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인간이 발명한 가장 오래된 먹거리 중 하나다. 인류는 수천 년에 걸쳐 와인을 음용하고 즐겨왔는데, 와인이 가진 특징 중 하나는 숙성 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 값어치가 수직 상승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숙성의 깊이가 농밀하게 진행된 것이어야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갓 나온 새 제품보다 오히려 만들어진 지 세월이 제법 지난 것이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아마도 와인이 유일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간의 값어치 이상의 평가를 받는 인간이 만들어낸 대표 발명품인 와인.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와인의 ‘찐’ 가치를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수직 상승시키기 위한 방법에 우주가 동원돼서 화제다.
그 첫 번째 시도는 지난 2021년 1월 국제 국제우주정거장에 탑승한 지 438일 19시간 만에 12병의 프랑스산 와인이 지구로 복귀한 사례가 꼽힌다. 당시 ‘미션 와이즈(Mission Wise)’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도됐는데, 이 와인들의 기나긴 우주 여정은 무려 3억 km에 달했다. 이는 지구와 달 사이를 약 300회 왕복하는 것과 같았으니 상상 이상의 거리였을 것이다.
지구 농업의 미래 개선 움직임에 마이크로중력을 이용한 최초의 민간 연구 프로그램이었고, 유럽의 민간기업 스페이스 카고 언리미티드(Space Cargo Unlimited)가 주도했다. 총 6개의 미션으로 구성된 프로젝트의 연구 자금은 모두 민간에서 지원됐고, 당시 6개의 미션 중 첫 번째 미션이 바로 보르도에서 생산된 12병의 와인을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이동시켜 438일 19시간 동안 우주 궤도에 머물도록 한 뒤, 2021년 1월 다시 지구로 환원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일반적인 와인 유리병의 경우 ISS에서 그 형체를 유지할 수 없었던 탓에 보르도 와인 12병은 우주 환경에 적합한 금속 용기에 넣어져 지구 밖 궤도에서 438일 19시간을 견딘 뒤 지구로 다시 ‘컴백’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주에서 숙성 과정을 거친, 인류 최초의 와인이 개봉된 것은 지난 2021년 5월이었다. 놀랍게도 당시 우주에서 귀환한 와인의 맛은 같은 기간을 지구에서 숙성된 동일 종류의 와인과 비교해 무려 2~3배 더 긴 시간 숙성된 농밀한 맛을 지녔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당시에는 지구에서의 것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숙성된 듯한 풍미를 담아낸 우주 와인과 관련해 금속 실린더에 밀봉된 와인이 우주선의 중력 작용으로 빠른 숙성 과정을 거쳤을 것이라는 등의 각종 추측이 제기됐지만 역시나 뚜렷한 이유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전문가들은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와인 숙성의 기간을 단축하고, 맛의 농밀한 정도를 가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주에서의 와인 숙성이 향후 와인 제조 산업의 잠재적인 판도를 바꿀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쏠렸기 때문이다.
당시 실험을 주도했던 스페이스 카고 언리미티드는 지구 밖 우주 환경이 이미 제조된 와인의 숙성도를 빠르게 진행시켰다는 실험 결과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 이번에는 포도 자체를 우주와 지구 두 곳에서 재배하는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20개의 포도나무 줄기를 ISS에서 재배해 지구로 환원시키겠다는 야심 찬 프로젝트다.
특히 이번 실험은 빠르면 올해 말 그 결과가 최초 공개될 예정인데, 스페이스 카고 언리미티드 측은 여기에 더해 이른 시일 내에 박테리아와 효모 등 와인의 숙성도를 결정짓는 추가 요소까지 고려하는 다채로운 실험을 예고해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이들이 막대한 민간 자금을 투입해 우주 환경에서의 와인 제조 산업의 미래를 구상하는 것은 다름 아닌 최근 들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지구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주요하다.
온난화 등 지구 기후변화에서 와인 산업뿐만 아니라 농업 전반이 이전과 같은 위치를 유지하며 인류 생존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우주 환경에서 적절한 생산력을 갖춘 먹거리 유형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 덕분에 와인은 떠오르는 우주 개발 산업의 한 축으로 새로운 우주 시대를 여는데 한 발 더 가까이 가 있다는 평가다.
특히 ‘우주와 와인’이라는 새로운 연결에 대해 이 분야 전문가들은 우주 산업이 발전을 거듭할수록 와인 제조 산업의 잠재적인 판도가 바뀔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우주의 중력을 이용해 빠르게 숙성된 와인을 지구에서 즐길 수 있는 날이 도래할 것이다.
스페이스 카고 언리미티드의 세포 생물학 부서 최고 과학 책임자 미하엘 르베르는 다채로운 연구 방향과 시도를 통해 우주 환경이 지구 기후변화를 이길, 이전에는 보기 어려웠던 강한 품종의 와인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으로 예측했다.
전통적인 와인 강국 프랑스에서 진행 중인 와인과 우주의 결합 실험은 또 있다.
프랑스의 우주 전문연구소 제팔토가 빠르면 오는 2025년까지 우주에서 ‘와인 테이스팅’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판매하기 시작한 것.
제팔토는 성층권 여행 캡슐 상품인 셀레스트(Celeste)를 개발하고 있는데, 경량성과 뛰어난 강도를 보장하기 위해 복합 섬유로 만든 금속과 유사한 우주선에 탑승한 와인 애호가들은 무려 고도 25km의 우주를 향해 약 6시간 동안 비행하게 되는 혁신적인 여행 프로젝트다. 탑승자들은 여행 중 셰프들이 제공하는 고급 기내식과 함께 프랑스 와인을 시음할 수 있다. 특징은 기존의 우주선과 다르게 캡슐 안에 탑승한 탑승객들은 기존 우주에서의 무중력 상태가 아닌, 일반 비행기와 매우 유사한 환경에서 와인을 음용할 수 있다고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