주는 오랜 기다림이 필수 요소다. 이렇게 식은 맥아즙은 오크통에 넣고 약 3년 정도 숙성시킨다고 한다. 숙성되는 동안 오크통에 붙어있는 각종 미생물이 맥주의 맛을 결정한다. 람빅맥주는 이렇게 3년 정도 숙성시키고 병입한 이후에도 6개월 정도 더 숙성하여 상품화한다고 한다. 투어 프로그램이 끝나면 람빅 맥주를 시음할 수 있다. 프로그램 등록과 동시에 2장의 쿠폰이 제공된다. 2가지의 람빅맥주를 선택해서 마실 수 있다. Gueuze, Kriek, Lambic, Faro… 선택은 자유다. 더 마시고 싶으면 차림표에 나온 가격을 더 지불하고 마시면 된다.
일단, 람빅맥주를 선택하였다. 여과가 덜 된 것 같은 비주얼. 안에 효모가 요동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첫맛의 기대감은 약간의 의아함으로 전이되어, 이 맛이 과연 맥주의 맛인가 하고 내적 갈등이 시작된다. 시고 떫다. 단맛을 찾아보려 했지만, 최소한 내 혀에서는 감지가 되지 않았다. 탄산이 거의 없다 보니, 거품 유지력도 약하다.다음으로 택한 맥주는 크릭 맥주 Kriek. 시각적으로 끌린다. 체리 색을 띈 이 녀석은 날 배신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약한 체리 향을 맡고 나니 좀 더 믿음이 간다. 맛은 과연… 역시나 신맛이 강하다. 대신 탄산이 많아서 그런지 입안의 풍미는 람빅보다 무겁다. 체리 때문에 약간의 단맛도 느껴진다. 체리 혹은 버찌를 플랑드르 지방에서는 Kriek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이 과일은 전통적으로 크릭맥주를 제조하는 데 쓰인다.
낯설다. 마니아적인 색이 진하다. 상업성을 찾을 수가 없다. 람빅맥주를 마시면서 이런 부정적인 생각만 있던 건 아니다. 그래도 이 맥주를 찾는 사람들은 꾸준하다. 맥주의 다양성을 대표하는 한 맥주로 독특한 문화가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천편일률적인 우리나라 맥주 시장을 생각해본다면, 람빅맥주의 생존은 부러울 따름이다. 방목형 맥주는 대중들에게 낯을 많이 가린다. 첫맛에서 그 낯섦을 이기지 못하면, 다음 만남은 쉽지 않다. 난 최대한 다음 만남을 기약하기 위해 그 맛을 기억하려 했다. 오래 만나야 친해질 수 있는 친구와 같은 맥주. 내겐 독특한 만남이었다.광장 골목에서 구입한 와플을 광장 한쪽에 앉아서 먹고 있는데, 6명의 아이가 내게 왔다. 그리고 자기들이 만든 쿠키라면서 내게 호객행위를 한다. 동양인 혼자 경계심을 풀고 앉아 있는 모습이 그들에게는 최적의 표적으로 판단되었나 보다. 원래 이런 행위에 쉽사리 넘어가지 않는데, 아이들에게는 그런 필터도 소용이 없었다. 아이들은 내 돈을 받고는 좋아서 어디론가 가버렸다.
빅토르 위고가 그랬다. 그랑플라스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이 광장은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7세기 후반의 고딕과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 지어졌으며, 브뤼셀 여행의 핵심적인 코스다. 동서로 110m, 남북으로 70m인 광장은 그랑플라스, 즉 대광장이라는 명칭에 비하면 그리 크지는 않은 규모다. 그랑플라스는 13세기에 대형 시장이 생기면서 발달했다. 시청사, 왕의 집, 길드 하우스 등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는 것은 96m의 첨탑이 높이 솟은 시청사다. 15세기에 건설된 고딕양식의 건물로 1695년 프랑스의 침입으로 광장이 처참하게 파괴되는 속에서 유일하게 화를 면한 건물이다. 탑 꼭대기에는 브뤼셀의 수호성인 미카엘 대천사가 조각되어 있다. 왕의 집 안에는 초콜릿 박물관이 있는데, 초콜릿의 역사와 제조과정은 물론 맛 좋기로 유명한 벨기에 초콜릿을 시식까지 할 수 있다.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에 꽃시장이 열리고 각종 행사와 이벤트가 끊이지 않아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특히 공공건물과 사유건물이 조화롭게 공존하며, 활기 넘치는 일상의 생활과 아름다운 문화예술이 함께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사면의 건축물 어디도 소홀할 수가 없다. 밤이 되면, 빛의 향연의 좋은 예이다. 사방에서 내리쬐는 조명, 광장에 서 있는 내가 영화 속 주인공 같았다. 밤 9시 정도가 되면, 광장에서 레이저 쇼가 시작된다. 가끔 광장에서 공연도 열린다.
시청사를 우측으로 끼고 돌면 바로 옆에 세르클래스 동상이 있다. 원래 이 동상이 금색은 아니었고 검게 칠이 되어 있었는데 ‘소원을 이루어주는 동상’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벨기에 시민을 비롯하여 관광객의 소원 성지 장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사람이 이 동상을 만지며 소원을 빈다.
델리리움 카페 Delirium Cafe는 기네스북에 등재된 바(Bar)이다. 2004년, 세계 60여 개 국(벨기에 포함)의 2,004개 맥주 브랜드 메뉴 리스트를 공개했고 그것이 ‘세계에서 가장 긴 맥주 리스트’ 기록으로 인정됐다. 맥주의 맛을 모르거니와 결정 장애가 있으신 분들에게는 혼돈의 바라고 하겠다. Delirium의 뜻 자체가 ‘정신착란’이니 말이다. 이 바는 그랑플라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호객행위가 많은 좁은 골목을 뚫고 자리 잡고 있기에, 찾기가 그리 쉬운 편은 아니다. 분홍색 코끼리 간판을 매의 눈으로 주시하며 찾길… 주변에 ‘오줌싸는 소녀’ 동상이 있기에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다. 이 카페는 전 세계로 프랜차이즈화하고 있는데, 2010년에는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로에, 2011년에는 일본에, 2014년에는 폴란드 바르샤바에 매장을 확장했다.
맥주 맛을 보자. 결정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저 이 카페의 대표 맥주를 선택해보자. 평소 병맥주로만 마셨던 ‘Delirium tremens’를 탭 비어로 마셔볼 기회다. Delirium tremens는 우리나라 말로 ‘알코올 진전섬망’이란 뜻이다. 무슨 의학용어 같아 보여 찾아봤는데, 급성 알코올 정신병의 일종으로, 만성 알코올중독자의 5% 정도에서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불안과 초조, 식욕부진, 진전, 공포에 의한 수면 장애가 선행하며 주증상은 섬망(심한 과다행동)이다. 덧붙여 말해, 장기간 음주하던 사람이 갑자기 음주를 중단 혹은 감량했을 때 나타나는 진전과 섬망상태란 것이다. 마시기 전에 자격지심이 생기고, 공포의 한 줄기가 내려온다. 이 맥주는 벨지안 스트롱 에일 Belgian Strong Ale이며, 알코올 도수는 8.5%이다. 거품과 탄산이 많아서 마치 탄산음료를 마시는 듯한 기분이 들어, 높은 알코올을 느끼기 어렵다. 오렌지, 복숭아 등 과일 아로마도 풍부하지만, 마시는 내내 가벼운 바디감이 느껴진다. 암튼 정신착란을 일으킬 만한 독특한 맥주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