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 지역 와인이 그렇게 좋아진 게. 가랑비에 옷이 흠뻑 젖는 줄 모른다더니 여러 해 마신 와인들이 켜켜이 쌓여 이제는 꽤 자신 있게 ‘저는 이 와인을 좋아합니다.’라고 말하게 되었다. 여전히 마셔보고픈 와인은 수두룩 하지만, 와인과 함께 할 날들이 얼마나 더 남아 있는지 모르기에(와인의 가장 큰 매력은 정복이 불가능하다는 점) 선택과 집중을 하며 테이스팅을 한다. 중간에 옆길로 빠지기도 하고(샴페인도 너무 좋고 미국 나파(Napa) 레드나 화이트도 매력 넘치니) 새로운 지역 와인을 만나 가슴이 두근거리는 경험을 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부르고뉴 와인으로 돌아와 ‘역시 좋네’라고 혼잣말을 한다.
프랑스 부르고뉴 레드의 꽃이 피노 누아(Pinot Noir)라면 화이트 최고봉은 샤르도네(Chardonnay)다. 샤르도네 품종으로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지역으로는 싱그러움과 순수함이 돋보이는 샤블리(Chablis), 그랑 크뤼 빈야드가 모여 있는 꼬뜨 드 본(Cote de Beaune) 그리고 퀄리티를 유지하면서도 가격은 아직까지 합리적인 마꼬네(Maconnais)가 있다. 마꼬네에서 푸이 퓌세(Pouilly-Fuisse)가 가장 잘 알려져 있는데 샤르도네 품종의 화이트 와인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이름이 비슷하여 푸이 퓌메(Pouilly-Fume)랑 헷갈리기도 하는데, 푸이 퓌메는 루아르(Loire)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품종의 화이트 와인이다. 여하튼 푸이 퓌세 화이트는 생산자나 특정 빈야드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샤샤뉴 몽라셰(Chassagne Montrachet)나 뫼르소(Meursault)와 견주어도 좋을 만큼 훌륭한 와인이다. 푸이 퓌세에서 생산하는 와인은 부르고뉴 타지역 와인보다 평가절하된 면이 있긴 하다. 하지만 푸이 퓌세 생산자들은 조합을 형성하여 와인을 알리고 등급을 올리는 데 힘을 합쳤다. 그 결과, 2020년 하반기에 드디어 프리미에 크뤼(premier cru) 등급으로 상향 분류된 지역이 발표되었다.
마꼬네 지역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올리비에 메를렝(Olivier Merlin)이다. 그는 마꼬네 지역의 마법사로 불리며 와인 품질 향상에 기여한 인물이다. 전통을 이어가며 포도밭을 세심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들과 함께 와인을 양조한다.
그와 더불어 화이트의 전설인 도미니끄 라퐁(Dominique Lafon)은 친구인 올리비에 메를렝과 함께 마꼬네 지역의 잠재성을 알아보고 와인을 함께 만든다. 잠시 도미니끄 라퐁을 이야기하자면 라퐁 가문(Domaine des Comtes Lafon)의 와인뿐 아니라 2000년대 후반에는 네고시앙으로서 자신의 이름으로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엔트리 등급도 좋지만 도멘 데 꼼뜨 라퐁이 만드는 뫼르소 상위 등급은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화이트로 평가받기도 한다. 1980년대부터 도멘의 수장으로 그 역할을 해온 도미니끄 라퐁은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와인을 만들어 왔다. 그의 이름으로 만들어지는 와인은 퀄리티 와인이라는 보증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마꼬네에 관심을 두고 와인을 양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지역의 잠재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샴페인을 알리고 샴페인 생산자의 권리를 보호하는데 앞장서는 Comite Champagne과 마찬가지로 푸이 퓌세 생산자 권리 증진에 힘을 쓰는 협회(Union des Producteurs de Pouilly-Fuisse)가 존재한다. 이들은 10년간 마꼬네 푸이 퓌세 지역의 프리미에 크뤼 승인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 결과, 2020 빈티지 와인 레이블에 프리미에 크뤼 표시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디캔터(Decanter)에 따르면 22개 지역에 프리미에 크뤼 등급을 부여했으며, 푸이 퓌세 전체 면적의 약 24%를 차지한다. 등급 승인을 위한 까다로운 절차를 통과한 지역은 크게 4곳으로 나뉜다. 샹트레(Chaintre), 퓌세(Fuisse), 쏠뤼트레 푸이(Solutre-Pouilly) 그리고 베르지송(Vergisson).
1943년 이후로 부르고뉴 지역에 새로운 프리미에 크뤼가 탄생한 만큼 기대와 설렘이 가득하다. 곧 마셔볼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