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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형 밑에서 자란 심지 곧은 동생, 브라티슬라바

유명한 형 밑에서 자란 심지 곧은 동생, 브라티슬라바

신동호 2017년 7월 3일

어릴 적부터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공으로 하는 스포츠는 직접 하는 것과 보는 것, 둘 다 내 취미 소관이었다. 올림픽과 같은 대형 이벤트는 반드시 챙겨봤는데, 우리나라 선수들의 선전도 중요하지만, 구기 종목 위주로 편성표에 형광펜을 그려갔다. 지금처럼 지구촌의 개념이 헐렁했던 시기라 올림픽 출전 국가의 개막식 퍼레이드만 봐도 낯선 국가들 천지였다. 나라 이름은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을 보면서 익혔던 것 같다. 야구와 축구 같은 경기는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스포츠이지만, 핸드볼은 달랐다. 올림픽 때 유독 찾아보는 구기 종목이다. 우리 선수들의 기량도 수준급이기에 보는 재미는 배가되었다. 상대 팀으로 자주 언급되는 나라가 있었으니, 그 하나가 유고슬라비아, 나머지 하나는 체코슬로바키아. 입에 붙지 않는 나라들이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동유럽 공산국가여서 나라 이름이 서늘하고 딱딱해 보였다. 현재는 국가도 나뉘고 이젠 이름에 온기를 붙어서, 훈훈한 각자의 스타일로 커가고 있다. 슬로바키아는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독립된 국가다. 그 수도인 브라티슬라바에 들어왔다. 새 학기 첫날, 날 선 반 공기와 직면하는 기분이다.

[사진 001] 빈티지함보다는 험악한 인상의 브라티슬라바 건물 외벽

 빛바랜 도시, 첫인상이다. 체코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독립 전, ‘체코’란 약자 표기가 익숙하도록, 브라운관은 날 그렇게 교육했다. 슬로바키아까지 읽지 않아도 됐다. 편견의 극을 달려보자. 체코는 좋은 스펙을 지닌 장남이라면, 슬로바키아는 다툼이 잦고 자기 관리가 느슨한 막내로 역할 분담을 해봤다. 실제 슬로바키아인은 그런 자격지심이 있을까. 오늘 처음 방문한 하룻강아지가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빨간색 트램이 브라티슬라바 도시 사이를 가로지른다. 오랫동안 바랜 도시에 붓질하는, 활력을 불어넣는 테이블 세터로 보인다. 아직은 회색 물이 빠지지 않았지만, 이른 시일 내에 반전을 꿈꾸는 브라티슬라바의 움직임이 보인다.

[사진 002] 브라티슬라바 시내를 관통하는 빨간색 트램

브라티슬라바 구시가지 중심에 있는 광장. 14세기에 형성된 광장인 만큼 오랜 역사를 안고 있다. 한때 히틀러 광장으로도 불렸다. 이 광장은 단순하지만 특별한 조형물들이 숨어있다. 건빵봉지 안에 들어 있는 별사탕과 같은 여행상품이랄까. 맨홀 뚜껑 속의 사내, 벤치 뒤에서 사람들의 말을 엿듣는 프랑스 병사, 앉아서 화장하는 여인, 두 손을 치켜든 붉은 곰 등 마치 아이템을 찾듯 여행객들은 포인트를 따라 움직인다. 생뚱맞을 수 있는 조각상이지만, 다소 칙칙한 광장 분위기를 가성비 높게 활성화한다. 누가 봐도 가장 인기 있는 조형물은 ‘맨홀 속 사내’. 작품명은 맨 앳 워크(Man at Work)다.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즐기듯 그의 표정이 살아있다. 가끔 이 조형물을 촬영하는 사람을 한 발짝 뒤에서 찍는 이도 있다. 노랗게 빛나고 있는 맨홀 속 사내의 모자에는 사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구경꾼이 자연스레 사라지는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셔터를 눌렀다. 쓸데없는 작은 쾌감이 밀려온다.

시내 한복판에 보물찾기하듯 서 있는 조형물들

가장 인기가 많은 맨 앳 워크

동유럽의 보헤미안을 훔쳐보려고 체코를 많이 찾는다. 그런 익숙함이 오히려 평범함으로 다가와 큰 감흥이 없었다. 브라티슬라바, 확실히 한산해서 좋다. 프라하보다 회색빛이 더 강해서 매력적이다. 약 1,000년 동안 헝가리의 통치를 받고, 그 이후에도 발전은 체코 쪽에 몰려서, 슬로바키아는 전통 농업 국가로 성장했다. 유럽에서 가장 작은 수도인 브라티슬라바란 수식어를 한 번에 이해했다. 소소한 볼거리가 많은 브라티슬라바,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성 엘리자베스 교회’이다.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어진 이 교회의 특징은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다. 건물의 외부와 내부가 모두 파스텔 색조의 파란색으로 물들어 있어서 블루 처치(Blue Church)로 불린다. 마치 벨기에에서 태어난 스머프의 집을 옮겨 놓은 듯해서 꼭 한 번쯤은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구시가지에서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니 파란 성당을 보고 오세요.

[사진 008] 하늘에서 내려온 교회, 성 엘리자베스 교회

여행객 한 명이 거리에 눕는다. 피곤해서, 술 취해서 눕는 게 아니라 자신이 대표로 증명해 보이겠다는 소명의식이 엿보인다. 무언가와 비교하려는 모양이다. 가까이 가보니 그 옆은 별다른 특징이 없는 케밥 집이었다. 뭐야 싱겁게… 그런데 다른 여행객들이 케밥 집 앞에서 뷰파인더를 조정한다. 뭐지? 유명한 맛집인가? 1차원적인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와이파이가 되는 곳으로 옮겨서 검색해보니, 이 케밥 집의 비밀이 풀렸다.

 

[사진 009] 미카엘 문 앞에 무언가 존재한다.

이 케밥 가게는 세계에서 가장 좁은 폭의 건물에 있는데, 얼마냐 좁냐면 초등학생 키 정도에 불과하다. 이곳은 브라티슬라바 올드 타운을 지나는 미카엘 문(St. Michael’s Gate) 바로 앞이다. 건물의 폭이 130cm로, 세계에서 가장 좁은 폭을 지닌 건물이다. 문득 생긴 의문점이… 이 가게의 매출이다. 장사가 잘 안될 것 같은 조건이다. 보통 이런 타이틀을 가진 가게(부산 국제시장의 ‘꽃분이네’)는 사진의 배경으로만 유명하여 매출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10분 동안 케밥 집 문으로 들어가는 고객은 볼 수가 없었다. 영화 <노팅힐>의 그 책방도 한 때 문을 닫았는데, 같은 행보를 걸을까 걱정된다.

[사진 010] 세계에서 가장 좁은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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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호

발로 기억하는 보헤미안, 혀로 즐기는 마포술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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