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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탄생 (24부)

24. 현대의 와인 / 마지막편

지난 시간에도 언급했지만, 20세기 후반 와인의 품질 향상에 제도적인 바탕이 된 것은 와인의 생산지와 종류를 규제하는 법률의 확산이었다. 1930년대에 AOC의 기틀을 마련한 프랑스가 그 선두에 있었고, 이탈리아, 독일 등 유럽의 와인 생산 국가들은 물론, 저 멀리 호주와 미국 등지에서도 이를 바탕으로 각자 와인의 품질 보증 기관을 설립 및 이를 규제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는 1930년대에 대충 윤곽을 잡아 놓은 원산지 통제 명칭 제도인 DOC를 30년이 지난 후인 1960년대 들어 확실하게 발전시켰다. DOC 제도는 프랑스의 AOC와 매우 흡사하지만, 1963년 해당 와인의 품질을 규제하는 정도가 아니라 보장한다는 뜻의 Garantita가 붙은 DOCG를 추가해 차별화를 두었다. 이탈리아는 국가 통일 이후에도 한동안 프랑스 와인에 가려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비운의 와인 생산국이다. 국가적인 통합을 이룬 프랑스 와인과는 달리 지방 분권적인 성향이 매우 강했던 이탈리아는 와인의 세계 또한 통합을 이루기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60년대 중부 토스카나 지방의 혁신적인 품질 향상을 이룬 슈퍼 투스칸이라는 와인이 혜성처럼 등장하면서 판도가 바뀌게 된다.

슈퍼 투스칸의 효시 사씨카이야 / 사진 제공: 배두환

슈퍼 투스칸의 역사는 키안티 와인에서부터 시작했다. 익히 알고 있듯, 키안티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탈리아 와인이다. 키안티는 토스카나 면적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방대한 넓이의 지명을 이야기하는데 슈퍼 투스칸이 등장하기 이전의 키안티는 적포도인 산지오베제에 청포도인 말바지아나 트레비아노를 블렌딩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레드에 화이트 품종을 섞다 보니 자연적으로 산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는데, 또 다른 문제는 키안티의 수요가 늘자 생산자들은 질보다는 양에 우선했고 심지어는 다른 지역에서 가져온 저급의 산지오베제 클론으로 와인을 만들어 수요를 충당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품질이 날로 떨어지고 국제적인 명성도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키안티의 별칭이 ‘스파게티 키안티’였을 정도.

물론 지금은 키안티의 품질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 사진 제공: 배두환

이 말은 키안티가 불티나게 팔리는 대중적인 와인이라는 뜻도 있지만, 싸구려 와인이라는 의미도 섞여 있다. 키안티의 와인 산업이 붕괴될 조짐을 보이자, 산지오베제에 청포도를 섞어서 와인을 만들어야 하는 정부의 규제에 거부하는 와인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바로 슈퍼 투스칸의 등장이다. 최초의 슈퍼 투스칸 와인은 마르케제 마리오 인치사 델라 로케타(Marchese Mario Incisa Della Rocchetta)가 탄생시킨 사씨카이아(Sassicaia)였고, 그 다음이 안티노리에서 출시한 티냐넬로(Tignanello)다. 이 두 와인은 사실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다.

이탈리아 와인의 대부 안티노리 와이너리의 거대한 지하 셀러 / 사진 제공: 배두환

1948년 마리오는 당시 볼품없는 와인 산지였던 토스카나의 해안 마을 볼게리에 프랑스의 5대 샤또 중 하나인 샤또 라피트 로칠드에서 가져온 까베르네 소비뇽으로 사씨카이아를 처음 탄생시켰는데 결과는 실망스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당시 전설적인 와인메이커였던 안티노리 와이너리의 쟈코모 타키스(Giacomo Tachis)에게 컨설팅을 요청했다. 때는 1965년. 참고로 안티노리와 마리오 집안은 서로 혼인관계여서 이런 도움을 요청하고 받기가 수월했다. 쟈코모의 컨설팅으로 포도밭은 새롭게 옮겨졌고 까베르네 소비뇽 이외에도 까베르네 프랑과 메를로도 재배되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센세이션이라고 불릴만한, 프렌치 오크에서 24개월을 숙성시켰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와인메이커 쟈꼬모 타키스 / 사진 출처: italoamericano.org

쟈꼬모 타키스의 터치를 받은 사씨카이야는 마법처럼 유명 와인 매거진인 <DECANTER>에서 주최한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그해 최고의 레드 와인으로 꼽히면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자존심 강한 이탈리아인들이 자존심을 구기고 프랑스 품종을 섞어 와인을 만든 이 새로운 스타일의 슈퍼 투스칸은 그 당시 허물어져 가는 이탈리아 와인의 미래이자, 뉴웨이브라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쟈코모는 본래 안티노리의 와인메이커였으니, 안티노리도 바로 슈퍼 투스칸인 티냐넬로를 출시했고, 곧이어 티냐넬로 포도밭에서 가장 좋은 포도만을 이용한 솔라이아도 거듭 출시한다. 그리고 2000년. 미국의 유명 와인 매거진인 <Wine Spectator>에서 솔라이아 1997년 빈티지를 올해의 와인으로 꼽으면서 사씨카이야가 단순히 운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이탈리아는 비로소 길고 길었던 자기만의 터널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게 된 셈이다.

이제 밀짚으로 병을 둘러싼 호리병 스타일의 싸구려 키안티 와인은 과거의 유물이 되어 버렸다. / 사진 제공: 배두환

사씨카이야와 솔라이아의 성공으로 이를 모방한 각종 슈퍼 투스칸 와인들이 탄생됐고, 키안티 지역은 DOC에서 DOCG로 등급이 격상되었다. 또한 의무적으로 블렌딩되어야 했던 청포도 사용도 규제가 풀렸다. 지금은 키안티를 만들 때 청포도 대신 까베르네 소비뇽이나, 메를로 등 다른 적포도 품종을 15%까지 블렌딩할 수 있게 된 것. 또한 뛰어난 품질을 생산하는 볼게리 와인의 가치를 깨달은 정부는, 1994년 비로소 볼게리와 그 세부 지역인 볼게리 사씨카이아를 DOC로 승격시켰다.

사이프러스 나무가 울창한 볼게리 마을은 이제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사진 제공: 배두환

20세기에 들어 급격한 변화를 이룬 또 하나의 장르가 바로 와인 문화다. 와인 문화는 애호가 집단, 그러니까 단순히 와인을 술로써 마시는 수준을 넘어 와인에 대해서 매우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층이 확대되어야 발전이 가능하다. 와인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러한 계층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본래 와인 산업에 종사하는 부유층으로 구성되던 애호가 집단이 이제 중산층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였고, 이들 애호가들은 대부분 와인과 무관한 직업에 종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와인 애호가의 성장은 질 좋은 식료품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좋은 와인을 마시고자 하는 와인 애호가들의 욕심은 끝이 없을 것이다. / 사진 제공: 배두환

애호가 집단의 증가와 더불어 다양한 와인 관련 용품과 이와 관련된 서비스가 등장하기 시작한 때도 1970년대다.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와인 출판업. 과거에 와인 잡지나 정기 간행물은 와인 산업 종사자들이 주요 독자였지만, 1970년대부터는 독자들의 폭이 넓어졌고 출판물의 수도 늘어났다. 1976년에 처음 발행된 미국의 저명한 와인 매거진 <Wine Spectator>가 가장 대표적인 예. 현재 와인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정기 간행물은 수십 종에 달하며 와인 서적들도 매년 수백 권씩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만큼 와인을 즐기는 소비자가 늘었다는 방증이다. 와인 출판업계의 성장은 와인 전문 필자의 새로운 세대를 열었고, 이를 효과적으로 이용된 사례가 바로 파리의 심판이다.

와인에 대한 관심은 와인 관련 용품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사진은 바롤로 마을의 코르크 박물관 / 사진 제공: 배두환

파리의 심판의 시작은 영국인 스티븐 스퍼리어(Steven Spurrier)다. 1941년 영국에서 출생한 스티븐 스퍼리어는 경제학을 전공하고 1964년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샵인 <Christopher and Co.>에 수습직원으로 일하면서 처음 와인에 입문하게 되었다. 1970년 프랑스 파리로 거주지를 옮긴 후 이듬해에 <Les Caves de la Madeleine>라는 와인 샵을 오픈한다. 여기서 그는 손님들이 와인을 사기 전에 마셔볼 수 있도록 하는 차별화된 영업 방식으로 순식간에 스타 와인 샵으로 인기를 끌게 되었다. 1973년에는 프랑스 최초의 사설 와인 교육 기관인 <Academie du Vin>을 설립하면서 와인 교육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1976년 와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파리의 심판을 개최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유명한 와인 인사가 되었다. 참고로 그는 1988년 <Academie du Vin>과 파리의 와인 샵을 팔고 고향인 영국으로 돌아갔고, 현재까지 와인 컨설턴트이자 저널리스트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1981년 그의 파리의 와인 샵에서의 스티븐 스퍼리어 모습 / 사진 출처: www.oregonwinepress.com

천부적인 테이스팅 능력을 지니고 있던 스티븐 스퍼리어는 우연한 기회에 미국 캘리포니아의 스태그스 립(Stag’s Leap)과 샤또 몬텔레나(Chateau Montelena)의 와인을 마셔보고는 기대보다 훨씬 품질이 좋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직접 미국으로 날아가 테이스팅을 위한 와인을 공수까지 해왔다. 마침 1976년은 미국 독립 200주년이었고, 그는 자신의 와인 샵을 홍보하는 겸해서 흥미로운 테이스팅을 기획했던 것. 사실 그도 이 테이스팅 결과가 와인 역사에 영원히 회자될 사건이 될지 전혀 예측을 못했을 것이다. 테이스팅에 모인 와인들의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Red Wines
Stag’s Leap Wine Cellars 1973
Chateau Mouton-Rothschild 1970
Ridge Vineyards Monte Bello 1971
Chateau Montrose 1970
Heitz Wine Cellars Martha’s Vineyard1970
Chateau Haut-Brion 1970
Clos Du Val Winery 1972
Chateau Leoville Las Cases 1971
Mayacamas Vineyards 1971
Freemark Abbey Winery 1969

White Wines
Chateau Montelena 1973
Meursault Charmes Roulot 1973
Chalone Vineyard 1974
Beaune Clos des Mouches Joseph Drouhin 1973
Spring Mountain Vineyard 1973
Batard-Montrachet Ramonet-Prudhon 1973
Freemark Abbey Winery 1972
Puligny-Montrachet Les Pucelles Domaine Leflaive 1972
Veedercrest Vineyards 1972
David Bruce Winery 1973

그리고 초대된 심사위원들을 다음과 같았다.

Pierre Brejoux (Institute of Appellations of Origin)
Claude Dubois-Millot (Substitute to Christian Millau)
Michel Dovaz (Wine Institute of France)
Patricia Gallagher (l’Academie du Vin) (미국인)
Odette Kahn (La Revue du vin de France)
Raymond Oliver (restaurant Le Grand Véfour)
Steven Spurrier (영국인)
Pierre Tari (Chateau Giscours)
Christian Vanneque (sommelier of Tour D’Argent)
Aubert de Villaine (Domaine de la Romanée-Conti)
Jean-Claude Vrinat (Restaurant Taillevent)

이 테이스팅을 주최한 두 명, 스티븐 스퍼리어와 패트리시아 갤러거(Partricia Gallagher)만 프랑스인이 아니었다는 점이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패트리시아는 스티븐 스퍼리어가 설립한 사설 교육기관인 <Academie du Vin>의 어시스턴트 디렉터로, 이 시음회가 개최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테이스팅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Red Wines
1위. Stag’s Leap Wine Cellars 1973
2위. Château Mouton-Rothschild 1970
3위. Château Montrose 1970
4위. Château Haut-Brion 1970
5위. Ridge Vineyards Monte Bello 1971
6위. Château Leoville Las Cases 1971
7위. Heitz Wine Cellars Martha’s Vineyard 1970
8위. Clos Du Val Winery 1972
9위. Mayacamas Vineyards 1971
10위. Freemark Abbey Winery 1969

White Wines
1위. Chateau Montelena 1973
2위. Meursault Charmes Roulot 1973
3위. Chalone Vineyard 1974
4위. Spring Mountain Vineyard 1973
5위. Beaune Clos des Mouches Joseph Drouhin 1973
6위. Freemark Abbey Winery 1972
7위. Batard-Montrachet Ramonet-Prudhon 1973
8위. Puligny-Montrachet Les Pucelles Domaine Leflaive 1972
9위. Veedercrest Vineyards 1972
10위. David Bruce Winery 1973

당시 레드 와인 부문에서 1위를 한 스태그스 립이 미국에서 7.49달러에 판매되고 있었고, 2위를 한 샤또 무똥 로칠드가 25달러에 판매되고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결과는 센세이션했다. 패널들은 결과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심지어 프랑스 와인의 명성에 누를 끼쳤다는 이유로 스티븐 스퍼리어를 1년 동안 프랑스의 명망 있는 와인 테이스팅 투어에 참석하지 못하게 했다. 또한 프랑스의 신문사들도 이 사건에 대해 다룬 곳은 전혀 없었다. 3개월 후에야 프랑스의 유력지 <Le Figaro>에서 이 결과가 터무니없었고,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식의 기사를 내보냈고, 6개월 후에 <Le Monde>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써냈다.

스태그스 립 와인 셀러 / 사진 제공: 배두환

이렇게 묻힐 수도 있었던 이 이벤트가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은 이 행사에 참석한 <Time>지의 조지 테이버(George M. Taber) 때문이다. 스퍼리어는 시음회에 많은 기자들을 초청했지만, 유일하게 조지 테이버만 참석했고, 그는 테이스팅이 개최된 다음 주 월요일 ‘파리의 심판(Judgment of Paris)’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면서 캘리포니아 와인의 품질 혁명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신호탄을 쐈다. 파리의 심판이 일으킨 영향은 상상 이상이다. 이 사건은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을 비롯한 신세계 와인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캘리포니아는 해외 자본의 투자 유치 및 수많은 러브콜을 받게 되었고, 와인 세계의 떠오르는 핵이 되었다. 프랑스 와인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로칠드 가문이 캘리포니아의 거장 로버트 몬다비와 손을 잡고 ‘오퍼스 원(Opus One)’이라는 프리미엄 와인을 만들어 낸 것이 좋은 예다.

오퍼스 원 와이너리 / 사진 제공: 배두환

와인 출판업계의 성장과 더불어 와인 교육 산업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제는 와인 테이스팅 강좌나, 소믈리에 인증 프로그램을 국내에서도 쉽게 만나볼 수 있고, 와인 업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소믈리에가 될 수 있는 시대다. 와인을 매우 진지하게 다가서고 싶어하는 이라면 해외 유학의 길도 열려 있다. 물론 돈이 많이 필요하지만. 가장 유명한 곳은 캘리포니아의 UC 데이비스, 호주의 로즈워시, 보르도 대학 등이지만, 대다수의 와인 생산지에는 포도 재배, 와인 제조, 와인 경영을 가르치는 대학교가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인생을 와인으로 물들이는 게 가능해졌다. 또한 영국의 WSET는 1950년대부터 엄격한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은 대상으로 와인 전문가 자격증을 발부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모방한 여러 사설 학원이 등장해서 선택의 기회가 매우 많이 늘어났다.

UC 데이비스 / 사진 제공: 배두환

바야흐로 21세기, 와인은 번영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비록 소비량이 감소했다고 할지언정, 와인이 맛있는 술인 동시에 건강에 좋은 음료라는 인식이 있는 한 와인 생산과 소비는 꾸준히 이어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와인 소비자들은 운이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많은 와인 생산국을 여행하면서 느낀 바로,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와인 이외의 다채로운 와인을 찾기가 힘들다. 이탈리아, 스페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는 근처의 마트만 가도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다채로운 와인들을 한 번에 쇼핑할 수 있다. 아직 맛보지 못한 와인들이 전시되어 있는 진열대를 볼 때 마다 와인의 세계는 끝이 없고, 그래서 평생을 탐구해야 할 수 있는 좋은 취미라는 생각이 든다. 신비로운 맛의 여행을 떠나는 기분. 여러분들도 이 여행에 함께 동참해보는 건 어떠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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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쟁이부부

선후배 사이였던 와인 매거진 기자 출신 남자, 소믈리에 출신 여자. 살아오며 경험한 와인의 절반을 함께 마셨고, 앞으로 만나게될 와인들은 항상 같이 마시게 될 동반자 관계. 평소엔 식당 주인, 때론 여행작가, 이따금 와인 강사, 이곳에선 와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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