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고대 로마의 와인
와인은 그리스보다 로마에서 한층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모범적인 예가 바로 폼페이 유적이다. 본래 폼페이는 고대 로마의 중요한 와인 수출입항이었다. 또한 농업과 상업이 활발했으며, 로마 귀족들의 휴양지로 매우 번성했다고 알려진다. 그러나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단 18시간 만에 잿더미로 변했다. 이후 무려 15세기까지 사람들에게 잊혔던 폼페이는 1594년 수로 건설을 목적으로 땅을 파다가 극적으로 발견된다. 본격적인 조사는 18세기에 시작되었고, 이때 유적에서 주점으로 추정되는 터가 무려 200여 군데가 발견되었다. 특히 이 중 70m에 달하는 한 거리는 번화가였던지 여덟 개의 주점이 모여 있었다고 한다.
고대 로마에서 와인의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유로 역사학자들은 주식의 변화를 거론한다. 본래 이 당시 지중해 연안의 주식은 곡물이었다. 특히 로마의 경우 엠머밀(emmer wheat)이 주식이었는데, 최초에는 밀로 죽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특히 밀을 거칠게 빻은 밀가루를 물로 끓여서 만든 일종의 오트밀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빵을 만드는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빵이 주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촉촉한 주식에서 다소 거칠고 팍팍한 주식으로 변함에 따라 입을 적셔줄 무언가가 필요하게 되었고, 바로 와인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한식으로 따지면 밥에 국을 함께 먹는 것과 같은 의미다.
이처럼 와인이 빵과 함께 중요한 주식이 되면서 와인은 특권 계층만이 주로 즐기는 특별한 음료에서 벗어나 서민들에까지 퍼져나갔다. 고대 로마에서 와인이란 그야말로 남녀노소가 마시는 음료의 기능을 했으며, 여기서 바로 와인의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지금의 와인과 그때의 와인은 아주 달랐다. 지금처럼 알코올 도수가 높지도 않았고, 그냥 와인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물이나 각종 향신료 등을 첨가해서 마셨다. 또한 물과 달리 쉽게 오염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분을 공급하는 데도 탁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만 계급 차이가 분명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계층별로 즐길 수 있는 와인의 종류는 달랐다고 한다. 예를 들어 노예들은 와인이 전체 음료의 1/5밖에 안 들어 있는 일종의 지금의 칵테일 같은 것을 마셔야 했고, 일반 노동자들은 포스카(posca)를 마셨다.
포스카는 물과 시큼한 와인을 섞은 것을 말한다. 물론 물 외에도 여러 향신료를 섞었다고 전해진다. 다만 이 시큼한 와인이라는 게 사실상 식초와 다를 바 없었다. 본래 와인은 오래되면 박테리아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식초화가 진행된다. 고대에는, 매우 당연하지만, 와인을 오래 보관할 방법이 없었고, 1년 안에 소비해야 했다. 그 때문에 오래된 와인은 식초화가 진행되었고, 곧 노동자들의 포스카의 재료로 쓰인 셈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현대에도 포스카의 맛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고대 로마인의 게토레이라 할 수 있었던 포스카의 현대판 레시피는 500ml 물에 비네거(와인 식초) 두 스푼, 그리고 꿀 한 스푼이다. 왠지 상상되는 맛이지만, 설탕 가득한 편의점 음료보다는 훨씬 건강한 느낌이 든다. 이외에도 서민들이 자주 마시는 음료에 로라(lora)가 있었다. 이는 포도의 즙을 모두 짜고 남은 포도 찌꺼기를 물에 담가서 만드는 음료였다.
우리가 당시 고대 로마인들이 마셨다는 와인을 향과 맛을 알 수 없으나, 이를 표현하는 기록은 남아 있다. 대체로 로마의 와인 제조업자들은 고객 맞춤형의 달콤한 와인을 주로 만들었다고 한다. 포도도 말려서 최대한 당도를 높였고, 이후 포도를 끓여서 얻는 달콤한 즙과 꿀을 섞어서 단맛을 강화했다. 그야말로 단맛을 위한 포티파이드 와인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와인이 너무 달았기 때문에 소금물을 첨가해서 맛의 균형을 주려 노력하기도 했다. 또한 이전 편에도 소개했듯이 그리스인들처럼 송진을 넣거나 단맛을 극대화하기 위해 납을 넣는 것도 일상다반사였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문인이었던 카토(Cato)가 남긴 여러 문헌에도 이와 관련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와인에 달콤한 향을 입히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선 토기 조각에 송진을 바르고 따뜻한 재, 향긋한 허브, 골풀, ‘향료업자들이 쓰는 야자나무’에 묻어 둔 다음 최종적으로 와인을 발효 중인 단지에 집어넣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이런 방법이 고안이 되었는지는 짐작도 가지 않지만. 이외에도 와인의 향이 변했을 때 악취를 없애는 방법이라든지, 지난 회에 소개한 겨우내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을 위한 방법 등도 모두 카토가 소개한 것들이다.
카토와 비슷한 문인으로 고대 로마의 박물학자이자 정치인, 군인이었던 플리니우스(Plinius)가 있다. 그는 살아생전 102개의 저서를 편찬했다. 이중 남아 있는 것은 <Naturalis Historia(박물지)> 하나. <박물지>라는 역작은 로마 제국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살아남은 최대의 단일 작품들 가운데 하나로, 고대 지식을 총망라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 작품은 무려 37권의 책으로 나뉘며, 10권의 시리즈로 묶여있다. 그 분야로 따지면 천문학, 수학, 지리학, 문화 기술지, 인류학, 인간 생리학, 동물학, 식물학, 농업, 원예, 약리학, 광학, 광물학, 조각, 회화, 보석을 포함하니, 실로 방대한 분야라 할 수 있다. 물론 현대인이 이 <박물지>를 보면 수많은 오류를 발견하겠지만, 당시의 시대 상황을 알 수 있는 자료로의 가치는 어마어마하다.
여하튼 플리니우스는 지금의 로버트 파커쯤 되는 인물이었는지, <박물지>에서 당시 어떤 와인에는 XCVI를, 또 어떤 와인에는 XC 등급을 매겼다고 한다. 지금 이 등급이 어떤 의미를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와인의 향과 맛에 차등을 두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이 저서에는 로마에서 생산 혹은 수입되는 몇몇 와인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에는 91가지의 일반 와인, 50가지의 고급 와인, 38개의 수입 와인이 있다고 한다. 심지어 그는 노멘티안 혹은 아피아나 포도로 만든 와인을 높이 평가했는데, 이들은 모두 로마에서 생산되는 품종이었다.
와인의 숙성에 관해서도 문헌에 따라 짐작을 할 수 있다. 로마의 법학자 울피아누스(Ulpianus)는 “오래된 와인이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작년에 만든 와인부터는 모두 오래된 와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당시 상황으로는 뜨거운 여름을 온전히 견뎌낼 수 있는 와인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1년 이상이면 오래된 와인이라 칭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멀고 먼 시대의 일이지만, 지금까지 남아 있는 여러 문헌에 의해서 그들이 와인을 매우 가까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와인은 그 당시의 종교, 식생활, 의학, 문화, 사회, 경제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와인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유명한 격언인 “in vino veritas(와인 속에 진실이 있다)”가 고대 로마인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것만 봐도 그들의 와인 사랑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