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일간지에서 조차 파리의 심판 (Judgement of Paris) 40주년 특집기사가 여기저기 보이는 걸 보니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인 거 같다. 언젠가 지인이 카톡을 보내 “비즈니스 디너 중인데, 미국 비즈니스 파트너가 와인을 주문하면서 파리의 심판 얘기를 하네요. 그게 뭐예요?” 그런 질문을 받았던 기억이 났다.
2016년 5월 24일은 파리의 심판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 와인역사 상 가장 큰 이벤트와 뉴스가 된 사건. 미국 와인과 프랑스 와인의 블라인드 테이스팅은 프랑스 와인홍보를 위해 기획 되었으나, 예상과 달리 미국 와인이 프랑스 와인 을 누르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와인의 신데렐라 사건으로 일컬어질수 있는 이 날 이후 미국와인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게 되고, 품질과 명성을 쌓게 된다. 사실 “Judgement of Paris”는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이며, 제우스 부인 헤라,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간 아름다움을 심판한 스토리 이다. 심판관은 양치기 청년 파리스 였기 때문에 Judgement of Paris라고 불리어 졌다.
세 여인, 아테나는 지혜를, 헤라는 세계를 지배하는 주권을, 아프로디테는 인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주겠다고 약속하였는데… 파리스는 결국 아름다운 여자를 주겠다는 아프로디테를 택했다. 이 심판의 결과가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는데… 비슷하게 와인시장에서도 신세계, 구세계 와인 간의 경쟁을 불러 일으켜 파리의 심판이 전 세계 와인시장 성장 계기가 되었다고 보는게 맞을까? 독점이 아닌 경쟁이 보다 질 좋은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진리이니까.
당시 화이트와인과 레드와인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1위를 차지한 와인은 Chateau Montelena, Chardonnay와 Stags Leap, Cabernet Sauvignon 이다. 미국와인을 이해하고 느끼기 위해서는, 이 역사적인 “파리의 심판” 사건을 이해하고, 그 주역이 된 와이너리를 방문해 보는게 첫 걸음이 될 것이다. 필자도 처음 캘리포니아 나파를 찾았을 때 대중적으로 이름이 많이 알려진 와이너리를 먼저 갔었으나, 아무래도 나파를 간다면 미국 와인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와이너리를 방문하는게 맞는 순서인거 같다. 물론 여행에 정답은 없겠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나파는 북동쪽으로 1시간 반 거리에 있다. 왕복 교통체증에 음주운전 걱정, 솔직히 하루 시간을 다 내어야 다녀올 수 있는 여행코스이다. 자… 샌프란시스코에서 잠깐 여유시간이 있는데, 그 멀리까지 가지 않고, 음주운전 염려도 없이,미국와인을 다운타운에서 제대로 느낄 방법은 없을까?
웨스틴 St. Francis 호텔 로비에 위치한 Chateau Montelena 테이스팅 룸. 단 1시간만 투자해서 미국역사와 와인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유니언 스퀘어를 바라보고 있는 웨스틴 St. Francis 호텔은, 미 서부개척 시기가 한창이었던 1904년 오픈, 미국역사와 함께한 호텔이다. 당시 “Paris of the West”를 만들고자 베를린, 비엔나, 런던, 파리 등 유럽의 유명호텔 건축양식을 연구하여 디자인 한 호텔이다.
이 호텔 1층 로비에, Chateau Montelena의 테이스팅 룸이 있다는 사실. 현지인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유럽호텔 건축을 따라잡고자 세워진 호텔, 그 안에 프랑스 와인을 따라잡은 미국 와이너리 샤토 몬텔레나의 테이스팅 룸. 테이스팅 룸 위치 선정에 나름 의미를 두고 정한 게 아닐까?
호텔로비에 들어서면, 건물 외벽만큼이나 어두컴컴한 실내에 큰 괘종시계가 반긴다.
첫 눈에 뭔가 유서 깊은 느낌을 확 주는 이 시계는 미 서부 최초의 Master Clock (마스터 시계: 호텔 내 모든 시계의 시간을 컨트롤하는 역할)으로 “Meet me at the clock” 이라고만 하면 샌프란시스코 현지인들은 다 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의 약속장소가 되는 곳이다.
이 웨스틴 호텔에 위치한 Chateau Montelena 테이스팅 룸은 크지는 않지만, 붐비지 않기 때문에 와인을 따라주는 샵 매니저와 다양한 얘기를 편하게, 오래 할 수 있다. 그리고, 맘에 드는 와인을 조금 더 따라 주기도 하는 후한 인심까지. 파리의 심판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유명해진 “Bottle Shock” 포스터 및 Time Magazine 사본 등 Chateau Montelena와이너리와 관련된 기념물을 함께 만날 수 있으니, 차근차근 둘러보는 재미도 있다.
5종의 와인 테이스팅에 25불. 리즐링, 샤도네이, 진판델, 카베르네 소비뇽 2종 까지 총 5종의 와인을 테이스팅 할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은 가격이다. 100불 이상 와인 구매시, 테이스팅 비용은 제해주기까지 하니 역사적 와인을 현지가로 구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샤도네이로 화이트 와인 부문 1등을 차지 하였으나, 리즐링이나 카베르네 소비뇽도 훌륭하기 그지 없다. (필자의 전편 기사 마지막 사진 – 바닷가 배경의 Chateau Montelena 리즐링 와인바틀을 기억하시는지?)
매일 오픈하는 건 아니고, 수요일부터 일요일, 오후 1시-8시 까지 오픈하니, 월, 화 방문해서 헛걸음 하는 수고는 하지 말길 바란다.
Wed.-Sun. 1-8 pm. $25 per person. Westin St. Francis, 335 Powel Street, San Francisco. 415.677.4033.
공간은 작지만 빈티지 별로 와인이 구비되어 있으며, 특히 올드 빈티지는 금고 안에 보관 되어 있다. 필자는 보통 2005년산 빈티지 와인을 많이 구매하는데, 2005년 카베르네 쇼비뇽을 2병 구입하였다.
나파의 북적북적한 분위기 속에 와이너리를 방문하는 것도 재미가 있지만, 시내 중심가 호텔, 그 안에 고즈넉한 테이스팅 룸. 오히려 와인을 더 깊이 음미하며,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좋은 장소이다. 와인 애호가이든, 아니든 미국 역사가 녹아있는 유서깊은 건물 에서 미국 와인을 느낄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꼭 한번 찾아보기 바란다.
짧은 역사를 가진 미국, 하지만 강대국으로 성장한 나라.
길지 않은 와인 양조의 역사,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미국 와인.
신세계 와인의 커다란 한 축인 만큼 미국역사와 와인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샌프란시스코 방문 시 느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