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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소믈리에’가 후각을 잃는다면?

‘와인 소믈리에’가 후각을 잃는다면?

임지연 2021년 5월 10일

‘냄새는 인간 역사를 통틀어 사물의 보이지 않는 본질이다.’

인지과학자 앤 소피 바위치가 평가한 냄새에 대한 분석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냄새’에서 인간의 역사는 보이지 않는 후각의 영역인 ‘냄새’에 대해 매우 주관적이며 모호하다는 이유로 늘 경시해왔다고 지적하면서, 후각이 다른 어떤 감각보다 인간 지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점을 더 이상 외면에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인간 역사에서 눈으로 보는 시각적 영상미는 ‘미학’이라는 하나의 뚜렷한 학문 분야를 개척하며 발전을 거듭해온 반면, 후각은 그것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눈으로 확인하거나 손으로 만질 수 없는 후각은 오로지 인간의 예민한 감각에 의존해야 했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비밀의 영역으로 치부되기까지 했다.

뉴욕대학교 의학대학 돌로레스 말라스피나(Dolores Malaspina) 박사는 “소위 이 분야 전문가로 불리는 사람들이 무려 수십 년에 걸쳐서 인간의 후각과 뇌의 영역에 대한 집중 연구를 실시해왔다”면서도 “하지만 이에 대해 언론과 정부는 뚜렷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면서 “코로나19가 이 분야에 대한 정부와 사회 전반의 무관심을 완전히 뒤집어 놓고 있다”면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후각 영역에 대한 사회 집중 현상에 주목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후각의 중요성과 관련해 더 큰 이목을 받는 이들이 있다. 바로 ‘소믈리에’다. 이들은 후각을 통해 얻은 예민한 특유의 감성을 눈으로 보고, 읽는 언어로 표현하는 이들이다. 냄새와 맛을 언어로 표현하는 전문가 ‘소믈리에’에게 후각의 중요성은 그만큼 중요하다. 이들에게 후각은 곧 삶이며, 생계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이들에게 냄새를 맡고 이를 글로 표현하는 과정은 단순한 화학 성분을 찾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각 요소 또는 지각 관점을 찾는 일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특히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로 여겨왔던 와인 소믈리에에게 와인의 맛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풍부한 향이다. 조향사는 오로지 냄새만으로 향수의 품질과 값어치를 결정한다면, 와인 소믈리에는 와인이 가진 그 이상인 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직업인 셈이다.

[지난해 1월에 시작된 코로나19 전염 사태로 전 세계가 큰 난관에 처했다.]

이런 이유 탓에 후각이 생명인 와인 소믈리에의 직업적 특성상 후각을 잃는다는 것은 곧 일자리를 잃는 것과 일맥 한다. 때문에 최근 유럽 다수의 국가를 중심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 우선권을 와인 소믈리에에게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얼마 전 코로나19와 관련해 프랑스 유명 와인 전문가이자 와인 소믈리에, 댄 데이비스가 자신이 과거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던 사실을 고백하면서 이 같은 관심은 더욱 증폭되는 분위기다. 실제로 그는 최근 자신이 코로나19 전염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약 3개월 만에 후각과 관련한 후유증을 완전히 회복한 상태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코로나19 감염 후유증 중 하나가 후각 상실인데, 이는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 회복 과정은 가히 충격적이었다”면서 “약 일주일간의 발열, 위장병 및 심각한 수준의 피로감 외에도 식사 시 후각을 잃는 끔찍한 상황을 경험했다. 이로 인해 모든 음식을 즐겼던 기존의 풍미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와인 소믈리에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코로나19 백신 우선 접종권을 제공하자는 움직임이 일어 이목이 집중됐다.]

그는 이 경험은 절대적인 공포였고, 더 이상 내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끔찍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같은 증언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보르도 대학교 포도 와인과학연구소 협회는 와인 소믈리에의 생계 보장을 위해 백신 접종 우선권을 부여하는 등의 대책 마련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보르도 대학교 포도 와인과학연구소 협회는 후각이 곧 생계인 와인 소믈리에를 위한 각종 정책을 지원하는 곳으로, 4월 현재 약 1,300명의 구성원이 활동 중이다. 이들은 최근 성명서를 통해 와인 산업의 중요성과 역사를 중시해 온 프랑스에서 와인 전문가와 소믈리에의 존재는 가히 필수 업종이라고 주장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대우를 해온 사회적인 분위기를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목소리가 제기된 것은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그 피해 상황과 사망자 수에 대한 정확한 집계는 단지 추정만 가능한 상태라는 점이 강하게 어필됐다는 평가다. 실제로 협회 측은 4월 현재 코로나19로 인한 맛과 후각 상실을 겪는 사람들이 전 세계 수 백만 명에 이를 것으로 짐작했다.

이달 초 보도된 뉴욕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어떻게 냄새의 손실과 그에 수반되는 맛의 상실을 야기시키는지에 대해 확실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환자는 몇 주 안에 이러한 감각이 회복된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이들은 “일부 불행한 환자들의 경우 이러한 감각들이 전혀 회복되지 않은 경우도 상당하다”면서 “그들이 코로나19 확진 이전 상태로 회복할 수 있을지 여부는 불분명하다”고 설명했다. 냄새를 상실하는 것은 단순히 가장 좋아하는 음식과 음료를 즐길 수 없는 것 이상일 것이다.

현직 와인 소믈리에로 종사하는 익명의 제보자는 “후각에서 신경 지도와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면서 “감각 실체로서 냄새는 여러 차원에 걸쳐 있을 것이며, 소믈리에라는 직업은 단순히 냄새를 맡는 것을 넘어 그 냄새의 질과 감정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업무를 생애에 걸쳐서 집중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후각은 곧 삶이며, 삶의 경계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와 공존하는 삶은 우울, 무기력, 그리고 약간의 좌절을 경험하게 한다”면서 “그럴수록 사람들은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적인 안정감과 힐링의 시간이다. 그윽한 와인의 맛과 향으로 코로나19에 지친 심신의 힐링이 필요한 시기 역시 바로 이 시점이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코로나19 사태 발발 후 언론과 정부, 사회는 오직 사망자 수를 헤아리는 것에 열중했다”면서 “하지만 그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들, 그리고 그 중 후각으로 생업을 이어갔던 와인 소믈리에의 후각 상실은 상상 이상의 상실감과 우울증을 불러오는 영역이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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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연

평범함 속의 특별함을 찾는 인생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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