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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연의 재즈쿠킹-1 부엌과 재즈의 기본 팬트리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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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연의 재즈쿠킹-1 부엌과 재즈의 기본 팬트리를 생각하다

양수연 2017년 8월 21일

재즈 쿠킹 연재를 시작하며.

나의 주제는 재즈와 요리를 통해 삶을 풍요롭게 하고, 더 나아가 자기 수양의 길을 모색하는 일이다. 재즈와 요리로 어떻게 일상이 변해가게 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스타일이 멋스럽고 현대적인 느낌인 재즈와 요리라는 조합. 그런데자기 수양의 길이라니? 거창하고 진부하게 느껴지는 것을 차치하고라도 이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진부함을 거부해왔던 재즈의 역사처럼 만약 자기 수양이라는 단어가 어떤 외딴곳에서 홀연히 도 닦는 느낌을 주는 것이라면, 이제 그 단어를 구출해내야 한다. 일상으로 가져와서 일상의 언어로 만들어야 한다. 수양의 목적은 건강한 신체와 마음을 위함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진정한 사랑의 길로 나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감성적몰입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정신을 표상하는 음악과 육체를 표상하는 요리를 버무리는 것은 직접적인 의미가 있다

재즈와 요리의 공통점은 애써 언급하지 않겠다. 그리고 굳이 찾을 필요도 없다. 재즈는 재즈고, 요리는 요리다. 다만 이건 믿어주기 바란다. 재즈와 요리가 당신의 몸을 통해 하나의 사건이 되었을 때 그것은 몸 안의 특정 기관이 된 것처럼 공간적 존재성을 갖고 감각과 정신의 쾌락으로서 당신을 사로잡고 작동시켜 나갈거니까. 재즈와 요리는 남에게 공개를 굳이 요구하지 않는 개인적인 체험이다. 나는 이런사건을 만들기 위해 창의적이고 좋은 음악을 엄선하고 좋은 재료의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요리를 소개할 것이다. 거창한 요리는 지양한다. 손쉽고 아티스틱한 감각을 가진 요리를 역점에 둘 것이다. 우리가 프렌치 쉐프가 될 이유는 없다. 즐기는 것이 목적이니까. 그런 즐거움이 모여 감각을 발전시키고 예민하게 다듬고 진정한 쾌락에 이르게 하며 몰입을 줄 터이니까. 당신에게 재즈가 낯선 음악일지언정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재즈도 알아가고 요리도 해볼 수 있으면 좋은 것이다

재즈와 요리의 궁합은 부엌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이 된다. 이를 위해 부엌에서 들을 수 있는 오디오 장치, 이를테면 블루투스 스피커 따위가 있으면 좋겠다. 재즈는 기분을 북돋우어주고 요리에 맛을 더할 훌륭한 양념이다. 재즈는, 재즈가 낯선 사람들도 쉽게 들을 수 있는 친숙한 멜로디와 리듬을 가진 곡이 있는가 하면, 난해하고 추상적인 곡들도 있다. 재즈의 면모는 요리처럼 다양하다. 이것만이 재즈의 정석이라고 말해질 수 없다. 다양한 재즈곡과 앨범이 소개될 것이나, 음식을 먹고 즐길 때는 음식에 초점을 맞추고 식욕을 돋울 수 있는 감각적인 음악을 소개할 예정이다

 

당신의 팬트리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가?

재즈 쿠킹을 할 준비가 되었다면, 먼저 부엌의 팬트리를 살펴보자. 당신의 팬트리에는 무엇이 있는가? 조잡한 소스나 오래된 양념이 자리하고 있지는 않은가? 소금과 후추는 적절한 것인가? 우리는 한식, 퓨전, 서양식, 디저트까지 다양한 경험을 해볼 것이다. 그렇다면 기본 팬트리 목록을 만들 필요가 있다. 기본 팬트리는 재료가 하나씩 빠질 때마다 재구매하여 일정량을 유지할 목록을 말한다.

나의 부엌 팬트리 기본 목록은 다음과 같다. 말 그대로 기본이다

소금(가는 것, 굵은 것) 후추

양질의 올리브유, 식초, 간장, 고춧가루, 쿠킹 와인

건조 콩(렌틸, 검은 콩 등), 여러 종류의 쌀, 퀴노아, 파스타, 밀가루

설탕, 베이킹파우더, 베이킹소다, 이스트,

마른 미역, 마른 다시마, 마른 버섯

토마토 , 앤초비, 케이퍼(caper). 치킨 스탁(Chicken Stock), 비프 스탁(Beef Stock)

소금은 가는 것과 굵은 것을 둘 다 준비한다. 향이 있는 것보다는 양질의 뉴트럴한 소금을 기본 목록에 넣는 것이 좋다. 나는 맬든 솔트(Maldon Salt)를 주로 이용한다. 블랙 솔트나 하와이안 솔트같이 특색있는 소금은 기본 목록 외로 갖춰도 좋을 것이다. 소금 욕심은 가질 만 하다. 소금의 진가를 아는 사람들은 맛소금은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후추는 페퍼콘으로 준비하여 그라인더로 그때그때 갈아서 쓰자

후추의 경우알갱이로 된 페퍼콘(peppercorn) 후추를 이용하자. 전용 그라인더를 이용해 그때그때 갈아서 뿌리도록 하자. 시중에 파는 가루 후추는 치워버리기 바란다. 가루 후추를 쓰면 후추의 진짜 풍미를 느끼기 어렵다. 소믈리에처럼 후추 감별사들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페퍼콘 알갱이 껍질은 신선도를 유지하고 후추 특유의 맛과 향을 보호한다. 그래서 가루 후추는 후추의 플래이버가 상당부분 사라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까다로운 후추 애호가는 후추를 직접 갈아도 30분만 지나면 후추의 풍미가 사라지는 걸 알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도 맞는 얘기이다. 후추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블랙 페퍼콘을 갖추어야 하고 화이트 페퍼콘도 목록에 넣어두자. 향과 맛이 다르다. ….소금처럼 후추 욕심도 낼만 하다.

화이트는 완전히 익은 성숙한 후추 나무 열매이며 외부 스킨이 제거되어서 흰색을 띈다. 수일간 물에 열매를 담근 뒤에 스킨을 문지르기 때문에 매운맛이나 향긋한 맛은 많이 사라진다. 따라서 요리의 마감에는 거의 사용되지는 않고 주로 소스나 수프, 감자 요리나 음료에 많이 가미한다. 북유럽 사람들은 화이트 페퍼콘을 너무나 사랑한다. 추가로 가공했기 때문에 가격은 블랙페퍼콘 보다는 다소 비싸다. 블랙 페퍼콘은 후추의 왕이라고 할 수 있다. 적당히 뜨겁고 매우며 구하기도 쉽다. 최고급 블랙 페퍼콘으로는 말라바르(Malabar), 텔리체리(Tellicheryy), 사라왁 블랙(Sarawak Black), 램퐁(Lampong)이 거론된다. 그러나 어떤 품종이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을 구하기 바란다. 후추 하나에 처음부터 에너지를 낭비하면 김이 빠질 테니까. 차차 좋은 눈과 감각으로 좋아하는 후추를 와인 고르듯 구비해보기 바란다.

올리브유의 세계도 참으로 넓고 깊다. 널리 알려진 지중해산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가 제일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엑스트라 버진으로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올리브유을 갖추도록 하자. 개인적으로는 그리스산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즐겨 쓴다. 양질의 올리브유가 요리를 어떻게 바꾸는지 경험해보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소금, 후추, 올리브유 이 세 가지는 투자할 만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투자를 바란다면 식초. 특히 발사믹 식초는 꼭 기본 목록에 넣어두자. 발사믹 식초도 숙성 단계에 따라서 맛과 가격 차이가 크다. 12년 이상 장기 숙성한 발사믹 식초는 ‘tradizionale’라고 부르는데 농도가 짙고 끈적거리며 대단히 깊은 맛이 있다. 발사닉 식초는 포도가 원료이니만큼 특히 와인 애호가는 수준 낮은 발사믹 비니거는 참을 수 없을 것이다. 최상급의 발사믹 식초가 아니라도 적절한 선에서 평균적인 발사믹 식초를 갖추어보자.

베이킹 소다와 베이킹 파우더는 디저트 요리를 위해 구비해두는 것이며 캔류는 토마토 캔(잘린 것, 또는 농축 소스 등)과 케이퍼도 갖추어보자. 케이퍼는 지중해 연안에 널리 자생하는 식물로 작은 알갱이 같은 꽃봉오리를 식초에 담근 일종의 향신료이다. 훈제 연어에 곁들이기도 하고 육류나 여러 생선 요리에 향과 맛을 가미한다.

내가 즐겨 사용하는 발사믹 비니거는 이태리의 마시모 보투라 쉐프가 만든  Villa Manodori Balsamic Vinegar이다. 깊은 향과 맛이 일품이다.

당신은 재즈 기본 팬트리를 가지고 있는가?

그러면 이번에는 당신의 CD장을 한번 들여다보자. 당신의 CD장에는 어떤 음반이 담겨 있는가? 만약 재즈가 있다면 어떤 음반인가? 흔히 말해지는 재즈 명반은 엄청난 분량이다. 그걸 모두 구비하고 있다면, 일단은 재즈 매니아나 수집가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러한 셀렉션을 가지고 있지 않다. ‘명반(名盤)’은 뜻 그대로 아름답고 훌륭한 음반이라는 의미이므로 어떤 고정적인 양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도 재즈 명반은 계속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재즈의 명반이란 보통 1940~1960년대 사이에 발매된재즈 클래식음반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재즈 클래식 명반도 분량이 많으므로 모든 것을 재즈 기본 목록에 넣기는 어렵다

재즈 기본 팬트리는 재즈 쿠킹이 시작될 때부터 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에겐 유튜브가 있고 유료 음원 다운로드가 있으니까 일단 거기서부터 시작해도 좋다. 차후 소개하는 음악이 마음에 든다면 참고했다가 나중에 구매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 재즈 쿠킹 주제와 본질과 맞고 재즈사에서 위대한 작품으로 꼽히는 이 음반만큼은 당신의 재즈 기본 팬트리의 제1호로 갖춰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름 아닌 ‘Impulse!’ 레이블이 1965년에 내놓은 색소포니스트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Love Supreme>음반이다. 신에게 바치는 경건하고 엄숙한 연주, 음반 전체가 스피리츄얼하고 우주적이며 사랑의 본질을 생각하게 한다. 첫 번째 수록곡 “Acknowledgement”  6 5초부터는 존 콜트레인이 육성으로 Love Supreme 19번 외친다. 나는 샤워할 때, 요리할 때, 일할 때 하루에 한 번은 이 19번의 Love Supreme을 마치 주문처럼 읊조리곤 한다. 마음이 평안해지고 사랑으로 가득 차는 느낌이다. 이 위대한 사랑의 언어로 꿈틀거리는 음반을 나를 표상하는 주제곡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재즈 쿠킹을 하는데 영감을 주는 음반이다

John Coltrane “Love Supreme”, from Love Supreme (Impulse! /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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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연

Jazz critic, Jazz storyteller, Culinary artist. (재즈 비평가, 재즈 스토리텔러, 컬리너리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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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 김희철 2017년 8월 22일

    소금. 후추. 올리브유. 발사믹식초.
    그리고 콜트레인님.
    꼭 준비하려구요.
    낭만적입니다. 요리와 재즈는 은밀하니까요.
    멋진글 잘 읽었습니다.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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