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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축한 여름밤의 샴페인

축축한 여름밤의 샴페인

송나현 2016년 6월 30일

여름날, 비가 다음 오후는 축축하다. 촉촉이 아닌 축축이 지배하는 어둑한 오후는 사람을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가뜩이나 땀이 많은 나인데, 그런 날이면 손수건이 젖을 정도로 땀을 닦아 내기 바쁘다.

유난히 무더웠던 작년 여름은 동생과 함께 투룸에서 보냈다. 처음 겨울에 집을 때는 창이 좁은 신경 쓰지도 않았고, 넓은 평수에 반해 바로 계약했다. 창문은 좁기도 좁았을 아니라 창문 개수도 얼마 되지 않았다. 방과 동생 방에 각각 1, 거실 천장 가까이 작은 창문이 2. 적은 창으로는 환기가 됐고, 여름밤 바람마저도 창문을 비껴갔다. 1년을 계약한 우리는 에어컨을 들여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해 여름은 악몽처럼 축축하고 불쾌했다. 만성 우울이던 나와 짜증을 부리던 동생은 싸움이 잦았고 별것도 아닌 일에 서로 탓을 하기 바빴다. 

<사진 :pixabay>

그렇게 찝찝한 여름이 가던 동생의 생일이 찾아왔다. 서로의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해 있던 상태라 굳이 챙겨주고 싶지 않았지만 밤늦게 집에 돌아가는 , 프랜차이즈 빵집에 들러 샴페인과 케이크를 사갔다. 집에 들어가니 마침 동생은 샤워를 마치고 나온 상태였다. 비가 다음 푹푹 찌던 저녁에 찌들어 있던 나도 샤워를 하고 나와 케이크를 앉은뱅이 상 위에 올리고 얼음을 채운 머그잔에 와인을 부었다. 거실에 마주 앉아 각자의 방에 있는 선풍기를 동시에 틀어 놓으니 에어컨 못지않은 바람이 우리의 화를 식혀줬다.  

사실 그때의 와인의 맛은 좋지 않았다. 달짝지근하고 청량감이라곤 찾아볼 없는 샴페인. 하지만 나와 동생은 맛없는 샴페인을 들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축축한 저녁, 선풍기를 최대로 틀어 놓고 샴페인을 마시며 나누는 대화는 생각보다 술술 풀렸다. 서로에게 서운한 , 고쳐야 , 공동으로 지켜야 규칙 . 도수 낮은 샴페인에 취했던 걸까? 우리는 오랜만에 마주 보며 웃음을 보였다. 다음 찝찝함이 가신 하늘은 쨍쨍한 태양을 내보이며 언제 축축한 오후가 있었냐는 오리발을 내밀었다.

축축한 여름밤이 다가올 때면 그날 저녁이 생각난다. 동생은 지금 군대에 있어 샴페인을 들고 집에 가도 같이 마셔줄 사람은 없지만, 샴페인은 혼자 마셔도 맛있고 기분 좋아지는 술이다. 애초에 기분 좋아지기 위해, 기분 좋은 마시는 술이 샴페인 아니던가. ‘샴페인을 터트리다라는 표현은 축하할 일이 있을 자연스럽게 나온다.

<사진 : pixabay>

하지만 그 여름밤 나와 동생이 마셨던 샴페인은 샴페인이 아니라 스파클링 와인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빵집 주인도!) 차이점을 잘 모른 채 혼동해 쓰곤 한다. 사실 샴페인은 스파클링 와인의 일종으로 프랑스 ‘샹파뉴 Champagne’ 지역에서 만들어진 스파클링 와인에만 붙이는 명칭이다. 또한 모스카토를 스파클링 와인에 가져다 붙여 말하는 경우는 자주 볼 수 있는데, 모스카토 또한 스파클링 와인의 일종으로 이탈리아 전통 화이트 포도 품종인 ‘모스카토’로 만든 달콤한 스파클링 와인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많은 스파클링 와인의 종류 중 왜 샴페인이 ‘축하’의 대명사가 된 걸까? 명확한 설은 없지만 몇 가지 기록을 참고해볼 따름이다. 496년에 샹파뉴의 대주교 성 레미가 당시 프랑크 왕국의 국왕 클로비스를 기독교로 개종시킨 후 세례식에서 샴페인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898년, 1825년 샹파뉴에서 열린 프랑스 국왕의 대관식 때 샴페인을 사용했다. 17세기 루이 14세의 대관식 때는 수백 통의 샴페인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프랑스 혁명 때 혁명군이 바스티유 감옥을 해방하고 샴페인을 마시며 기뻐했다는 기록도 있다.

나폴레옹은샴페인은 승리에는 마실 자격이 되고, 패배에도 필요하다.” 말했다. 그는 전쟁에 나가기 전에 승리를 기원하며 샴페인 목을 자르는 의식을 행했는데, 의식을 치르지 않은 경우 전쟁에서 패한 적이 있으므로 샴페인에승리 의미를 부여했다. 

굳이 축하할 일이 없어도 기분 좋아지고 싶은 날이면 샴페인 잔으로 그럴싸한 기분을 있다. 물론 정통 샴페인은 비싸 엄두도 내고 엇비슷하게 이산화탄소를 채운 스파클링 와인이 대부분이지만, 샴페인을 마신다는 기분으로 잔을 들어 올리자. 사르르 올라오는 거품은 입안의 세포를 깨워주고 포도의 향긋한 냄새는 입맛을 돋운다.

잔의 술이 대화를 끌어내고, 병의 술은 새로운 관계를 구축한다. 혹시 틀어진 관계에 마음 쓰이고, 교분(交分) 처음 쌓는다면 open up the champagne.

저절로 흥이 오를 것이다.

 


  샴페인 내용 참고: <https://m.imagazinekorea.com/daily/dailyView.asp?no=4751&pType=6&pType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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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현

마시고 먹는 것에 인생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대학생. 이 세상에 많은 술을 한번씩 다 먹어보기 전까지는 인생을 마감할 수 없다는 취지로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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