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와인에서 몬테풀치아노 Montepulciano는 꽤 흥미로운 위치를 가진 단어다. 토스카나에서 이 단어는 마을 이름 혹은 이 마을 근방에서 탄생하는 고급 와인인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 Vino Nobile di Montepulciano DOCG로 통하지만, 이탈리아 중–남부의 마르케 Marche나, 아브루쪼 Abruzzo 등지에서는 레드 품종의 이름으로 먼저 거론된다.

물론 전자의 마을(혹은 와인) 이름이 더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혹시 누군가 몬테풀치아노 품종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대부분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와 혼동하여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몬테풀치아노 품종 와인을 알려야 하는 생산자의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심정일 수도 있다. 참고로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는 몬테풀치아노 품종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산지오베제, 더 정확히는 산지오베제의 형제 품종이라 할 수 있는 프루뇰로 젠틸레 Prugnolo gentile로 만들어진다.

이런 오해가 생긴 것은 (여전히 추측이긴 하지만) 과거에 오랫동안 몬테풀치아노가 산지오베제의 다른 이름 중 하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두 품종의 특성이 완전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떤 이들은 몬테풀치아노 품종이 시에나 지방의 동일한 이름의 지역에서 시작되었다가 이탈리아 중–남부 지역으로 퍼졌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또 다른 의견으로는 이 품종의 진정한 요람이 바로 아브루쪼라고 말한다.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montepulciano’에는 와인 애호가들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다.

아부르쪼의 몬테풀치아노 포도밭 전경 / 사진 제공: 배두환

몬테풀치아노로 만든 레드 와인은 국내에서 꽤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아왔다. 대표적으로 유명 와인 만화인 <신의 물방울>에 등장해 이슈를 불러일으켰던 요리오 Jorio부터 시작해, 개인적으로 꽤 좋아하는 브랜드인 파네세 Farnese의 몬테풀치아노 와인은 국내 와인 시장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와인들이다. 이외에 몬테풀치아노 품종의 컬트라고 일컬어지는 쿠르니 Kurni는 이 품종이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슈퍼 프리미엄 와인으로 탄생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훌륭한 예다. 개인적으로 쿠르니는 우리 부부가 마르케를 여행해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를 제공한 와인이기도 하다.

참고로 몬테풀치아노는, 동명의 마을 이름에 가려져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은데, 2015년 기준(출처: https://italianwinecentral.com/) 산지오베제 다음으로 이탈리아에서 많이 재배되는 레드 품종이다. 아마 이변이 없는 한 미래에도 부동의 2위를 지킬 것으로 예상이 된다. 그 이유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은 와인을 생산하는 풀리아 Puglia 주에서도 이 품종을 적극적으로 재배하면서 그 범위가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몬테풀치아노는 북부와 남부의 몇몇 주를 제외하고 (심지어 토스카나에서도!) 대부분의 지방에서 이 품종을 재배한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품종의 진정한 요람은 아브루쪼와 마르케다. 우리 부부도 이 두 지역에 대한 호기심이 무척 강했기 때문에 지난 이탈리아 와인 여행을 기획하면서 루트에 콕 집어넣었다.

우선 이번 화에 마르케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편에 아브루쪼를 다뤄볼 계획이다. 개인적으로는 마르케에서의 기억이 더 좋았는데, 그 이유는 온전히 와이너리 때문이다. 와이너리 이야기는 차차 하고 우선 지역의 개관부터 살펴보자.

마르케는 한국에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아드리아해를 품은 바다와 신록이 가득한 구릉 그리고 해발 2,000m가 넘는 시빌리니 Sibillini 산맥이 공존하는 자연 친화적인 지역으로 유럽인들에게 정평이 난 곳이다. 지역의 유명 인사로는 세계적인 예술가인 라파엘로 Raffaello Sanzio da Urbino를 들 수 있으며, 그의 고향인 우르비노 Urbino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명 관광지다.

구릉지에 위치한 마르케의 포도밭. 햇볕이 따사롭다. / 사진 제공: 배두환

와인 생산량은 100만 헥토리터에 살짝 못 미치는 양으로, 이탈리아 20개 주 중에서 13위에 랭크(2017년 기준)하고 있다. 이전에 소개했던 움브리아(14위)처럼, 작지만 내실 있는 와인 산지가 바로 마르케다.

DOCG는 총 다섯 개가 있는데, 13위의 규모에 비해서는 많은 편이다. DOCG와 DOC 중 언급할만한 것들에는 코네로 Conero DOCG, 베르나챠 디 세라페트로나 Vernaccia di Serrapetrona DOCG, 카스텔리 디 예지 베르디키오 리세르바 Castelli di Jesi Verdicchio Riserva DOCG, 로쏘 피체노 Rosso Piceno DOC, 콜리 페사레시 Colli Pesaresi DOC 정도다.

코네로 DOCG의 지역 경계는 로쏘 코네로 DOC와 완벽히 일치하기 때문에 두 개의 품질 와인이 공존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둘 모두 몬테풀치아노 품종을 85% 이상 써야 하며, DOCG 딱지를 붙이려면 반드시 2년 이상 숙성을 거쳐야 한다.

베르나챠 디 세라페트로나 DOCG는 흥미로운 와인이다. 정통 레드 스푸만테를 생산하는 곳으로 2004년 8월에 DOCG로 승급되었다. 베르나챠 네라를 85% 이상 써야 하고 그 외에 다른 품종(몬테풀치아노, 산지오베제 등)들을 짧게 말린 후 섞어서 만든다. 특히 베르나챠 네라가 건조에 적합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포도를 수확한 후 이듬해 6월 30일 전에는 판매가 금지되어 있는 정통 스푸만테다. 포도 재배지는 해발 450~600m의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고, 재배 범위가 매우 작기 때문에 귀한 와인 중 하나로 여겨진다.

카스텔리 디 예지 베르디키오 리세르바 DOCG는 마르케를 대표하는 화이트 와인이다. 베르디키오는 마르케에서 아주 오랫동안 재배되어 온 화이트 품종이다. 어원은 초록빛을 뜻하는 라틴어 ‘viridicare, viridis’에서 유래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로마 군인들의 행군에도 그들의 사기와 힘을 유지하기 위해 이 베르디키오 와인을 제공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마르케의 주도인 안코나 서쪽에 위치한 ‘예지 Jesi’ 마을의 베르디키오 포도로 만들어진다. DOCG는 100% 드라이 화이트 와인으로만 구성되며, DOCG 씰을 달기 위해서는 18개월의 숙성과 6개월의 추가 병 숙성이 요구된다.

로쏘 피체노 DOC는 마르케 동쪽 지역 해안의 넓은 지역으로 마르케 최초의 DOC다. 꽤 많은 지역을 아우르는 만큼 이 지역에서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와인들이다. 몬테풀치아노와 산지오베제가 주요 품종.

마지막으로 콜리 페사레시 Colli Pesaresi DOC는 생소한 명칭일 테지만, 꽤 흥미로운 와인들이 탄생하는 곳이다. 세 개의 서브 존이 존재하는데, 특히 포카라 Focara, 론칼리아 Roncaglia를 주목해야 한다. 여기 두 지역에서 재배하는 피노 누아의 품질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숙성 여부에 따라 리세르바도 붙을 수 있는데, 화이트의 경우 최소 18개월 숙성, 레드의 경우 최소 2년이다. 참고로 피노 네로(피노 누아)로 화이트 와인을 만들기도 한다.

마르케 2편에서는 1편에서 못다한 여행 이야기를 해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