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 와인이 최근 미국에서 눈에 띄는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올 상반기 기준 시장에서 유통된 캔 와인 판매 규모는 무려 2억 5300만 달러에 달했던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동기 1억 8360만 달러보다 무려 약 700만 달러의 성장세를 기록한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팬데믹에 빠진 국가와 도시들이 증가하면서, 집 안에서 홀로 와인 한 잔의 락(樂)을 즐기려는 혼술족이 늘었고, 이로 인해 접근성과 편의성이 높은 캔 와인에 대한 수요도 덩달아 급증했다는 분석이다.
그야말로 캔 와인 전성시대가 된 셈인데, 사실 지난 2010년대 처음 시장에 등장했던 캔 와인은 지금만큼 인기 있는 와인 품목은 아니었다. 시장에 첫 모습을 드러냈던 지난 2012년 당시 정통 와인 애호가들에게 고풍스러운 갈색 유리병이 아닌 단출한 크기의 캔에 담긴 와인의 등장은 그닥 탐탁한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시장에 등장했던 첫해, 캔 와인 시장은 단 약 200만 달러의 작은 시장을 형성하는 데 그쳤다.
동일한 크기의 동일 캔에 담겨 판매되는 캔 맥주가 시장 전면에 등장한 것이 지난 1990년대였다는 점과 비교해도, 캔 와인의 등장은 다소 늦은 감이 있다. 맥주도 한때는 유리병 속에 담겨 유통되는 병맥주가 대세였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누구나 쉽게 편의점에서 시원한 캔맥주를 즐기는 것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 여전히 캔 와인에 대해서는 기존 유리병 와인과 비교해 그 품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가진 이들이 상당하다. 이는 와인 역사 속 고급스러운 외관의 ‘갈색 병’이 차지하는 이미지의 중요성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상당수 와인 애호가들은 와인이라면 으레 고풍스러운 외관의 갈색 병에 담긴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런 이유 탓에 지난 2010년대 초 처음 시장에 등장한 캔 와인은 10년이 지나는 긴 시간 동안 많은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병 와인이 줄 수 있는 고유의 분위기를 해치고, 올드 빈티지 품목 같은 장기 숙성이 반드시 요구되는 와인에 활용할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단점이 부각돼 오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이제는 대세 중의 대세로 떠오른 캔 와인의 소형 포장 가능성과 누구나 쉽게 한 잔의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간편성을 갖췄다는 점에서 소비의 편의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MZ세대 사이에서 그야말로 ‘핫’한 와인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한 때는 캔 와인이 극복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평가받았던 품질적인 측면에서도 최근 들어와 그 수준이 크게 높아졌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2018년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권위있는 블라인드 테이스팅 행사에서 캔 와인이 높은 점수를 받기 시작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같은 매출 급증으로 전세계 유명 와이너리에서는 소비자들의 캔와인에 대한 수요 증가에 걸맞은 품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분위기가 목격될 수 있을 정도다. 가격적인 면과 접근성 등에서 일반 음료처럼 편의점에서 쉽게 구매하고, 소비할 수 있는 와인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기대와 기존 와인 병이 아닌 캔에 담아 판매하는 방식으로도 와인의 향과 품질을 유지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방안이 모색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유명 간행물 Market Watch는 올 상반기 기준 최소 전 세계 유명 와이너리 580곳에서 무려 1450가지의 캔 와인을 출시해 판매했다고 집계했다.
Archer Roose의 창업주 마리안 라이트너-월드먼 부부 역시 캔 와인에 집중해 와인을 생산, 판매해오고 있는 대표적인 와이너리 운영자다. 이 두 사람의 와이너리는 프랑스 프로방스 뤼베롱에 위치해 있는데, 매년 이곳에서 생산된 포도를 활용해 전 세계 각국의 와인 애호가들을 대상으로 매력적인 로제 와인을 판매해오고 있다. 이들의 대표 상품인 ‘아처 루즈 스피리츠 로제’는 부부가 직접 만든 캔 로제로 딸기의 단맛과 6%의 알코올 도수가 매력이라는 평가다.
특히 부부의 캔와인은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에서 생산된 포도를 기반으로 친환경, 비건 와인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들은 지금으로부터 약 7년 ‘아처 루즈’라는 명칭의 와이너리를 설립했고, 창업 당시 두 사람의 목표는 오직 소비자를 우선으로 하는 와인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부부는 “특히 우리가 만드는 와인에 대해 소비자들이 쉽게 접근하고 즐길 수 있도록 편의성을 높이고 싶었다”고 했다.
사실 두 사람은 모두 미국 보스턴 대도시 출신이다. 와이너리는 물론이고 소량의 와인을 생산할 만한 포도 농장도 운영해본 경험이 전무했던 상태였다.
마리안 라이트너-월드먼 부부는 경험 부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전 세계 유명 와이너리를 여행하면서 수많은 업체들과의 협력으로 저렴한 가격대의 편의성을 높인 캔 와인을 생산, 유통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던 것이다.
이들은 실제로 칠레의 소비뇽 블랑과 아르헨티나의 말베, 프로방스의 로제 와인 생산지까지 세계 각 지역의 와이너리를 차례로 방문해 캔 와인 생산에 대한 조언과 아이디어를 규합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이들 부부를 대표하는 캔 와인이다. 현재 부부가 생산해 판매하는 로제 캔와인의 가격은 250ml 캔 4팩이 15달러 수준이다. 주로 매년 여름 한 철 동안 청량한 맛과 향기를 선호하는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평가다.
부부는 자신들이 만든 캔와인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히는 유명 와이너리처럼 수 백 년에 걸치는 전통적인 역사는 우리에게는 없다”면서,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맛과 향이 좋은 고품질의 와인에 더 이상 브랜드 ‘딱지’는 필요가 없게 됐다. 지금의 시대를 사는 소비자들은 와인을 선택할 때 맛과 향, 그리고 재미와 와인에 대한 접근성이 높은 것을 균형 있게 선택하려는 경향이다. 우리 부부가 만든 캔와인의 핵심은 바로 소비자들이 더욱 쉽게 와인에 접근하고 친근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것이야말로 와인 시장의 ‘민주화’가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미국 나파(Napa)에 본사를 둔 와이너리 Erosion Wine Co. 역시 최근 나파 밸리 포도를 활용한 캔 와인을 출시해 눈길을 끄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이들이 최근 내놓은 캔 와인은 250ml 3팩 한 세트로 가격은 약 59달러 수준에 유통된다. 창업주 패트릭 루 씨가 출시한 캔 와인의 아이디어는 바로 캔에 담겨 유통되는 고급 수제 맥주였다.
패트릭 루 씨는 “많은 소비자들은 와인을 떠올릴 때 와인이 가진 고풍스러운 이미지와 낭만을 떨쳐내는 것을 힘들어한다”면서 “이런 소비자들을 위해 편의성은 물론이고 로맨틱한 캔 와인을 완성하기 위해 착안한 것이 바로 캔에 담아 판매하는 데 성공한 수제 맥주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와인 산업이 기존의 진지함 대신 재미와 흥미를 새 대표 이미지로 선택해야 할 시대가 도래했다는 입장이다. 패트릭 루 씨는 “캔 와인의 가장 큰 장점은 혼술족들이 즐기기 적당한 소량의 와인을 판매해 유통할 수 있다는 점”이라면서 “올 상반기 기준 판매된 전체 캔 와인 중 로제 와인이 32%로 큰 비중을 차지했고, 이어 스파클링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합친 비중이 약 45%에 달했다. 레드 와인은 전체 판매 수익의 약 6%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이들 캔 와인 생산자들이 꼽는 또 다른 매력은 캔와인이 가진 친환경적인 측면이다. 와인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이 환경 오염의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학자들의 경고에 대해 다수의 와이너리들이 화답해야 할 시기라는 분석이다.
아처 루즈의 라이트너 월드만 부부는 “친환경적 측면에서 지속가능한 와이너리를 경영해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면서 “캔은 그 무게가 비교적 가볍다는 점에서 운송 중 발생하는 탄소 발자국을 크게 줄일 수 있고, 기존의 유리병과 비교해 재활용의 측면에서도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패트릭 루 씨 역시 “오는 2040년을 목표로 탄소 배출 제로를 위한 세계 최초의 와이너리가 되는 것이 또 다른 경영 목표”라면서 “우리들은 높은 수준의 캔 와인을 맛보고 즐기는 것 외에도 다음 세대에게 깨끗한 행성을 물려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데 더 많은 와이너리와 소비자들이 힘을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