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번째 와인바 Talk, 와인 리스트 1
와인바 토크를 쓰면서 꼭 다루고 싶었던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와인 리스트’에 관한 내용이다. 와인 리스트는 업장에서 와인을 판매하고 구매할 때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이고, 또한 손님과 와인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와인바를 찾은 손님에게 와인 메뉴판을 건네고 기다리다 보면, 메뉴의 글자가 너무 작아 눈에 안 보인다고 하거나 한글로 쓰인 리스트를 달라고 하는 경우가 꽤 있다. 사실 와인 메뉴판의 글자 크기가 그렇게 작지도 않을뿐더러 한글로 된 메뉴판을 준비해 놓지도 않는다. 혹자는 손님을 배려하지 않는 불친절한 가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냉정하게 말해 한글로 와인의 이름과 기본 정보를 써 놓아도 그것만으로 와인을 쉽게 고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최근 프랜차이즈라든지 간단하게 와인을 판매하는 곳이 늘어나면서 손님이 쉽고 편하게 볼 수 있게 한글로 와인을 설명해놓고, 당도나 바디감 등을 숫자나 기호 같은 것을 사용하여 와인 리스트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아예 와인의 정보와는 관련 없는 일상적인 내용을 와인에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와인을 기분에 따라 선택하게 한 리스트도 존재한다.
와인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되어 있는 와인의 정보를 한눈에 알아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맞다. 그러므로 와인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기 쉽고 단순하게 만들어 손님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편한 만큼 여기에는 분명한 단점들이 존재한다.
와인의 맛은 와인의 온도, 와인을 마시는 잔, 그날의 날씨, 함께 먹는 음식 등 주변 환경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리스트에 적혀있는 몇 가지의 정보만으로 와인의 맛을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심지어 와인을 직접 만들고 그 와인에 대해 가장 잘 안다는 와인 메이커가 자신의 와인에 대해 표현한 와인의 맛조차도 일반인들이 100% 공감하면서 마시기 힘든 부분이 많다.
많은 사람이 리스트에 표기된 정보만으로 와인을 주문했을 때 실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필자는 일부러 불친절한 와인 리스트를 고수한다. 손님과 조금 더 많은 소통을 하고 손님이 원하는 스타일의 와인에 조금 더 근접한 와인을 추천하는 것이 소믈리에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와인은 포도나무가 살 수 없는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 거의 전 세계에서 만들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와인은 대부분 생산된 국가의 언어로 되어있는 레이블이 붙은 채로 유통된다. 와인 리스트 역시 온전히 와인에 적혀진 언어로 표기된 경우가 일반적이다. 한글 한 글자 없이 각국의 언어로 적혀진 와인 리스트를 보면 당황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간단한 몇 개의 규칙만 파악하면 와인 리스트를 보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대부분의 와인 리스트들은 일정한 형식을 가진다. 하나의 와인을 리스트에 표현할 때 국가, 지역, 와인 이름, 포도 품종, 빈티지, 가격 등으로 표시한다. 와인 리스트는 몇 개의 카테고리로 나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중 가장 큰 카테고리가 국가이다. 유럽이나 미주 국가 등 와인이 생산된 국가에 따라 와인을 분류하는 게 기본이고, 그다음에 세부적으로 그 국가의 여러 지역을 카테고리로 나눈다. 포도는 같은 품종이라도 생산 국가에 따라 현지 토착화되어 맛의 차이가 생기기도 하고 국가별로 와인을 만드는 방법이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와인을 판별하고 선택하는데 국가별 차이를 먼저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와인의 국가를 확인했다면 그다음은 지방이나 지역의 카테고리를 확인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 와인은 지방 단위인 보르도(Bordeaux), 부르고뉴(Bourgogne), 루아르(Loire), 샹파뉴(Champagne) 등으로 나뉘게 된다. 지방 단위에서 메독(Médoc)이나 샤또뇌프 뒤 빠쁘(Châteauneuf-du-Pape)와 같은 지역 단위로, 그다음은 본 로마네(Vosne-Romanée)와 같은 꼬뮌(Commune)으로 표기되는 마을 단위 이름으로 카테고리를 분류해 놓은 경우도 볼 수 있다. 비단 프랑스 와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와인도 위와 같은 기본 형식을 따라 카테고리를 나눈다. 부르고뉴 지방은 피노 누아(Pinot Noir) 포도 품종이 특화된 곳이고, 샹파뉴는 샴페인이 생산되는 지역이다. 이렇게 지방과 지역을 확인하고 그 특성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원하는 와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와인의 종류가 너무 적어 세부 카테고리를 나눌 만큼이 되지 않는다면, 큰 단위의 국가 카테고리 정도로 나누는 경우도 많다. 혹은 와인의 색깔이나 맛으로 카테고리를 나누는 경우도 있는데, 스파클링 와인, 화이트 와인, 로제 와인, 레드 와인, 스위트 와인과 같은 카테고리로 나누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 경우에는 원하는 스타일의 와인 카테고리로 들어가 국가나 지역, 포도 품종 등 와인의 다른 정보들을 확인하여 와인을 고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