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고, 밤새 헤딩슛을 한 마냥 빠개질 듯한 두통. 울릉도 가는 연락선을 탄 듯 속이 울렁울렁, 당기는 건 얼큰한 국물이나 시원한 물 한 사발뿐입니다. 아, 이놈의 술이 웬수. 이젠 제발 좀 작작 마셔야지. 삼일이 못 갈 다짐을 하면서 천근만근의 몸을 일으킵니다.
술꾼들이 모인 자리에서 옛 애인, 정치 다음으로 빠지지 않는 주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어떤 술이 숙취가 더하고 덜한가입니다. 술독에 빠지고 싶을 만큼 술은 좋은데, 다음 날 일어나 일을 해야 하니 진시황 불로초 찾듯 간절히 숙취 없는 술을 찾습니다. 와인을 가족들과 함께 마시기 시작할 무렵, 애주가 아버지께서 몇 번이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옛날에 와인 먹고 다음 날 골이 아파서 시껍했다. 이거 잘못 무면 느거 고생한다이. 나는 와인말고 소주 마실란다.”
많은 사람이 와인은 양주나 소주보다 숙취가 더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내추럴 와인 얘기를 한참 하다가 왜 갑자기 엉뚱하게 숙취를 찾는지에 대한 이유는 바로 아래에 있습니다.
내추럴 와인은 숙취가 없다?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레스토랑 준비에 여념이 없던 2008년, 친구 줄리앙이 숙취가 없는 와인과 술을 만드는 사람이라며, 한 생산자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툴루즈에서 멀지 않은 가약Gaillac(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와인 생산지)에서 온 지인의 손에는 와인 한 병이 있었습니다.
“이거 한번 마셔봐요. 내추럴 와인입니다.”
“내추럴 와인은 아황산염을 안 넣거나 아주 소량만 넣는대. 그래서 많이 마셔도 다음 날 머리가 안 아파.”
줄리앙이 추임새를 넣습니다. 겨우 7,500m²(약 2,300평)의 작은 밭에서 유기농 재배한 가약의 토착 품종 브로꼴(Braucol)로 만든 와인, 르 샹 도르페(Le Champ d’Orphée) (오르페우스의 들판)가 제가 마신 첫 내추럴 와인이었습니다. 그때 소개받은 그 친구는 프랑스 최고의 유기농 오드비* 생산자, 로랑 까조뜨(Laurent Cazottes)였구요.
한국의 와인 애호가뿐만 아니라, 프랑스나 미국 등 세계 많은 와인 애호가들이 와인 숙취의 주원인으로 아황산을 꼽습니다. 많은 내추럴 와인 애호가들이 내추럴 와인을 옹호하며 하는 말은, 아황산을 넣지 않아, 숙취가 없거나 훨씬 적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극단적 내추럴 와인 생산자들은 SAINS(Sans aucun intrant ni sulfite), 즉, “그 어떤 인공 농업제품이나 아황산염도 첨가되지 않은” 와인을 만듭니다. 그런데, 정말 와인의 숙취는 아황산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이 성분을 첨가하지 않은 와인이라면, 무제한으로 마셔도 다음날 숙취 없이 개운하게 여명을 맞이할 수 있는 걸까요?
아황산염 이야기
숙취의 원인을 다루기 전에 먼저 아황산염에 대해서 한번 알아볼까요?
와인에서 SO₂, 이산화황, 아황산염(Sulfites/Sulphites), 혹은 무수아황산, 네 가지 용어는 모두 같이 사용됩니다. 따라서 이중 아무거나 쓰셔도 상관 없습니다. 사실 엄밀하게 보자면, SO₂는 이산화황의 분자식으로, 이 둘은 고체 물질인 황을 태웠을 때 산소와 결합한 기체상태를 가리킵니다. 반면에 아황산염은 말 그대로 소금 형태를 띱니다. 흰색 혹은 무색의 가루 형태로, 항산화 효과가 있어 와인뿐 아니라 식품 보존제로 널리 쓰입니다.
아황산염과 이산화황은 황(Sulfur/Sulphur, S) 화합물의 일종입니다. 황은 노란색 고체로, 살충 및 소독의 효과가 있어 고대부터 널리 사용되어 왔습니다. 순수한 원소 상태에서는 향과 독성이 적지만, 다른 물질과 결합하면 냄새가 심해지고 때로는 유독성을 띠게 됩니다. 단백질에 포함되어 있어, 우리 몸에도 약 140g 정도가 있습니다. 고기 많이 먹고 뀌는 방귀가 독한 것도 황 때문이지요!
황은 화산 주변과 온천 지역에서 원소 상태로 많이 발견됩니다. 그래서 이탈리아 시실리아의 에트나같이 화산지대에서 자라는 포도로 만든 와인에는 자연적으로 이산화황 성분을 많이 포함한답니다. 일부 내추럴 와인 생산자들은 공장에서 석유 추출로 만든 아황산염 대신 이렇게 자연적으로 나는 황을 와인에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석유 추출이던, 화산지대에서 얻었던, 화학적으로는 같은 물질입니다.
황이 없었음, 말짱 황이여!
와인과 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입니다. 와인과 관련된 황은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포도밭에서 여러 병충해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황. 앞서 언급한 대로, 황은 살충과 소독의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포도재배 시 여러모로 유용하지요. 황은 특히 포도나무에 치명적인 질병, 오이디움(Oïdium)** 처방제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북미에서 건너와 1846년에 베르사유의 정원에서 발견된 후 전 유럽에 퍼져 포도밭을 황폐화한 이 곰팡이는, 1850년 엔지니어 앙리 마레(Henry Marès)가 황 수용액 혹은 분말 도포 방식을 발명하며 해결되었습니다. 불행히 오이디움 이후에도 유럽의 포도밭은 필록세라와 노균병 때문에 크게 홍역을 앓았지만요.
둘째, 와인 보존제로서의 황. 황은 이천 년 넘게 와인 보존제로 사용되었습니다. 황을 태우면 산소와 결합하여 기체 상태의 이산화황이 됩니다. 이산화황은 양조 시, 불량 야생효모균들과 박테리아의 활동을 억제하여 발효에 이로운 효모인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애(Saccharomyces Cerevisiae)를 돕고, 양조 탱크와 배럴을 소독하여 와인이 나쁜 균에 의해 상하는 것을 막지요. 그리고 원하지 않은 이차 발효를 예방합니다. 가장 중요하게, 발효과정과 병 숙성동안 이산화황은 와인 속의 산소와 결합하여 항산화 효과를 냅니다. 덕분에 와인은 안정적으로 전 세계를 여행하며, 좋은 와인은 몇 년, 몇십 년간 숙성할 수 있지요. 황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일입니다.
셋째는, 발효 혹은 병 숙성 중 산소 부족시에 생기는 황화수소입니다.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에 유용한 황을 필요 이상 과다하게 사용하거나, 지나치게 와인과 산소 간 접촉을 막으면 황은 에탄올과 결합하여 황화수소와 같은 황화합물을 만듭니다. 와인에서 황화수소가 극소량만 존재할 경우에는 숙성된 고기나, 천연고무의 향을 내어 복합성을 더하지만, 일정량 이상에서는 썩은 걸레나 달걀과 같은 악취를 냅니다. 기대를 잔뜩 하고 와인병을 열었는데 고기 먹고 뀐 방귀 같은 악취가 난다고요? 괜한 옆 사람 멱살은 잡지 마세요. 다행히도, 휘발성인 황화수소로 인한 이런 악취는 와인을 충분히 공기와 접촉하게 두면 사라진답니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성분답게, 유기농 포도 재배에서 황은 무독성 살균제로 인정됩니다. 프랑스 내추럴 와인 협회의 매우 엄격한 내추럴 와인 생산 규정에서 유일하게 사용 허가된 첨가물이기도 합니다. 과유불급이긴 하나, 참으로 와인에 요긴한 황. 대체 어쩌다 숙취의 주범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었을까요?
와인의 아황산염과 숙취?
과연 와인의 아황산염 혹은 이산화황이 숙취와 두통을 발생시킬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황산염은 와인뿐 아니라, 식초, 겨자, 견과류, 말린 과일류, 마요네즈 등등의 많은 가공식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말린 살구나 자두, 무화과 등에는 평균적으로 와인에 포함된 양보다 더 많은 양의 아황산염이 있습니다. 와인에 들어있는 아황산염 때문에 숙취에 시달린다고 믿는 분들은, 말린 과일을 간식 삼아 한 봉지 드셔보세요. 그런 후에도 두통이나 이상 증상이 없으시면 이산화황 때문은 아닌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럽 연합에서는 2005년부터, 그리고 세계 보건 기구에서는 2011년부터 식품 첨가물인 아황산염을 알레르기 요인으로 분류, 와인뿐 아닌 모든 식품에서 킬로그램/리터당 10mg 이상 포함될 시 표기를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소수의 알레르기 환자들을 위한 것으로, 섭취량에 따라 천식 환자 혹은, 아황산염 알레르기 환자에서는 강력한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 심하면 사망까지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다행히 아황산염 알레르기 환자는 매우 드뭅니다. 한 프랑스 의사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알레르기를 의심하여 방문한 사람 중 50%는 환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혹시 화이트 와인보다 레드 와인을 마셨을 때 두통과 숙취가 강한 분이 계신가요? 껍질과 함께 발효 및 일부 숙성 단계를 거치는 레드 와인에는 화이트에 비해 항산화 작용을 하는 폴리페놀이 풍부합니다. 따라서 이산화황도 적게 사용됩니다. 그런데 레드 와인을 마시고 숙취가 생기셨다면, 히스타민(Histamine)을 의심해볼 만합니다.
히스타민은 백혈구 및 인체 일부 기관에서 생성되는 물질로, 소화액 분비와 각성을 돕습니다. 한편으로는, 혈관을 확장하는 효과가 있어 두통, 저혈압, 홍조증, 축농증, 부종, 가려움 등의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히스타민은 레드 와인뿐 아니라, 어/육류 가공품, 치즈 및 김치, 슈크루트, 토마토 주스, 케첩 등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앞서 아황산염과 마찬가지로, 레드 와인을 의심하기 전에 꽁치 통조림과 김치로 찌개를 끓여 드셔보세요. 그래도 알레르기 반응이 없으면, 숙취의 원인이 단순히 레드 와인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숙취의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부분은 과다한 음주로 인하여 발생하는 것으로 봅니다. 에탄올이 신체 내에서 대사되는 과정 중, 독성을 띤 아세트알데하이드(Acetaldehyde)가 발생합니다. 더불어 에탄올의 이뇨작용으로 몸이 탈수상태가 되어, 숙취가 되는 여러 증상을 일으킵니다. 따라서 와인 한 잔에 물 두 잔, 이렇게 충분히 수분을 섭취해주시면 배가 불러 과음할 가능성도 작아지고, 탈수 현상도 방지할 수 있겠지요. 숙취를 무고한 와인 탓으로 돌리시는 분들, 혹시 와인 드실 때마다 저처럼 주체할 수 없이 신이 나서 과음하신 거 아닙니까?
이래도 아황산이 찝찝한 분들을 위한 와인이 있습니다. 바로 아황산 무첨가 와인이지요. 이에 대해 다음 글에서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오드비(Eau de Vie) : 증류주를 총괄하는 프랑스어. 보드카, 브랜디, 칼바도스, 럼, 위스키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코냑과 아르마냑은 포도로 만든 오드비이자, 브랜디의 일종으로, 지역 명칭을 붙인 것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흔한 오드비로는 체리, 서양배, 자두로 만든 것 등이 있으며, 주로 소화를 위해 식후주로 마신다.
**오이디움(Oïdium) : 동일어 파우더리 밀듀(Powdery Mildew). 원래 북아메리카에 존재하였으나,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1850년대 유럽 포도밭을 황폐화했다. 북미 원산인 포도나무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으나, 유럽 품종인 비티스 비니페라는 이 진균류에 매우 취약하다.
참고 문헌 및 기사 목록
Bird, David Understanding Wine Technology. 3rd Edition, Wine Appreciation Guild. San Francisco. 2010
Waterhouse, A. Sacks, G. & Jeffery, D. Understanding Wine Chemistry. John Wiley & Sons. Chichester. 2016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66649&cid=58715&categoryId=58715
스위스 알레르기 센터, https://www.aha.ch/centre-allergie-suisse/info-allergies/allergies-intolerances/intolerances-alimentaires/intolerance-a-l-histamine/?oid=1472&lang=fr
월스트리트 저널, https://guides.wsj.com/wine/wine-tips-and-tricks/why-do-i-get-headaches-from-w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