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번째 와인바 Talk, 와인바, 내가 가도 되는 곳일까
필자는 5년 전 작은 와인바(wine bar)를 시작했다. 바(bar)라는 단어는 아직도 많은 사람이 혼동하는 부분이지만, 필자의 가게는 전 좌석이 바(bar)로 되어있는 진짜 와인바다. 이런 식의 구조는 손님을 직접 맞이하고 같은 눈높이에서 와인에 대한 설명과 서비스를 하기 위해 가게를 구상할 당시부터 염두에 두었던 인테리어이다.
가게를 시작했던 5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바 형식의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가게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 테이블이 놓여 있고 손님이 앉은 좌석에서 주문을 받고 와인 서비스를 하는 레스토랑 형식이었다. 가게의 크기가 작기도 했고 조금 더 효율적인 서비스를 하고 싶어 와인바를 오픈했지만,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바 문화 자체가 대중적이지 않고 와인 역시도 익숙하지 않은 한국 사람에게는 와인을 마시는 가게가 바(bar)로 되어 있다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바 문화 자체도 해외의 경우와는 조금 다르게 유흥 쪽으로 많이 알려진 것도 한몫했다.
바(bar)는 영어로 막대, 빗장 등을 뜻한다. 중세 유럽 시대에 말을 타고 온 손님들이 말을 묶어 둘 수 있게 막대를 걸어둔 것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후에 음식이나 술을 내어주는 카운터 역할을 하는 것을 ‘바’라고 부르며 점점 발전해 오다 최근에는 주류를 주로 판매하는 곳을 총칭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30년대에 고급 위스키를 카운터에서 판매하는 가게가 생겨나며 점점 바 문화가 발전해 왔다.
바 문화는 꼭 주류뿐만이 아니라 음식 문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일식의 오마카세(おまかせ)를 예로 들 수 있다. 오마카세는 바에서 쉐프가 만들어주는 초밥 또는 회를 바로 서비스받으며 코스로 즐기는 것을 말한다. 일식을 많이 접해본 사람들은 필자의 바에 찾아와서 여기는 ‘다찌’ 자리만 있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다찌라는 단어는 일본어의 다치노미(たちのみ)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유력한 단어로, 선체로 마신다는 뜻의 선술집을 이르는 단어이다.
하지만 다찌라는 단어는 실제 일본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잘못된 외래어이다. 일본에서는 바나 술집의 조리대 바로 앞의 긴 술청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카운터(counter)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카운타세키(カウンターせき), 즉 카운터자리라고 이야기한다. 일본에서도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우리나라에서는 바를 표현하는 단어로 계속 쓰고 있다.
일식의 오마카세는 음식을 바로 만들어 서비스해 주기 때문에 음식에 대한 설명과 먹는 방법 등을 바로 일러줄 수 있어 먹는 사람이 음식에 대한 이해와 교감을 나눌 수 있다. 같은 맥락으로 모든 식음료 업장에서는 ‘바’라는 자리를 이용하여 서비스의 질을 향상하고 손님과의 교감을 시도한다. 하지만 일부 업장에서는 접객하는 직원을 따로 두어 손님과 밀착해 서비스하며 특별한 교감을 시도하는 일도 있다. 이곳에서부터 ‘바’에 대한 편견이 생기기 시작했다. ‘바’는 이런 곳이라는 인식이 많이 자리 잡고 있어 안타깝게도 이런 분위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바’를 피하는 현상이 생겼다.
일반적으로 순수하게 와인이나 칵테일을 파는 ‘바’는 음식 업종으로 분류하자면 일반 음식점에 속한다. 일반 음식점은 음식과 술을 판매할 수 있지만 노래와 춤을 출 수는 없는 업종으로, 유흥업소업이나 단란주점업과는 구분된다. 음식과 술을 파는 가게를 떠올려 보면, 고기를 구워 소주 한잔할 수 있는 고깃집일 수도 있고 맛있는 전을 부쳐 동동주와 함께 파는 가게일 수 있다. 와인바나 칵테일바도 술을 주로 팔고 안주가 곁들여져 나온다는 것뿐이지 일반 음식점과 다를 바 없다.
필자의 가게 역시 일반 음식점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20세 이상의 성인 누구나가 이용할 수 있는 가게다. 만약 가고자 하는 와인바가 일반 음식점업이 아닌 경우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순수한 와인바가 아닐 수 있기에, 일반 음식점인지 유흥업소인지는 가게의 분위기나 메뉴의 구성 등을 살펴보고 판단하면 된다. 무조건 바 구조의 가게라고 해서 일반음식점인 와인바임에도 불구하고 인테리어만 보고 내가 가야 할 곳이 아니라는 생각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위스키 같은 고급 주류나 일식의 오마카세 등을 서비스하는 곳은 사람들이 의례적으로 바 자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바에서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사실 바 테이블이 앉기에 그렇게 편하진 않다. 대부분 바는 위치가 높아 그에 맞춰져 있는 의자 또한 일반 의자 보다 높이가 상당하다. 바는 좌석이 일렬로 붙어있기 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모르는 사람과 옆에 붙어 앉아야 할 경우도 생긴다. 여러 상황이나 좌석에 대한 선호도에 따라 바를 피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기 때문에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실제로 가게를 방문하는 많은 사람이 가게 안으로 들어와 ‘바’로만 되어있는 구조를 확인하고 테이블 좌석이 있는지 묻고는 다시 발걸음을 돌리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가끔 테이블 좌석을 기대하고 방문한 손님이 어쩔 수 없이 바 좌석에 앉아 와인을 마시는 경우가 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한 기색이었지만, 와인 서비스를 정면에서 확인하고 와인에 대한 궁금증이나 맛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금세 친구처럼 편하게 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와인을 좋아하고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주인 혹은 다른 손님들과 자연스럽게 나누고 싶어 하는 일부 손님들은 바 구조의 와인바만을 찾아다닐 정도로 ‘바’ 마니아인 경우도 많다. 와인바는 ‘바’라고 해서 그렇게 비싸지도 혹은 손님을 귀찮게 하지도 않는다.
와인바가 내가 가서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인가 아닌가 고민하지 말고, 와인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더 잘 즐기면서 마실 수 있는 공간이라 생각한다면 그 공간이 더 편하게 느껴질 것이다. 요즘엔 이런 마니아들을 위한 작은 와인바가 많이 생기는 추세이다. 마음을 열 편안한 공간을 찾았다면 나만의 아지트로 만들어 보는 것도 즐거움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