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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상과 부스러기

잔상과 부스러기

정휘웅 2019년 6월 27일

 

 

 

잔상과 부스러기

사진 출처 : stokpic.com

사진 출처 : stokpic.com

과자를 먹다 보면 부스러기가 떨어진다. 라면을 먹다 보면 국물이 튄다. 짜장면은 아무리 조심스럽게 먹어도 꼭 흰 옷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기묘하다. 어쩌면 이렇게 우리는 완벽하고도 깔끔하게 정리를 할 수 없으며 흔적은 어떻게든 남기게 되는 것일까? 나는 사무실에 홀로 있는 것을 즐긴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하기 보다는, 사람들이 살았던 어떤 하나의 상념들, 그리고 영혼의 부스러기들이 여기저기 흔적처럼 피어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손때가 묻은 의자, 약간은 지저분해 보이는 마우스패드, 말끔하게 씻어두었지만, 매일 쓰고 있어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물 잔에 이르기 까지 무엇 하나 사람의 영혼이 느껴진다.

 

 

와인을 마시면 와인의 흔적이 남는다.

 

와인을 마실 때에도 나는 이와 비슷한 것을 느끼곤 한다. 아무리 깨끗한 와인 레스토랑이라 하더라도 잔에 닦는 이의 정성, 서비스 하는 이의 정성, 요리를 하는 이의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어딘지 모르게 투명하지 못하다. 잔 안에서는 알 수 없는 아로마가 코를 불편하게 만들며, 주변의 사물들이 조금 들뜬 것 같은 느낌을 지속적으로 보내온다. 요리는 뛰어난 식자재와 품질로 입 안에서 녹아나지만, 어딘지 모르게 차갑다. 속이 쿰쿰하고 어딘지 모르게 허리도 아프다. 그러나 겉으로는 도도해야 하니 몸은 정좌하고, 웃음을 잃지 않는다. 집으로 오는 길은 그 부조화 사이의 틈을 메꾸느라 들어간 에너지에 영혼은 흩어지고 에너지는 완전히 고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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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pexels-photo

반면 편안하고 좋은 자리를 함께 할 때에는 오히려 상승된다. 마음이 평안해지고 손끝은 가벼워진다. 약간 허리띠가 느슨해도, 옷매무새에 빵가루가 좀 떨어져도 그냥 즐겁고 편안하게 이야기 할 것 같다. 머리 아프게 만들던 일들도 알 수는 없지만 내일부터 술술 풀려나갈 것 같은 행복감에 젖어들고, 입 안에 만나는 와인의 느낌은 그 어떤 고가의 와인보다도 더 감미롭고 아름답게 전해진다. 아마도 와인 잔을 관리하는 이의 마음, 요리를 하는 이의 마음, 식당을 오고 가는 고객들이 속속들이 배어 녹여내는 영혼의 부스러기가 남아서 그처럼 따스한 느낌을 만들어내는 것이리라.

어느 술자리이든지간에 이러한 두 가 지의 상반된 느낌을 주겠지만 와인은 좀 더 그 영혼의 느낌에 많이 호소하는 것 같다. 와인을 마시게 되면 남자든 여자든 일단 경계심을 많이 내려놓게 되고, 나 스스로도 수다쟁이가 되며, 상대도 수다를 떨게 만들기 때문이다. 와인은 어쩌면 조용한 소란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서 고조곤하게 이야기를 꺼내든, 여러 사람이서 어떤 주제를 논하든, 그 톤은 높지 않더라도 그 안에 내재된 에너지는 대단할 것이다. 우리는 그 소통과 이야기를 통해서도 우리 영혼의 행복이라는 부스러기를 주변에 좀 더 떨어뜨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기운이 쌓이고 쌓여서 우리 주변의 마음 편한 공간으로 거듭나는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내가 집에서 아끼며 쓰는 잔 하나, 아끼는 와인 오프너, 셀러에 보관하며 언제 마실지 모르는 와인 한 병, 은은한 촛불의 분위기가 드러나는 조명과 멋진 야경이 비치는 테라스에 이르기 까지 무엇 하나 내 영혼의 잔상이 남지 않는 곳이 없을 것이다. 그 영혼의 잔상은 아마도 사진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었을 것이다. 속삭였던 이야기 말고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을 것이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 그리고 그 당시에 느꼈던 감정의 평안함과 주변이 나에게 주었던 따스한 감각들은 글로도, 사진으로도, 소리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일 것이다. 그 것은 아마도 나의 영혼이 흘린 빵 부스러기가 모여서 하나의 큰 추억을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적당히 흩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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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pexels-photo

봄날이 되니, 다시 가슴이 두근거린다. 봄처녀 마음 마냥 중년 남자의 마음도 여성적 감수성에 일렁인다. 내가 이전에 쓴 칼럼이나 커뮤니티, 페이스북 등을 뒤져보니 봄날이라고 온갖 상념의 부스러기들을 여기저기서 확인할 수 있었다. 너무 많이 산만하게 뿌렸을까? 앞으로는 좀 청소도 하고, 부스러기를 좀 덜 떨어뜨리는 연습도 해야겠다. 생각해보니 이전에는 와인 세상에 감정을 너무 흘리고 다닌다는 지적도 많이 받았다. 과도하게 감성적이다 보니, 주변 사람들과 사소한 오해와 다툼도 많았다. 우리가 와인에 과도하게 감정을 이입하게 되면 부작용으로 우선 와인에 집착하게 된다. 어느 순간 와인에 마음을 빼앗겨 무심코 좋은 와인을 마신 적도 있었다. 그러면 늘 뒤늦게 후회하게 된다. 와인이 기분을 높게 올려주었다면 다음날 카드 영수증은 나를 현실로 급속히 끌어내리는 저승사자다.

 

사진 출처 : pixabay

그러니 와인 마신다고 과하게 기분이 올라, 지갑과 카드를 여는 일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잘 뿌려진 영혼의 부스러기마저 싹 잊어버리도록 만들고 더 나아가 나쁜 추억으로 돌변시켜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오늘 저녁도 아마 많은 와인 애호가들이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영혼 가루를 쌈지처럼 주머니에, 마음속에 가득 담고 걸어 다닐 것이다. 그리고 그 부스러기를 조금씩, 여기저기 알게 모르게 바르고 뿌리고 다닐 것이다. 무리하지 않고 이 부스러기를 적당히 뿌린다면 이처럼 아름다운 계절이 어디 있을까 싶다. 시간이 나서 어딘가 둘러보니 나의 느낌, 그 때 그 자리 느낌이 느껴진다면, 그리고 그 것이 봄이라면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답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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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휘웅

- 김준철 와인아카데미 마스터, 양조학 코스 수료 - 네이버 와인카페 운영(닉네임: 웅가) - 저서: 와인장보기(펜하우스), 와인러버스365(바롬웍스) - (현)공개SW협회 공개SW역량프라자 수석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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