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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가 사랑한 와인 마을 7탄 _ 카넬리

우리 부부가 사랑한 와인 마을 7탄 _ 카넬리

와인쟁이부부 2018년 12월 7일

시간이 흘러도 유독 기억에 남는 와인 산지들이 있다. 그런 곳들을 곰곰이 떠올려보면 그 교집합에는 ‘의외성’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보통 우리 부부는 와인 산지를 여행하기 전에 사전 조사를 꽤 꼼꼼히 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피에몬테를 한 달 여행하게 된다면 일정 동안의 모든 숙소와 방문할 와이너리를 미리 정해놓고 비행기에 오른다. 가능하면 이동 경로와 레스토랑까지 미리 정해두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최소화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여행에는 반드시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소매치기라든지 타이어 펑크 같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변수도 심심치 않게 맞닥뜨리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장소에서 좋은 와인을 마시게 되는 행운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의외의 행운’들이 종종 인생의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마치 뮤지컬 영화를 즐겨보지 않았던 우리 부부가 <라라랜드>를 인생 영화로 꼽게 된 것처럼.

거창하게 서두를 시작했는데, 오늘 소개하는 ‘카넬리 Canelli’가 그런 의미에서 기억에 남는 와인 마을이다. 카넬리는 피에몬테 주의 동쪽, 아스티 Asti 지방에 있다. 바롤로에서 차로 약 1시간 정도 거리. 사실 우리 부부는 이곳을 방문할 계획이 전혀 없었다. 바롤로나 바르바레스코의 와인을 경험하기에도 일정이 빼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연히’ 방문했던 ‘라 스피네타 La Spinetta’ 와이너리 오너의 적극적인 추천이 우리 부부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우연이 주는 마법을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카넬리는 피에몬테가 자랑하는 프리미엄 스푸만테(스파클링)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다. 보통 피에몬테의 유명 스파클링 와인을 떠올리면, 국내에서 아주 인기가 좋은 달달한 모스카토 다스티 Moscato d’Asti나, 브라케토 다퀴 Braquetto d’Aqui가 쉽게 연상될 것이다. 하지만, 피에몬테에서도 오랜 시간 동안 프랑스 샴페인에 버금가는 스푸만테를 만들기 위해서 늘 고심했었고, 그 혁명의 중심에 카넬리, 그리고 그 혁명을 이끈 카를로 간치아 Carlo Gancia가 있었다.

현재 아스티 지역의 가장 거대하고 가장 유명한 스푸만테 생산자 중 하나인 간치아의 설립자, 카를로 간치아는 일찍이 프랑스 샴페인의 수도인 랭스 Reims의 와이너리에서 일하면서 샴페인 양조방식을 배운 뒤 1850년 피에몬테로 금의환향 한다. 그는 치바쏘 Chivasso에 프라텔리 간치아 Fratelli Gancia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2차 병 발효 방식으로 탄생한 프리미엄 스푸만테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는 프랑스 품종인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한편, 1865년에는 지역의 오랜 전통 품종이었던 모스카토 Moscato를 활용한 새로운 스푸만테를 이탈리아 최초로 선보이면서 일대 혁신을 일으키게 된다.

피노 누아, 샤르도네, 그리고 모스카토를 가지고 최초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든 카를로 간치아 / 사진 제공: 배두환

그의 노력과 성공에 힘입어 이 지역의 스파클링 와인 산업은 승승장구하게 되는데, 특히 카넬리 인근에는 프랑스에서 건너온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가 넓게 재배되면서 고급 스푸만테 생산의 초석이 되었다.

현재 아스티 스푸만테 Asti Spumante DOCG라고 하면 100% 모스카토 품종으로 만든 2차 병 발효 스파클링 와인을 의미한다. 특히 2011년에는 약 80ha 포도밭 규모의 ‘알타 랑가 Alta Langa’를 DOCG로 새롭게 승격시키면서 와인의 고급화에 박차를 가했다. 알타 랑가 DOCG는 해발고도 250m에 위치한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두 품종 비율이 거의 90~100%)를 샴페인 방식으로 만든 고급 스푸만테를 의미한다. 포도밭의 경사가 매우 가파르기 때문에 손으로만 포도를 수확해야 하고, 철저히 샴페인 방식으로 만들되, 최소 숙성 연도는 기본이 30개월, 리세르바 등급은 36개월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 부부가 방문한 와이너리는 콘트라토와 간치아 두 곳이다. 그리고 이 두 와이너리에서의 경험은 이 마을을 방문할만한 이유와 가치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한국 시장에서도 매우 탄탄한 입지를 다진 간치아에서의 투어는 그 의미가 깊었다. 양조장은 ‘가장 크고 오래된’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만했다. 당시 양조장은 향후 안전을 위해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진행할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 부부는 오히려 리노베이션 이전의 이곳을 방문하게 된 것을 행운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간치아의 양조시설은 이탈리아 스푸만테의 역사를 보는 것과 같았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보여주는 퓨피트리. 여전히 직접 손으로 리들링한다. / 사진 제공: 배두환

시음은 베네토 지역의 특산 와인인 프로세코로 시작해 그들이 일구어낸 모스카토 다스티, 최고급 퀄리티의 알타 랑가 2011 빈티지 스푸만테로 마무리되었는데, 모두 각자의 개성과 이탈리아 스푸만테의 좋은 요소들이 잘 담겨 있는 와인들이었다.

왼쪽부터 프로세코 드라이, 모스카토 다스티, 알타 랑가 스푸만테 / 사진 제공: 배두환

1867년 주세페 콘트라토 Giuseppe Contratto에 의해 설립된 콘트라토 Contratto 와이너리는 간치아와 더불어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스파클링 와인 양조장이다. 특히 이곳에서 출시한 ‘1919 Contratto Extra Brut’은 이탈리아 최초의 빈티지 스푸만테로, 로얄 패밀리들이 즐기는 스푸만테로 명성이 자자했다. 2011년, 라 스피네타 La Spinetta의 리베티 Rivetti 가문이 인수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우리 부부는 콘트라토에서 와이너리 투어를 하면서 두 가지에 큰 놀라움을 느꼈는데, 하나는 위에서 설명한 알타 랑가 DOCG 스푸만테의 뛰어난 품질. 그리고 또 하나는 오랜 역사를 가진 압도적인 규모의 지하 셀러이다.

지하 셀러에 마련된 근사한 테이블. 이곳에서의 테이스팅은 영화의 한 장면보다 더 영화같다. / 사진 제공: 배두환

콘트라토의 지하 셀러는 랭스의 역사적인 샴페인 생산자인 테텡저 Taittinger의 그 유명한 지하 셀러와도 견줄 만큼 압도적인 규모와 분위기를 자랑한다. 사실 이 지하 셀러는 카넬리에 위치한 모든 와이너리들이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 전체를 ‘the Underground Cathedral(지하 대성당)’이라 부른다. 이 대성당은 카넬리 마을 전체를 휘감고 있기 때문에 다 합치면 그 길이가 무려 20km에 달한다고 한다. 19세기 당시 자신들이 만든 고귀한 스푸만테를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파 내려간 이 위대한 지하 셀러는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대단한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지하 셀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Vineyard Landscape of Piedmont: Langhe-Roero and Monferrato>의 일부로서 인정받았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세계 문화 유산 지하 셀러 / 사진 제공: 배두환

콘트라토의 지하 셀러는 개중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 받는다. 와이너리 내부에는 19세기에 쓰던 스푸만테 양조 시설들이 전시된 박물관도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의 양조 역사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긴 투어 후에 이곳의 프리미엄 스푸만테를 경험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이탈리아 스푸만테의 고정관념을 깨버리기에 충분했다. 영화 <라라랜드>의 엔딩을 보며 관객들이 마법에 걸리는 것처럼, 우리는 시음 내내 카넬리 와인의 마법에 빠지는 것 같았다. 예측하지 못했던 것에서 오는 신선한 충격과 감탄은 지금까지 카넬리 마을을 잊지 못하게 만든다.

박물관을 꼭 가보길 바란다. / 사진 제공: 배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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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쟁이부부

선후배 사이였던 와인 매거진 기자 출신 남자, 소믈리에 출신 여자. 살아오며 경험한 와인의 절반을 함께 마셨고, 앞으로 만나게될 와인들은 항상 같이 마시게 될 동반자 관계. 평소엔 식당 주인, 때론 여행작가, 이따금 와인 강사, 이곳에선 와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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