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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의 새로운 Garage sparkling와인. 그리고 그 뒤의 Winemaker

캘리포니아의 새로운 Garage sparkling와인. 그리고 그 뒤의 Winemaker

Decanter Column 2016년 12월 13일

윌리엄 켈리가 101번 고속도로 옆 차고에서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하며 캘리포니아에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사람을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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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와인 혁명 중 다수는 상서롭지 못한 환경에서 시작되었다.

1980년대 버트 윌리엄스와 에드 셀리엄은 포레스트빌의 한 차고에서 러시아 리버 밸리 피노 누아를 가지고 불가능의 한계를 확장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마린 카운티의 한 창고에서는 케일린 셀러스의 테리와 프란시스 레이튼이 필터링하지 않고 효모 찌꺼기와 함께 숙성시킨 화이트 와인 생산을 시도했다.

그러니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캘리포니아 스파클링 와인이 차들로 붐비는 101번 고속도로 바로 외곽의 페탈루마 공업단지에서 탄생했다는 건 놀라울 일이 아니다.

닛산 자동차 대리점 맞은편, 맥주 공장 근처에 이 운동의 주도자인 마이클 크루스가 전통을 깨부수는 와인 생산 시설을 지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수작업으로 disgorging(침전물을 빼내는 것)과 riddling(와인병을 주기적으로 돌려 침전물을 모으는 것)을 하는 등, 캘리포니아에서 보기 힘든 노동집약적 장인의 방식으로 소량의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다른 생산자들이 크루스의 뒤를 따르거나 그와 계약을 맺으면서 미국의 스파클링 와인 시장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캘리포니아 스파클링 와인의 역사

물론 캘리포니아 산 스파클링 와인은 방금 태어난 것이 아니다. 매년 1,000만 상자 이상이 판매되는 미국의 스파클링 와인 역사는 부르고뉴 출신 폴 마송이 메소드 샹파누아즈 병입 방식으로 ‘캘리포니아의 샴페인 왕’이라는 별명을 얻은 20세기 초부터 시작되었다.

1960년대쯤에는 오늘날 우리가 잘 아는 스파클링 와인 시장의 형태가 대략 만들어졌다. 먼저 1965년, 잭과 제이미 데이비스의 나파 밸리 스파클링 와인 하우스 슈램스버그가 등장했다. 닉슨 대통령과 저우 언라이가 미국과 중국의 국교 정상화를 기념하며 축배로 든 것이 바로 그들이 생산한 1969 블랑 드 블랑(화이트 포도로 만든 화이트 스파클링 와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인들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1973년 모에 에 샹동의 도멘 샹동이 욘트빌(Yountville)에 문을 열었고, 역시 1970년대가 끝나기 전 뭄 나파도 합류했다. 그리고 1980년대에 이르자 프랑스인들이 나파 밸리 너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1982년에는 앤더슨 밸리에 루이 뢰데러의 뢰데러 에스테이트가 문을 열었고, 5년 뒤에는 테탱저가 카네로스에 도멘 카네로스를 세웠다. 따라서 캘리포니아에도 그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과 프랑스에서 건너온 사람들로 그 나름의 그랑 마르크(샹파뉴 지역 주요 생산자 협회)가 갖춰진 것이다.

레콜탕-마니풀랑(RM, Grower Champagne, 직접 생산한 포도로 만든 샴페인)의 영향력

그러나 크루스의 페탈루마 양조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그로워 샹파뉴 운동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우연과는 거리가 멀다. 크루스는 소위 농부가 만든 스파클링 와인 분야의 전문가다.

샹파뉴 지역에 방문한 그는 “고급 스파에 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2000년대 초 그로워 샹파뉴를 처음 접한 것이 스파클링 와인에 대한 그의 흥미에 불을 지폈다.

당시 크루스는 와인메이커가 아니라 과학자였다. 2002년 분자학과 세포생물학 학위를 받아 UC 버클리(여기에서 바로 그 테리 레이튼 교수를 통해 와인 미생물학을 접했다)를 졸업한 뒤 그는 처음에는 UC 버클리에서, 그런 다음에는 UC 샌프란시스코의 연구실에서 근무했다.

와인 업계에서 일하게 된 건 2006년 수확 시기부터였다. 그로부터 2년 뒤, 그는 두 명의 파트너와 함께 스파클링 와인을 전문으로 하는 와이너리 울트라마린을 세운다.

왜 그렇게 기술적으로 힘든 일을 택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처음부터 스파클링 와인 특유의 생산 과정에 매료되었었죠. 메소드 샹파누아즈는 어떤 면에서 마술 같기도 해요. 확실히 기법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와인 생산 방식이죠.”

처음부터 그들은 의욕적으로 나섰다. 크루스와 파트너들은 와인 생산에 필요한 장비들을 공들여 구매하거나 직접 만들었다. 리들링 보드, 디스고징, 도징, 탑업에 필요한 장비, 화이트 포도에 쓸 특별한 착즙기까지.

“우리는 모든 걸 제대로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가 말했다. 제대로 장비를 갖추는 것 말고도 크루스는 싱글 빈야드, 싱글 빈티지 포도만 사용하고, 공기 중에 존재하는 효모로 배럴 발효하고, 효모 찌꺼기와 함께 숙성시키며, 최소한의 도사주로 디스고징했다. 리들링과 거의 모든 일들을 손으로 했다.

지금까지 울트라마린에서는 소노마에 있는 찰스 하인츠 빈야드에서만 포도를 공급받아 블랑 드 블랑과 피노 누아로 로제를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시작 단계다. “처음 두 번 생산한 제품은 단순히 시도하는 단계였으니 본격적인 상업적인 출시는 2010 빈티지죠.” 크루스가 설명한다.

그리고 메소드 샹파누아즈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과정이기 때문에 데뷔작인 2010 빈티지도 이제 겨우 2년 전에 시장에 선보였을 뿐이다. 2012 빈티지부터는 블랑 드 누아(레드 포도로 만든 화이트 스파클링 와인)도 선보일 예정이다.

비슷한 다른 와인들도 기대하라

크루스 와인 컴퍼니는 고객 맞춤식 으깨기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어 다른 와이너리들도 크루스의 전문성과 다양한 장비를 이용해 메소드 샹파누아즈나 이보다 간단한 페티앙 나튀렐(Pétillant Naturel 자연 발효)을 택해 자신들의 라벨로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

그의 와이너리는 현재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온 고객과 협력자들로(기밀유지협약으로 인해 이름을 밝힐 수는 없다) 북적대며 풀가동 중이다. 게다가 이런 움직임을 시작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모건 트웨인 피터슨과 크리스 코트렐의 언더 더 와이어도 싱글 빈야드, 싱글 빈티지 캘리포니아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서너 곳의 새로운 와이너리 중의 한 곳에 불과하다.

내년 혹은 내후년에 웬즐로 빈야드에서 나올 대망의 산타 리타 힐스 스파클링 와인도 기대할 만하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이런 움직임도 거대한 바다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에 불과하다. 매년 판매되는 캘리포니아 스파클링 와인 1,000만 상자에 비교하면 말도 안 되게 적은 양이니 말이다.

게다가 크루스는 미국에서 고품질 스파클링을 생산하는 최초의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그로워 샹파뉴의 장인정신 투철한 방식과 테루아 위주의 철학을 개척하고 있는 그가 페탈루마의 작은 생산 시설 그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CREDIT

        • 작성자

          William Kelley

        • 번역자

          Sehee Koo

        • 작성일자

          2016.10.26

        • 원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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