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에 물품을 담아 바다를 가로 질러 운송하는 것은 선박 역사와 함께 발전해왔다. 그리고 수세기에 걸친 화물 역사는 지금도 여전히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바다 건너 대륙을 잇는 대항해의 주요 품목에 빼놓지 않고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와인이었다. 그 중에서도 매년 이 시기, 연말연시가 되면 세계 각국에서는 유럽산 고급 와인의 수입물량이 눈에 띄게 증가한다. 연말 연시를 기념해 소중한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선물로 와인만큼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연간 가장 높은 매출을 기록하는 바로 이 시점에 ‘화물 블루스’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전 세계 와인 시장에서 최근 물류비 상승이 초래하는 우려는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각 국에서 생산된 와인이 전세계 중소규모의 와이너리와 레스토랑, 대형마트와 백화점, 편의점 등 소비자와 만날 수 있는 채널이 점점 더 다각화되면서, 와인 물류비 상승이 초래하는 피해 규모는 오히려 더 커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제기된다. 와인 값을 천정부지로 높이는 주요 원인으로 물류비 상승이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지난해 대비 올해 국가간 와인 물류비는 2~3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실제로 이 분야 전문가들은 물류비 상승의 요인으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선박 정체와 관세 인상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그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세계 와인 바이어를 비롯한 와인 매입 업체 전문가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해결하기 위해 사전발주 등 물량 확보 전쟁에 돌입한지 이미 오래다. 매일 실시간 단위로 입항 일정과 물량 확인에 집중하고는 있지만, 사실상 유럽에서 출발한 와인 수입의 입항이 대거 지연되거나 일부는 배가 없어 출발조차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연이어 발생하기도 하는 상황이라는 게 이 분야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한 가지 고무적인 것은 물류비 상승이 와인 값 고공행진을 견인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연이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전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와인 수입과 수출 물량은 끊이지 않고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인의 유럽산 와인 수입량은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온라인을 통한 미국인들의 유럽산 주류 수입 물량은 무려 4500만 건에 달했다. 이 중 와인 주문 건수는 총 350만 건, 증류주는 1500만 건, 맥주 등 알코올 음료는 총 2500만 건을 기록했다. 물류비 상승과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에서도 전 세계 주류 시장은 그야말로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여기에 이유가 있다.
다만, 오랜 기간 다양한 악재 속에서도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 중인 와인 무역에 대해 이 분야 일부 전문가들은 마냥 긍정적인 전망만 기대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공유했다. 지금과 같은 고가의 물류비 문제와 고질적인 선박 정체, 국가간 화물 이송 시 빚어지는 각종 세관 문제 등이 계속된다면 와인 국제 무역 시장에 대한 장미빛 미래만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다.
미국 롱아일랜드에 소재한 MHW의 피사니 수익부문 총책임자는 “지난 25년 동안 이 분야에 종사하면서 요즘처럼 어려운 때는 처음이다”면서 “창고에 쌓여 출고되지 못한 와인 물량이 이렇게 많았던 적은 없었다”고 현재 글로벌 와인 무역 시장에 처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피사니 총책임자에 따르면, 유럽산 와인에 대한 트럼프 정권의 관세 인상 부과와 함께 코로나19 대유행 시기부터 와인 시장의 고난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차 관세 인상 소식이 전해졌을 당시 수많은 와인 수입업체들이 유럽으로부터 고가의 와인들을 들어왔는데, 당시 대량으로 구매해 들여왔던 와인들이 현재도 여전히 컨테이너에 남아 쌓여있는 상태라는 설명이다.
더욱이 CBMA라고 불리는 주류 세금 감면 정책은 지난해 12월을 기점으로 모두 종료된 상태다. 해당 세금 감면 혜택 종료 소식이 알려진 직후 주류 수입 업자들은 관세 혜택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유럽산 와인들을 서둘러 들여왔고, 결과적으로 현재 미국 내 모든 창고 컨테이너에는 유럽산 와인이 가득 들어 차 있는 상태다. 세금 문제 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 창고에 쌓여 세월만 보내고 있는 제품들은 각 업체들에게 무거운 경제적 부담을 떠안긴 원인이 됐다. 특히 뉴저지 등 일부 지역의 컨테이너를 소유하고 있는 아마존 측은 컨테이너 창고 비용에 근로자들 임금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라고 현재 상황은 비관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와인은 그 상품 자체의 특성에서 이미 물류와 보관 등에 많은 비용이 드는 대표적인 고비용 상품이다. 맥주나 위스키 등과 같은 다른 주류 대비 온도와 습도에 큰 영향을 받는 와인은 물류가 특히 많이 소요되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배송 시 항온장치가 있는 창고와 냉장차가 반드시 필요한 것 역시 와인의 특징이다. 또 와인은 다품종 소량 단위로 거래가 이뤄지기에 중간 단계에서 핸들링 비용이 많이 드는데, 대량의 컨테이너 선박과 선적은 이 같은 와인 그 자체의 고비용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평가다.
미국 증류주 위원회 전미 음료수입국 협회의 이사회 멤버인 존 보네트 씨는 “컨테이너 부족과 공공 창고 공간의 만성적인 부족, 부두 항만 시설 이용 시 예측하지 못한 지연 사태 등과 같은 상황은 와인 물류 시스템의 비용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면서 “와인 시장이 직면한 모든 불확실성과 코로나19 전염병 사태 등은 현실이다. 수입 업체들과 생산 업체 양측 모두 이에 대비해야만 큰 손실을 방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다만, 파시니 최고수익책임자는 이 같은 상황이 2022년 봄부터 점차 완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와인 시장의 성수기는 매년 10월 말에서 12월 초라는 점에서 타격은 생각보다 심각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보통 10월에 판매되는 와인들은 주로 같은 해 7월까지 수입이 완료된다”면서 “특히 와인 같은 주류는 일반 공산품과 다르게 살아있는 생물과 같다. 유통되지 못하고 컨테이너 안에 쌓여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상당수 제품은 상할 우려가 크고, 이 경우 상품성을 잃어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