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옥토버 페스트를 즐겼다. 독일과 연결고리로 이은 여행 국가는 체코다. 둘 다 맥주의 나라라는 사실만으로도 비교할 만한 여행지다. 옥토버 페스트란 특수한 상황 때문에 뮌헨의 숙소는 2달 전에 예약했지만, 체코의 숙소는 뭉그적거리다가 여행 1주일 전에 비로소 검색하기 이르렀다. 내 여행 철칙 중의 하나가 여행지(특히, 해외여행은 반드시)의 주요 이동 교통편(항공)과 숙소는 예약하는 것이다. 커다란 기본 틀은 정립하고 움직이면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체코여행의 첫 도시인 프라하에서 4박 5일을 머무르기로 한 뒤, 난 바로 호스텔을 검색하였고 ‘로즈마리 호스텔’을 낙점했다.
[사진 001] 호스텔에서 바로 나오면 큰 도로의 시내가 나온다.
로즈마리. 이 어감에 혹했다. 각자의 소견은 다르겠지만, 왠지 단어 자체가 묘하고 관능적이다.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여성적인 세가 강하고, 꽃뱀의 향도 코끝에 진동한다. 일단, 뜬금없이 로즈마리의 정확한 뜻을 알고 싶었다. 라틴어 이슬 Ros과 바다 Marinus의 합성어로 ‘바다의 이슬’이라는 뜻이다. 뭔가 있어 보인다. 나라마다 로즈마리와 관련된 설이 있다고 하는데, 스페인 사람들은 부적의 의미로 로즈마리를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영국인들은 악귀와 병마를 막으려고 문 위에 로즈마리를 올려놓는다. 전체적으로 유럽 전역에서는 로즈메리를 마룻바닥에 깔고 작은 다발을 손에 들고 다니기도 했는데, 공기를 정화해준다는 의미에서란다. 타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지닌 로즈마리. 호스텔 이름만 들어도, 타지에서 안전하게 여행할 것 같은 상상이 든다. 호스텔 정보를 자세하게 검색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결제할 마음이 앞섰다.
[사진 002] 로즈마리 호스텔 입구
호스텔에서 지도를 펼치고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가장 유명한 곳이다. 많은 사람이 조금은 힘겨운 언덕을 오른다. 바로 프라하 성을 보기 위함이다. 이미 프라하 성에 도달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프라하 성은 길이가 길다. 성의 입구를 지나면 프라하에서 또 하나의 관광명소로 통하는 황금소로의 좁은 골목길이 나온다. 16세기 후반 연금술사와 금은 세공사들이 살면서 ‘황금소로’라 불리게 된 이 골목에는 프란츠 카프카가 작업실로 썼던 집도 남아 있어 더욱 인기가 높다. 파란색의 22번지 집은 카프카가 매일 밤 글을 썼던 작업실로, 그의 소설 ‘성’도 이 프라하 성을 배경으로 썼다.
[사진 003] 프라하 성 옆에 서 있는 비투스 성당
구시가지에서 블타바 강 맞은편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프라하 성. 현존하는 중세시대 성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프라하 성은 카프카의 소설 ‘성(城)’의 모티브가 되었던 곳이다. 길이는 570m, 너비는 128m이며, 9세기 이후 통치자들의 궁전으로 사용된 로브코위츠 궁전 외에 비투스대성당, 성조지바실리카, 성십자가교회 등 3개의 교회와 성조지수도원 등 다양한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서기 870년에 처음 세워진 이래 화재와 전쟁으로 온갖 고초를 겪은 프라하 성은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 양식, 르네상스 양식, 바로크 양식이 가미돼 유럽 건축사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전시장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9세기 말부터 건설되어 14세기 카를 4세 때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1918년부터는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었고, 매일 정오에는 정문에서 위병 교대식이 열린다. 성 내부에 있는 비투스 대성당 역시 프라하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성당 내부에는 얀 네포무츠키 성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으며, 알폰스 무하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볼 수 있다. 프라하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프라하 성의 야경은 익히 유명해서, 밤에 강변을 거닐며, 불빛에 취한 관광객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사진 004] 위병 교대식이 한창인 프라하 성
[사진 005] 강 너머에서 바라 본 프라하 성의 야경
프라하 성에서 좀 더 남쪽으로 걷다 보면, 공원에 이르게 된다. 이 공원 위로 올라가다 보면, 프라하 특유의 붉은 지붕 풍광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페트르진 언덕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프라하 전부를 독점할 수 있다. 페트르진 전망대는 1891년 국제 박람회의 개최를 위해 지어진 것으로 파리의 에펠 탑을 모델로 지어졌다. 전망대로 이르는 길에는 페트르진의 미로 등이 있어서 흥미롭고 다소 힘든 육신을 잊을 수 있다. 천천히 도보로 오르는 방법도 있지만, 등산 열차인 푸니쿨라를 타고 쉽게 전망대까지 오를 수도 있다.
[사진 006] 페트르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프라하의 전경
기가 막히다. 쉬고 싶을 때쯤 전망 좋은 카페가 보인다. 이 카페 주인은 이런 관광객의 심리를 꿰뚫고 장사를 하고 있을 거다. 필스너 맥주의 고장인 만큼 크루쇼비체 Krusovice 맥주를 주문했다. 잔에 담긴 구릿빛이 프라하 시내를 투과할 정도로 투명했다. 특유의 구수한 몰트 맛, 크림의 밀도와 맛의 깊이를 봐서는 필스너 우르켈보다 확실히 진하다. 알아보니 에일라거 맥주란다. 에일과 라거의 중간 형태로 보면 된다. 그래서 과일 향도 라거 맥주보다 풍부하다.
[사진 007] 맥주는 분위기가 맛을 좌우한다.
페트르진 공원 전망대 옆에는 키스하는 조각상이 있다. 체코에는 5월의 첫날, 벚나무나 체리 나무 아래서 키스를 하지 않은 여자는 시름시름 앓다 1년 안에 죽는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고 한다. 그래서 5월 첫날에 이 공원에서 특이한 행사가 열린다. 많은 연인이 이곳에 모여서 오랜 시간 동안 키스를 하는 행사다. 매년 하는지는 모르지만, 이 부분 기네스북에 계속 도전하고 있으며, 이는 체코의 전통이라고 한다. 이 전통은 체코 낭만주의의 대표 작가 카렐 히네크 마하가 19세기에 쓴 시에서 유래했다. 얼마나 낭만적인 도시인가.
[사진 008] 저 배경 한 곳을 사람이 차지하면 누구라도 화룡점정.
프라하 도시 한가운데에는 큰 강이 흐르고 있다. 블타바 강은 마치 우리나라의 한강, 런던의 템즈 강, 부다페스트의 도나우 강과 같이 수도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다. 블타바 강의 낭만을 이어주는 다리가 여럿 있는데, 대표적인 다리가 바로 카를교이다. 가장 오래된 다리이기도 하다. 흔히 연인끼리 혹은 연인이 되려는 남녀가 다리에 서서 운명을 약속한다. 새벽에 카를교 아래로 피는 물안개도 예술이지만, 밤에 빛나는 야경도 수려하다. 16개 아치가 떠받치고 있는 이 다리는 유럽 중세 건축의 걸작으로 꼽힌다. 다리의 시작과 끝부분에 놓인 탑은 본래 통행료를 받기 위해 세운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블타바 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10세기 초에 나무로 만들었던 카를교는 홍수로 몇 차례 유실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카를 4세가 1402년에 튼튼한 돌다리로 완공하면서 그의 이름을 따 카를교로 명명됐다.
[사진 009] 카를교의 야경
17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약 300년에 걸쳐 제작된 30개의 성인상도 볼거리다. 다리 양옆에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일렬로 늘어서 있는데, 성 요한 네포무크, 성 루이트가르트, 성 비투스 등 체코의 유명한 성인 조각상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이 조각상들은 모두 성경에 나오거나 성인으로 칭송받는 사람들을 새겨 놓은 것인데 그중 얀 네포무츠키 조각상이 가장 유명하다. 유일하게 청동으로 제작해서 눈에 띈다. 이 동상은 소원을 비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얀 네포무츠키 성인이 순교한 자리에 있는 십자가의 별을 만진 후, 말을 하지 않고 얀 네포무츠키 성인의 동상까지 와서 오른쪽 아래 동판에 새겨진 성인의 모습을 같은 손으로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된다. 나는 이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해서, 별에만 손끝을 대고 소원을 빌었다. 헛수고였다.
[사진 010] 손끝으로 별을 만지면 소원이 이뤄진다.
네포무츠키 신부는 불륜을 의심받고 있는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보고하지 않는다고 왕으로부터 고문을 당한 후 블타바 강에 던져져 익사했던 인물로 동상 아래쪽에는 닳아 반질반질한 청동 부조가 프라하의 청명한 햇살을 튕겨낸다. 동전을 던지면 꼭 다시 로마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트레비 분수처럼 왼쪽 부조를 만지면 다시 프라하를 찾게 되고, 오른쪽 부조를 문지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에 동상 앞은 줄을 서야 할 정도로 북적거린다. 영화 <007시리즈>와 <미션 임파서블> 등에 등장하여 유명해서 카를교. 지금은 각종 거리 악사들이 공연을 하고 있으며, 자판을 깐 상인들로 인산인해다. 거기에 많은 관광객까지 섞여 있어서 사실상 낭만을 즐기기에는 어수선하다. 그래도 프라하에 온 사람이라면 적어도 3번은 건너게 되는 다리다. 이 다리를 지나면 북쪽으로 프라하 성, 남쪽으로는 구시청사 및 광장으로 통하는 교두보이다.
[사진 011] 관광객들의 줄이 끊어지지 않는 카를교 위
프라하 역시 유명 관광지이다 보니, 구석구석에 유서 깊은 레스토랑이 있다. 우 메드비드쿠 U Medvidku는 프라하 시내에 자리 잡은 꽤 유명한 레스토랑이자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이 있는 곳이다. 1466년부터 운영한 이 전통 레스토랑은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체코의 돼지고기 음식 꼴레뇨(한국의 족발과 같은)와 굴라시, 직접 양조한 부드바 Budvar 맥주를 저렴한 값에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프라하의 메인 광장이 있는 거리를 쭉 걸어 올라가다가 왼쪽으로 틀어서 크게 2블록을 걷다 보면 오른편에 저 큰 레스토랑 명이 보인다. 레스토랑 안에 들어가면 실내 공간이 생각보다 넓었고, 미로처럼 끊임없이 들어간다. 계속 들어가다 보면 테이블 방 너머로 맥주 탱크가 있는 방이 보인다. 여기서 부드바 맥주가 생산된다. 책임자로 보이는 한 분이 양조의 총 일정을 조율하며 시시각각 맥주의 상태를 점검한다. 맥주는 1층에서 직접 탭 비어로 따라서 주문한 테이블마다 전달된다. 맥주를 따라주는 직원은 거의 쉴 틈이 없을 정도로 맥주를 기계적으로 따른다. 손님이 많은 곳에 비해 직원마다 해당 구역이 정해져서 서비스가 일사불란했으며, 맥주의 신선도도 괜찮았다.
[사진 012]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인 우 메드비드쿠 U Medvidku
[사진 013] 한창 발효 중인 부드바 맥주 발효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