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제퍼드가 30년에 걸친 와인 테이스팅을 통해 배운 것을 오늘날의 젊은 와인 애호가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와인 테이스터 여러분께
이제 막 와인을 시작했는가? 그렇다면 와인의 매력을 발견했을 것이다. 더 많은 풍미와 지식, 이해에 목이 마를 것이다. 나 역시 처음 시작했을 당시를 잘 기억한다. 태고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강렬한 느낌, 새로운 발견의 흥분, 값비싼 돈을 들여 구입한 와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알쏭달쏭한 기분, 그 후의 실망감까지. 와인에 대해 배우면 배울수록 부족한 것만 같은 기분은 점점 더 커진다. 게다가 돈이 제법 드는 일이라 발전은 더디기만 하다.
그러다가 첫 번째 대규모 테이스팅이나 와인 쇼 같은 것에 가게 되고, 전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사방에서 덮쳐오는 아로마와 풍미에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그렇게 많은 감각들이 앞 다투어 다가올 때면 어떻게 각각을 이해할 수 있을까? 엉킨 실을 어떻게 푼단 말인가? 최대한 많이 테이스팅 해보려 애쓰지만 여러 풍미가 쌓이면 쌓일수록 혼란은 커져만 간다.
너무 걱정마라. 언젠가는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해의 속도는 노출 정도에 달려 있다. 와인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일과 후에 개인적으로 즐길 기회밖에 없는 사람에 비해 훨씬 더 빠르게 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앞으로 몇 십 년 동안 자신만의 감각을 찾게 될 기회가 충분할 것이고, 그것은 일종의 흥미로운 “일생에 걸친 성취”가 될 것이다. 달리 말해, 수백 가지 서로 다른 생산지에서 나온 와인 중 어떤 것들이 가장 전형적인 맛을 내는지 배울 것이고, 자신이 어떤 와인을 좋아하는지, 어떤 와인을 싫어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5-10년 후엔 산 것을 후회하는 것과 기뻐하는 것을 가려내면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건 그렇고, 미각을 갖춘다는 건, 세상을 냄새 맡고 맛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그건 다리를 갖고 있다는 기쁨, 세상을 걷고 달릴 수 있다는 즐거움과 비슷할 것이다. 달리 말해 이것은 젊은이들이 당연시 여기는 축복이다. 하지만 미각과 다리는 둘 다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현명하게 사용하고 꾸준히 운동해주어야 한다. 과도하게 사용하거나 방치하여 둘의 사용이 일찌감치 제한된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테이스팅은 왜 하는 것인가? 물론 우리 모두는 개인적인 즐거움을 위해 와인을 맛본다. 하지만 당신이 직업적으로 와인을 테이스팅하는 것이라면 남들을 대신해 와인을 맛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소믈리에는 손님들이 최대한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갖도록 돕기 위해 와인을 테이스팅한다. 와인 바이어나 판매 사원들은 어떤 와인이 고객에게 최저의 가격으로 – 고급 와인의 경우에는 적절한 가격으로 – 최대의 즐거움을 줄지 알아내기 위해서 와인을 맛본다. 와인 비평가는 비슷한 와인 중에서도 품질이 좋은 것을 알아내고 그것에 대해 표현하기 위해 테이스팅을 한다. 마지막으로 와인 작가나 블로거들은 와인 세상의 아름다움과 다양성을 전달하기 위해 와인을 테이스팅 한다.
와인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맡은 역할이 무엇이든 미각의 폭을 최대한 넓게 유지하고, 모든 종류의 아름다움에 열린 마음을 지녀야 한다. 일하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조금만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도 사람들의 미각이 얼마나 가지각색인지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람들 간의 차이의 가장 큰 축은 바로 당도, 산도, 온기, 와인에 존재하는 질감에 대한 민감도 – 그리고 호불호 – 다. 특정한 종류의 아로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다를 수 있다. 와인 속 과일 풍미의 중요성과 선호에 대한 판단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와인 테이스팅에서 마주치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다양한 형태의 훌륭한 와인에 개방된 마음을 지니는 것과 와인 양조 상의 실수나 오류 등을 감지했을 때 비판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의무를 명확히 구분할 줄 아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와인이 지녀야 할 가치의 순위는 당신과 당신의 미각에만 옳게 느껴지는 것이다. 완전히 다른 미각을 지닌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미래의 와인 세상을 좌우하는 역할을 지닌 와인 비평가와 작가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때로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와인도 구매하고 판매해야만 하는 와인 거래상이나 소믈리에의 경우에는 이 점이 덜 중요할 수 있다. 일부 고객은 정확히 그런 와인을 찾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존경하는 젊은 테이스터들에게 ‘마시기에 좋은 정도(드링커빌리티, drinkability)’라는 개념을 소개해야겠다. 다른 이들을 대신해 와인을 테이스팅할 때 우리는 테이스터가 아닌 드링커를 대신하는 것이다. 와인은 마시는 것이다. 와인 한 잔을 삼키는 행동은 잘 제련된 감각적 자극을 제공한다. 와인을 마시면 근심이 사라지고 즐거움이 생긴다. 소화와 신체적 건강을 돕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해당 와인은 얼마나 좋은가? 테이블에 내놓았을 때 확실히 술술 잘 넘어가는 와인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와인도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와인을 테이스팅할 때 드링커빌리티(바로 지금이든 숙성을 거친 후든)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와인 테이스터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단순히 와인의 품질을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드링커를 대신해 와인을 직접 마실 때 그런 품질이 가장 잘 드러나는 와인을 찾아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른 말로 설명해보겠다. 와인을 테이스팅할 때 “소음”을 측정하기는 쉽지만 음악을 듣기는 훨씬 어렵다. 고급 와인은 소음이 아니라 음악으로 이루어진다. 평생 와인을 마시다보면 소음이 가득한 시끄러운 와인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이러한 프로 권투 선수 같은 와인은 테이스팅하기에는 훌륭하지만 마시기는 어렵다. 그런 와인을 사서 창고에 가득 쌓아놓고 나면 이 말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훌륭한 테이스터는 테이스팅을 연습하듯이 마시는 것도 의식적으로 연습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와인이 잘 넘어가면 그 이유를 분석해보라. 마시기 어려우면 그 이유를 기억해두었다가 테이스팅 평가에 이용하라. 그렇게 하는 것이 직관에 어긋나거나 어울리지 않게 느껴진다고 해도 말이다.
드링커빌리티는 왜 중요한가? 그것이 바로 조화, 가장 기본적인 미적 가치의 증거, 어쩌면 가장 중요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물론 구조적으로, 분석적으로 테이스팅하는 것, 와인의 구성 요소를 측정하고 아로마와 풍미의 모양새를 평가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렇게 하면 와인의 평판에 휩쓸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평판에 의존해 인기를 누리는 와인도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와인의 구조적 분석만으로 모든 판단을 내리지는 마라. 훌륭한 와인은 공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훌륭한 와인은 산도가 높을 수도 낮을 수도 있고, 태닌이 높을 수도 낮을 수도 있으며, 알코올이 높을 수도 낮을 수도 있다. (특히 알코올은 와인을 분석하는 데 지배적인 힘을 발휘하기 쉽다. 라벨에 적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테이스팅을 하기 전에는 절대 알코올 도수를 확인하지 마라. 테이스팅을 한 후에도 예상과 달리 조화로움이 느껴지지 않을 때에만 확인하기 바란다.) 내 말을 믿어도 좋다. 조화의 가능성은 거의 무한하다.
그리고 나는 이제 풍미의 농축 정도는 과대평가된 부분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산도 조절이나 다른 형태의 극단적 양조 과정을 통해 인공적으로 쉽게 조절될 수 있다.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 와인은 풍미가 적절히 배치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지 풍미가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다.
괜찮지만 단순한 와인과 훌륭한 와인의 차이는 농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결’이라 이름 붙인 데 있다. 일종의 풍미와 질감의 연속체라고나 할까(와인 테이스터의 입장에서 시공간 연속체의 개념과 비슷하다). 최고 수준의 와인에서 우리가 찾아내야 하는 건 풍미의 농축이 아니라 결의 완벽성이다. 훌륭한 아로마는 코뿐 아니라 입에서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은 많은 젊은 와인 테이스터들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안기는 원흉이다. 그 이유는 최고 수준의 와인 시험에 붙느냐 떨어지느냐가 정해지기 때문이 하나요, 디너 파티에 게임으로 자주 등장하거나 와인에 흥미를 보이는 사람에게 속임수로 자주 쓰이기 때문이 또 하나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것 없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시험에 반드시 붙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실제로 와인을 마시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맞히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잔에 담긴 것을 명확히 평가하는 것이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의 진정한 가치는 그것이 평판을 배제하고 와인 자체를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시험에 꼭 붙어야 하는 경우라면 수업과 공부를 통해 충분히 그에 필요한 기술들을 습득할 수 있다.)
평생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이 미각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마음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결국에는 이것이 그 어떤 물질적 성공보다 더 중요하다. 우리는 하루 24시간을 우리의 마음속에서 살아간다. 그것이 쾌적하고, 질서정연하고, 다양성을 갖추고, 호기심 많고, 개방적이고, 정신 건강에 유익하다면 평생 살면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해낼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와인 테이스팅이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감각을 관찰하고 거기에 귀를 기울이는 방법을 배우고, 감각적 존재감과 기쁨의 세세한 부분까지 느끼는 법을 알게 된다. 세세한 부분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은 모든 분야에서 거의 모든 기술과 이해의 기본이고, 우리의 감각은 자아의 구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니 말이다.
드링커로서는 자제의 미덕을 배워야 한다. 이것 또한 유용한 교훈이 될 것이다. 훌륭한 드링커는 많이 마시는 것이 아니라 잘 마시는 사람이다. 훌륭한 드링커는 한 해에 마신 와인의 숫자가 아니라 그 와인을 마실 때 보였던 이해의 정도로 판단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와인을 맛본다는 건 곧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과 다양성을 맛보는 것과 같다. 와인은 세상을 열어준다. 와인 테이스팅에 있어 편견이 심한 사람도 있지만 그 수는 소수에 불과하고 그들의 성과는 높지 못하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맛보는 건 훌륭한 도전 과제이자 훌륭한 배움의 길이다. 다른 발견의 여정이 끝난 뒤에도 와인을 마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배움은 계속될 테니 말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와인을 즐겨보자. 인간으로서 세상을 즐길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니 말이다.
작성자
Andrew Jefford
번역자
Sehee Koo
작성일자
2016.05.30
원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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