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에서 오염된 물 대신 맥주를 마셨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물론 맥주 외에 와인이나 홍차, 커피 등도 마셨지만, 여기서는 맥주에 관해서만 집중해 보겠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물을 그대로 마시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만년설이나 빙하를 녹여서 마시는 곳이거나 화강암이 자동으로 필터링해 주는 곳이 아니면 대부분 물은 끓여서 마셔야 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 수돗물이나 우물에서 얻은 물을 직접 마시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물에 포함된 세균이나 바이러스, 기생충 등이 인체에 유해할 수 있으며, 이렇게 발생한 질병은 중세 유럽에서 매우 흔했습니다.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던 시절에 우물의 수질을 깨끗하게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물에서 가축을 씻기기도 하고 오물이 잔뜩 묻은 옷을 빨래하기도 했으니, 이렇듯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사용하면서 좋은 수질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중세 유럽인들은 안전한 물을 마시려면 끓여서 위험 물질을 제거했습니다. 또한 물 대신 맥주가 널리 소비되었는데, 이는 맥주가 물보다는 덜 위험하고 맛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맥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물(맥아즙)을 끓여서 사용해야 합니다. 게다가 맥주에 들어가는 재료 중 홉은 방부제와 안정제 등 항균 효과가 있습니다. 물보다 맥주를 마셔서 다행이었던 사건이 있어 소개해 볼까 합니다. 전염병이 휩쓴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맥주를 마시고 살아남은 에피소드입니다. 때는 19세기 중반으로, 장소는 산업혁명으로 한껏 비대해진 도시 런던입니다.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이어온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런던은 급격한 변화를 겪습니다. 그중 하나가 많은 사람이 도시로 몰려드는 도시화와 그로 인한 도시의 불결한 위생 상태였습니다. 도시화로 런던의 인구는 빠르게 늘어갔고, 많은 사람이 협소한 공간에서 살았습니다. 런던의 인구는 1801년에 100만 명 정도였는데, 1851년에는 20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런던의 면적은 1801년에 120km²에서 1851년에는 300km²로 늘어났지만, 도시의 면적에 비해 인구가 터무니없이 많은 것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도시는 더러웠고 폐기물과 오물이 길거리에 던져지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당시의 상하수도는 현재와 달리 매우 불완전했습니다. 상하수도가 건물 간의 배수를 위해 설치되었지만 일부 지역에서만 제대로 작동했고, 대부분 지역에서는 하수가 직접 길가에 유출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냄새와 오염이 심각해졌습니다. 정화조는 도시의 하수가 처리되기 전에 오염 물질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런던의 정화조 또한 부족했고 그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오염된 물이 바로 도시로 유입되었습니다. 이러한 불결한 위생 상태 때문에 질병과 전염병이 자주 창궐했습니다. 특히 19세기에는 몇 차례 콜레라가 대규모로 유행하면서 수많은 사람이 죽기도 했습니다.
콜레라는 장내 세균인 콜레라균에 의해 일어나는 질병입니다. 사람이 콜레라에 의해 감염된 물이나 음식물을 섭취하면 급성 설사와 구토가 발생합니다. 이것은 콜레라균이 장에서 세포로 흡수되는 수분을 막고, 거꾸로 세포에서 장으로 수분이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콜레라균이 사람에게 전염되는 경로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대개 오염된 물이나 음식물 등을 통해 인체로 유입됩니다. 19세기에 런던에서 발생한 콜레라 대유행은 잘못 처리된 하수에 유입된 감염자의 대변 때문이었습니다. 콜레라균은 물속에서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오염된 물을 마시는 경우에 쉽게 감염될 수 있습니다. 적절한 위생 수칙을 준수하고 안전한 식수와 음식물을 섭취하면 쉽게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이지만, 이렇게 당연하게 예방할 수 있는 콜레라의 원인이 밝혀진 것은 고작 150여 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것도 존 스노라는 의사의 집요한 역학 조사와 강력한 설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노가 콜레라의 원인을 밝혀 내기 이전의 상황은 어땠을까요? 당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콜레라가 비위생적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나쁜 공기, 즉 악취에 의해서 발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중세 시대부터 미신과 속설로 내려오는 설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대부분이 질병의 원인이 도시의 나쁜 공기로 발생한다는 ‘독기론’을 믿었지, 질병이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해진다는 ‘감염론’은 소수의 사람들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감염론 추종자 중에서도 질병이 오염된 물에서 사람에게 전달된다고 생각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스노가 질병의 원인이 수인성 전염병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주장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19세기 런던에서는 3차례의 콜레라 대유행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유행은 1831년부터 1832년까지, 두 번째 유행은 1848년부터 1849년까지, 세 번째 유행은 1853년부터 1854년까지 발생했습니다. 이중 스노는 3차 대유행 시기에 활동했습니다. 3차 대유행엔 처음 3일 동안 127명이 사망했고, 열흘 후엔 사망자만 5백 명이 될 만큼 콜레라가 빠르게 전파되었습니다. 이 시기 스노는 지도를 활용한 통계적인 방법으로 콜레라의 발생 원인을 밝혀 내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이 당시에는 콜레라 균의 존재를 몰랐습니다. 현미경에 의해 콜레라 균이 발견된 것은 30년도 더 지나서였습니다. 콜레라 균의 존재는 1883년 독일의 의사이자 미생물학자인 로베르트 코흐에 의해 처음 알려졌습니다. 스노는 런던 시내가 상세하게 표시된 지도를 구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콜레라로 감염된 환자의 집을 지도에 꼼꼼하게 표시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런던 소호 지역의 브로드가 있었던 우물 근처에 콜레라 사망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입니다. 스노는 이 우물물을 떠다 마신 사람들이 콜레라에 감염된 것이라고 가정하고 조사를 이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도 있었습니다. 브로드가에 가까운 한 공장에서는 감염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또한 주변의 맥주 양조장에 근무하는 직원들 또한 감염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밝혀진 사실은 공장 사람들은 자신들만이 마시는 우물이 따로 있었고, 양조장의 직원들은 물보다 맥주를 마셨다는 사실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습니다. 펌프에서 6km나 멀리 떨어져 있었던 지역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이 지역의 사망자는 평소 물 맛이 좋아서 브로드가의 우물에서 물을 받아 마셔왔다고 합니다. 스노는 콜레라의 발병 원인이 브로드가 우물의 오염된 물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브로드가의 우물은 어떻게 오염되었을까요? 계속된 역학 조사에서 그 원인까지 밝혀졌습니다. 펌프 주변에 살고 있던 한 부인이 콜레라로 감염된 아기의 기저귀를 빨았고, 이 물이 고장난 정화조를 통해 토양에 스며든 것입니다. 이 토양에 스며든 물이 브로드가의 우물을 오염시키면서 콜레라 대유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얼떨결에 콜레라 대유행을 시작한 범인처럼 여겨졌지만, 아기의 기저귀를 빤 부인은 잘못이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당시의 정화조와 상하수도 시설이 불안정했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역학 조사란 사회적 행위의 패턴을 연구하여 그 원인을 조사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역학 조사란 말을 지겹도록 들었지만, 런던에서 콜라가 유행하던 시절에는 이런 개념조차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스노가 콜레라의 원인을 발견한 과정을 최초의 역학 조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물 대신 맥주를 마신 양조장 직원들이 콜레라에 걸리지 않은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이 양조장은 브로드가 50번지에 있는 라이온 양조장입니다. 라이온 양조장은 1836년에 설립되었는데 19세기 후반까지 런던에서 꽤나 유명한 양조장이었습니다. 당시에는 70명의 이상의 직원이 고용되어 있었고 인근에서 두 번째로 큰 일터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 누구도 콜레라에 걸린 사실이 없었습니다. 양조장은 직원들에게 일정한 양의 맥주를 배급했고 직원들은 평소 물이 아닌 맥주를 즐겨 마셨습니다. 맥주는 안전한 음료입니다. 우선 맥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되도록 깨끗한 물을 찾아야 합니다. 오염된 물은 불순물을 남기기 마련이며 불순물은 그대로 맥주에 남습니다. 맥주를 만드는 과정 중에 맥아를 끓이고 끓는 맥아즙에 홉을 넣습니다. 물을 끓이면서 일차적으로 세균, 바이러스, 기생충 등이 제거되며, 홉의 성분에는 항균 성분이 있어 박테리아의 성장을 억제합니다. 그리곤 깨끗한 통에 넣고 발효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미생물 효모는 당분을 소화시켜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배출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사람이 배설한 쓰레기를 먹으면 치명적인 질병에 걸리지만, 맥주 효모가 배설한 쓰레기를 먹으면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취기가 뒤따라 오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나 봅니다. ‘간경화로 40대에 죽는 편이 이질로 20대에 죽는 편보다 낫다’. 양조장의 직원들이 질병의 원인을 알고 의도적으로 물대신 맥주를 마신 것은 아닐 테지만, 물보다 맥주를 마신 덕택에 콜레라로 감염된 도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한편, 스노는 자신이 질병의 근원을 알고 있고, 브로드가 우물의 펌프 손잡이를 제거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펌프의 물은 겉으로 보기에 깨끗했고, 여전히 물보다는 공기가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반대가 심했습니다. 1854년 9월 8일, 결국 펌프의 손잡이는 제거되었습니다. 스노의 주장을 믿어서라기보다는 달리 선택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펌프의 손잡이가 제거된 이후 2주간 900명을 사망시킨 콜레라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콜레라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펌프의 물을 막은 것을 질타했고, 오염된 물이 아니라 나쁜 공기가 사라져서 질병이 줄어들었다고 믿었습니다. 스노는 자신의 주장이 세상을 바꾸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스노가 죽은 후에 수인성 이론이 받아들여졌고, 그의 발견은 공중 보건과 역학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런던에 콜레라가 대유행한 이후 150여 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현재 당시의 라이온 양조장은 문을 닫았고, 새로운 양조장이 생겨나 양조장의 이름만 유지되고 있습니다. 양조장이 있었던 건물은 역사적으로 남아 문화유산으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브로드가에는 그때의 펌프를 기념물로 남겨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건너편에는 그때부터 있었던 맥줏집이 상호를 바꾸어 현재는 ‘John Snow’라는 이름의 술집으로 맥주를 팔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