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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와인 마을 8탄 – 트라민

우리가 사랑한 와인 마을 8탄 – 트라민

와인쟁이부부 2018년 12월 21일

개인적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주를 하나 꼽으라면 트렌티노 알토 아디제 Trentino-Alto Adige다. 이탈리아 북부, 오스트리아와 맞닿아 있는 산악 지대.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겠지만, 이곳은 ‘트렌티노’와 ‘알토 아디제’로 명확히 구분된다. 트렌티노의 중심 도시는 ‘트렌토 Trento’. 알토 아디제의 중심 도시는 ‘볼차노 Bolzzano’.

트렌티노 알토 아디제는 한때 유럽을 주름잡았던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 후, 영토가 쪼개지면서 1919년 이탈리아에 속하게 된 곳이다. 그 때문에 정치, 문화적으로나 와인으로나 다른 와인 산지와 비교해 독특한 색을 가지고 있다. 사용하는 언어도 이탈리아어와 독일어가 혼재한다. 조사에 따르면 인구의 70%는 독일어를 사용할 정도. 우리 부부도 여행하면서 느꼈지만, 북으로 올라갈수록 더 많은 사람이 독일어를 쓰는 듯 보였다.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이탈리아어, 독일어 혹은 영어까지 3개 국어를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 같아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현지 와이너리 직원의 설명은 달랐다. 세대 간에 배워야 하는 주요 언어가 계속해서 바뀌는 바람에 문화적, 언어적 차이가 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도 꽤 있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곳 주민 중 오스트리아로의 귀속을 원하는 이들이 꽤 된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트렌티노 알토 아디제를 ‘수드티롤 Südtirol(영어로 South Tyrol)’이라고 부르는데, 본래 티롤 Tyrol은 오스트리아주의 이름이다. 심지어 2017년 말, 오스트리아 새 정부가 남티롤 주민에게 이중국적을 허용하겠다는 구상을 밝혀서 이탈리아 정부를 분노케 했다는 기사도 찾아볼 수 있다. 여하튼 정치적으로나 와인으로나 꽤 복잡한 동네임이 틀림없다.

이런 역사 때문에 독일 품종으로 만든 와인들이 상당히 많고, 이탈리아지만 와인 산지 지명을 쓸 때 독일어가 따로 존재한다. 예를 들어 알토 아디제 DOC의 서브 지역인 ‘Lago di Caldaro’는 ‘Kalterersee’라는 다른 명칭이 존재한다.

와인 산지는 북의 알토 아디제와 남의 트렌티노가 꽤 뚜렷이 나뉘는 편이다. 알토 아디제는 중심도시 볼차노를 중심으로 삼면에 프로펠러처럼 와인 산지가 펼쳐져 있는 형상이고, 트렌티노는 트렌토를 중심으로 북쪽에 약간, 그리고 남쪽에 길게 뻗어 있는 형태다. 둘의 공통점이라면 돌로미티산맥을 흐르는 강을 따라 계곡에 와인 산지가 발달해 있다는 점. 그 때문에 어딜 가나 높은 봉우리와 포도밭을 볼 수 있는 멋진 곳이다.

수드 티롤의 산봉우리와 포도밭 / 사진 제공: 배두환

이처럼 산맥과 그 기슭에 와인 산지가 위치한 경우 일교차가 꽤 크기 때문에 화이트나 스파클링 와인이 우세하다. 레드 와인의 경우도 우아하고 섬세한 스타일이 강세를 보이는 편이다. 트렌토 DOC가 롬바르디아 주의 프란치아코르타 Franciacorta와 더불어 이탈리아 최고의 스파클링 와인 산지라는 것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참고로 이탈리아의 국가 대표 스푸만테인 ‘페라리 Ferrari’의 본사도 트렌토에 있다.

알토 아디제의 경우 수준 높은 화이트 와인(대개 독일-오스트리아 품종)과 이 지역 전통 품종으로 만든 레드 와인들이 유명하다. 와인 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알로이스 라게더 Alois Lageder라든지, 제이호프슈타터 J.Hofstatter, 포라도리 Foradori, 마닌코레 Manincore 같은 우수한 양조자들도 거의 알토 아디제에 몰려 있는 편이다. 비율로 따지면 레드보다는 화이트 품종이 약간 더 비중이 높다. 가장 많이 재배되는 순으로 따지면, 피노 그리지오 Pinot Grigio, 게뷔르츠트라미너 Gewurztraminer, 샤르도네 Chardonnay, 피노 블랑 Pinot Blanc, 소비뇽 블랑 Sauvignon Blanc, 뮐러 투르가우 Muller Thurgau, 리슬링 Riesling, 실바너 Sylvaner, 케르너 Kerner 등이다. 독일 및 오스트리아의 주요 화이트 품종이 대세임을 알 수 있다. 특히 게뷔르츠트라미너는 세계 정상급의 퀄리티를 맛볼 수 있다.

주요 토착 레드 품종에는 스키아바 Schiava, 라그레인 Lagrein, 테롤데고 Teroldego, 마르제미노 Marzemino가 있다. 개인적으로 마르제미노로 만든 신선한 레드 와인을 좋아하는 편이다. 마르제미노는 모차르트도 사로잡은 품종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사가 Da Ponte가 모차르트를 만족시키기 위해 오페라 돈 조반니에 “와인을 따라라, 저 훌륭한 마르제미노를…”이라고 대사를 외치도록 했다는 일화가 있다. 진한 루비색에 섬세한 과일 향, 제비꽃을 연상시키는 아로마, 적당한 알코올과 바디, 약한 타닌 등이 특징이다. 진지하게 마시는 와인이라기보다는 편안하게 즐기기 좋은 데일리 와인으로 적당하다.

우리 부부는 이 지역을 두 번 여행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마을이 이번에 소개하는 트라민 Tramin. 정식 명칭은 ‘트라민 안 데르 바인스트라세 Tramin an der Weinstraße’(이탈리아어: Termeno sulla Strada del Vino)다. 독일어로 ‘an’은 ‘~에 접하여’라는 뜻이고, ‘der’는 정관사 ‘the’.  Weinstraße는 ‘와인 산지를 통과하는 도로’라는 뜻이다. 이름에서부터 와인의 향이 느껴진다. 비단 트라민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 지역을 꼭 한 번 방문해보기를 추천한다.

트라민 마을 입구. 우거진 나무와 나이든 벽돌이 나를 반긴다 / 사진 제공: 배두환

트라민은 이 지역의 유명 와인 생산자인 제이호프슈타터 J.Hofstätter를 방문하기 위해 들렀던 마을이다. 제이호프슈타터는 알로이스 라게더 Alois Lageder와 함께 이 지역을 대표하는 와인 생산자다. 110년 전인 1907년 요세프 호프슈타터 Josef Hofstätter에 의해 설립된 후 4대째 뛰어난 품질의 와인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게뷔르츠트라미너피노 누아의 퀄리티는 세계 정상급이라고 평가받는다. 이곳은 특별한 사전 예약 없이도 마을 내에 위치한 에노테카에서 테이스팅을 즐길 수 있다. 지갑 사정이 넉넉하다면 와이너리 내의 레스토랑에서 지역의 전통 음식과 그들의 와인을 함께 즐기는 것도 추천한다.

제이호프슈타터 와이너리 입구. 이탈리아에서 보는 독일어 환영 문구가 참 신기하다 / 사진 제공: 배두환

뛰어난 퀄리티의 피노 누아. 이탈리아에서는 피노 네로라 불린다 / 사진 제공: 배두환

모던한 스타일의 내부 레스토랑 / 사진 제공: 배두환

이외에도 마을 이름과 동명의 칸티나 트라민 Cantina Tramin도 강력 추천한다. 1889년 설립되어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협동조합인 칸티나 트라민은 감각적인 외관의 에노테카가 눈길을 끄는 곳이다. 협동조합 와인의 미덕답게 저렴한 가격에 와인을 사고 시음할 수 있는데, 가격 대비 와인의 퀄리티가 매우 훌륭하다. 거기에 직원의 친절함까지 더해져 모든 것이 좋았던 기억으로 남는 곳이다. 이곳을 여행하게 되면 반드시 방문해보기를 추천한다.

인상적인 칸티나 트라민의 외부 전경 / 사진 제공: 배두환

이밖에 우리 부부는 알로이스 라게더, 마닌코레, 페라리, 산 레오나르도 San Leonardo와 같은 지역의 유명 생산자들을 방문할 수 있었다. 순수하게 와인 애호가가 아닌 여행객의 처지에서 봤을 때도 페라리를 제외한 나머지 와이너리들을 꼭 가보기를 추천한다. 페라리의 경우 와이너리 내에서의 단순 시음은 불가능했다. 반드시 사전 예약을 한 뒤 와이너리 투어를 해야만 한다.

이 지역 최고의 바이오다이나믹 와인 생산자이자, 세계가 인정한 와인 퀄리티를 선보이는 알로이스 라게더는 사실 방문 1순위 와이너리다. 단순 와인 시음도 가능하고 캐주얼한 레스토랑과 커피 샵이 있어서 여행에 지친 몸을 쉬기에도 아주 안성맞춤이다. 거기에 알로이스 라게더가 위치한 마그레 Magré 마을도 꽤 운치 있고 아름답다. 당시 우리는 빼곡한 일정에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이동하기로 했는데, 마그레 마을 광장 안 벤치에 앉아 탁 트인 전경을 감상하며 먹은 샌드위치 점심은 꽤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알로이스 라게더의 테이스팅 와인 / 사진 제공: 배두환

시간 여유가 있다면 마닌코레도 추천한다. 1608년 Hieronymus Manincore에 의해 지어진 역사적인 건물과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와이너리로, 알로이스 라게더와 같은 친환경 와인 생산자다. 특히 피노 누아의 품질이 상당히 좋았다.

마닌코레의 피노 누아(네로) / 사진 제공: 배두환

마레코닌의 유기농 포도밭 / 사진 제공: 배두환

와이너리 간 이동을 위해 우리는 고속도로보다 국도를 선택했다. 장엄한 돌로미티산맥. 그리고 그 기슭에 융단처럼 깔린 푸르른 포도밭의 자태와 와인 가도를 따라 점점이 수놓은 마을들까지 와인 여행의 매력을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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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쟁이부부

선후배 사이였던 와인 매거진 기자 출신 남자, 소믈리에 출신 여자. 살아오며 경험한 와인의 절반을 함께 마셨고, 앞으로 만나게될 와인들은 항상 같이 마시게 될 동반자 관계. 평소엔 식당 주인, 때론 여행작가, 이따금 와인 강사, 이곳에선 와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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