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테이스터’들이 팀을 이루어 숙성된 보르도 와인에 담긴 일곱 가지 주요 아로마를 집어내었고, 이것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테루아’의 특징을 이루는 분자를 찾아내도록 돕고 있다. 제인 앤슨이 최신 디캔터닷컴 칼럼을 통해 최첨단 와인 과학을 소개한다.
몇 년 전, 샤토 오-바이의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총 15개 빈티지 와인을 가지고 버티컬 테이스팅을 한 적이 있다. 숙성을 시키는 동안 와인이 어떻게, 그리고 왜 그렇게 복합적인 아로마를 만들어 내는지 연구하던 마갈리 피카르라는 보르도 와인학교의 박사 과정 학생을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와인을 천천히 그리고 기품 있게 숙성시키는 능력으로 유명한 포도원의 사례로 샤토 오-바이가 선정되었지만 피카르는 보르드의 다른 샤토에서도 비슷한 테이스팅을 실시하고 있었고, 학교의 테이스팅 연구실에서도 이보다 더 큰 규모로 비교 테이스팅을 실시했다.
나 역시 나만의 노트를 기록하고, 토론을 즐기고, 피카르의 연락처를 챙겼다. 나중에 그녀의 연구 결과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중 몇 주 전, 그녀가 2015년 12월에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현재는 와인학에서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동시에 가장 연구되지 않은 분야에서 노력한 결과로 많은 곳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보르도 같은 지역에서 아직도 레드 와인의 아로마 성분, 특히 세계적으로 그리도 유명한 보르도 와인의 복합적인 ‘부케’를 만들어내는 오래된 레드 와인에 대해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다니 조금 이상한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와인의 숙성 과정 동안 휘발성 아로마 성분에 중요한 화학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은 오래 전에 밝혀졌다. 하지만 그 이유와 정확한 과정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이것은 와인에 있어 가장 멋진 특징 중 하나, 즉 무엇으로도 측정할 수 없고 명확히 집어내어 표에 적거나 그림으로 나타낼 수 없다는 불명확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숙성되지 않은 어린 와인을 이루고 있는 분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합쳐지고, 진화하고, 심지어 고유의 특성이 바뀌어 버린다.
그저 시간이 선형으로 흐르기 때문만도 아니다. 와인 분자와 이웃한 곳에 무엇이 있느냐 같은 것에 의해서도 큰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오크 배럴에서 나온 분자들이 와인으로 들어가면 카베르네 소비뇽 포도 껍질에서 나온 분자와 결합하여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병 안에서 몇 년을 보내면서 단일 분자들이 서로 합쳐지고, 구조를 바꾸고, 스스로 달라지면서 숙성 와인의 복합적인 아름다움이 생겨난다. 여기에서는 이 ‘병 안에서’라는 말이 바로 핵심이다. 숙성이 이 환원적인 환경 즉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오래된 와인의 부케에 영향을 주는 화학 반응은 pH, 온도, 숙성 시간 등에 강한 영향을 받는 ‘산화와 환원의 균형’(와인이 접할 수 있는 산소의 양이나 산소의 부재)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피카르의 논문의 목표는 이 모든 작용을 일으키는 “활성 향 분자의 형성”을 더욱 잘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그녀는 140명이 넘는 테이스터들(주로 와인학자, 와인 생산자, 컨설턴트들이었다)에게 먼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성숙된 부케의 정의에 대해 몇 가지 질문에 답하게 했다. 복합성부터 균형, 구체적인 감각적 특징까지 그들의 대답은 다양했다.
그 다음으로 선정된 13인의 ‘슈퍼 테이스터’들에게 맹목적으로 널리 사랑받는 1994년 빈티지부터 2005년(와인이 어릴 때 만들어내는 주요 아로마에서 벗어나는 시기) 빈티지까지 12년에 걸친 30개의 고급 보르도 와인을 맛보고 느낀 것들을 적도록 했다. 이 시점에서 피카르는 테이스터들 사이에 큰 공통점이 있는 것을 찾아내고 다음 일곱 가지 아로마로 압축시켰다.
이것 외에도 테루아가 갖는 영향력을 살펴보기 위해 포메롤, 생테밀리옹, 마고의 세 가지 와인으로 19년에 걸친 버티컬 테이스팅을 실시했다.
이렇게 얻은 데이터를 가지고 피카르는 본격적인 연구를 실시했다. 액체 크로마토그래피를 이용해 분자를 분리해낸 그녀는 이런 아로마와 상호연관된 화합물의 정확한 성분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분자 구조를 더 잘 이해하면 샤토들이 그런 화학 작용을 더욱 잘 일으키도록 하거나 그것을 보호하기 쉬울 것이라는 가정에서였다. 특정 유형의 테루아와의 관계를 밝혀내면 더 정밀한 포도 생산 과정이 가능해진다.
논문의 주요 결과들은 배럴 숙성과 특정 테루아에서 나오는 구운 헤이즐넛 냄새, 병 숙성을 통해 농도와 강도가 높아지는 약한 황 성분 같은 DMS(디메틸설파이드), 오래된 보르도에서 발견되는 송로버섯과 덤불 냄새 등을 연상시키는 화덕 냄새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것 외에도 기분 좋은 발견이 있다면 숙성된 보르도 와인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민트 아로마를 발생시키는 새로운 분자를 찾았다는 것이다. 카베르네 소비뇽이 다량 함유된 와인, 특히 흥미롭게도 마고 지역 와인에서 가장 흔히 찾을 수 있었던 분자가 바로 피페리톤이었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갔을 때 자기 이름을 지킬 수 있는 분자는 많지 않다. 덜 익은 포도의 피망 향을 가리키는 피라진도 그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지오스민의 흙냄새는 지난 해 『옥스퍼드 컴패니언 투 와인』 개정 4판에 실렸으니 앞으로 일반적인 테이스팅 표현으로 쓰일 수도 있을 것이다. 피페리톤도 이에 합류할 수 있을지는 아직 두고 보아야 할 테지만 이 분자의 발견은 실로 많은 이들을 기쁘게 만들었다 하겠다.
샤토 오-바이 1998
피페리톤을 직접 경험하고 싶다면 이 와인을 구입하기 바란다. 은은한 삼나무 향과 함께 담배 연기에 이어 땅에 떨어져 으깨진 부드러운 블랙베리, 빌베리(월귤나무 열매) 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입안에서 이 모두가 매끄럽게 어우러진다. 입안에 남는 풍미의 길이도 놀랍고, 희미한 백후추와 함께 태닌의 강한 맛은 전혀 없다.
마지막으로 몇 번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바로 그 끝에 느껴지는 것이 바로 피페리톤이다. 아직도 발견할 것이 많이 남아있다고 말해주는 듯한 민트와 멘톨 향 말이다. 이것을 더욱 뚜렷이 느껴보고 싶다면 와인이 입안을 떠난 뒤 숨을 한 모금 마셔보자. 신선한 바람과 함께 피페리톤이 느껴질 것이다. 잘 숙성된 좋은 보르도 와인이 왜 그리 군침이 흐를 정도로 만족스러운지 알려주는 또 다른 퍼즐 조각이 아닐까.
작성자
Jane Anson
번역자
Sehee Koo
작성일자
2016.02.18
원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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