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선물 시장 기간 동안에는 대체로 모두가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지난주 한 미국인 바이어와의 대화는 나를 잠시 생각에 잠기게 했다.
그 미국인 바이어는 이제 미국에서는 보르도 와인이 너무나도 유행에 뒤떨어져 많은 소믈리에들이 와인 리스트에 넣을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건 곧 새로운 그뤼너나 쥐라 같은 와인을 발견할 시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훌륭한 새로운 문물에는 언제나 마음을 열 준비가 되어 있는 수제 맥주 세대에 어필할 수 있는 것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그는 1855 샤토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라브나 카스티용처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구입할 수 있고 훌륭한 가문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그런 소규모 와인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보르도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일 수도 있겠지만 이 이론이 정말로 성립하려면 많은 것이 변화할 필요가 있다. 지난 몇 년간 나 역시 그런 생각이 점점 더 커졌었다. 보르도가 테루아의 감을 잃었다는 걸 인정하기 전까지는 차세대 와인 애호가들의 마음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보르도는 느리지만 다시 원래의 길을 찾아 돌아오고 있다.
“너무나 오랫동안 보르도 사람들은 모든 걸 팔기 위해 테루아라는 개념을 과하게 이용해왔습니다. 일종의 마케팅 용어가 되어 본래의 의미를 잃어 버렸지요. 테루아의 의미를 되찾으려면 현실적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테루아라는 개념은 혼란스러워 많은 이들이 자주 잊어버리곤 하죠.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보르도는 기술적인 양조학에 집중해 토양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잊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의 10년이 더욱 기대됩니다.” 몇 주 전 포메롤에 있는 샤토 라 포앙트의 에릭 모네레가 들려준 말이다.
샤토 라 포앙트는 흥미로운 예다. 포메롤의 덩치 큰 포도원들 중에서도 이곳은 모래밭에 포도나무를 재배하며 매력적이고 마시기 쉽긴 하나 복합성은 거의 없는 와인을 생산하는 것으로 오랫동안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새로이 배수로를 내고, 주의 깊게 나무를 다시 심고(예를 들자면 절대로 열매가 익지 않을 곳에 심어져 있던 카베르네 소비뇽을 뽑아낸 것처럼), 포도원의 세 구획(그 중 한 곳만 모래다)을 이전과 아주 다르게 관리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잠자던 숲속의 미녀를 발견하기를, 숨겨져 있던 테루아를 찾아내 다시 되살리기를 꿈꾸지요. 하지만 포도원에서 실제로 시도해봐야만 해낼 수 있습니다. 아무 효과를 얻지 못할 것도 각오해야 하죠. 와인이 토양의 내재된 가치를 보여주는지, 아니면 그것이 그저 우리가 토양을 관리하는 방식 때문인지 알아내야 했습니다.”
진정성이 있으려면 가진 것에 대해 솔직해야 할 필요도 있다. “우리는 포메롤의 두 번째 계단식 지대에 있습니다. 고원 아래에 있지만 세 번째 계단보다는 높다는 뜻이죠. 낮게 포도나무를 심고 높은 곳에는 오크나무를 심어 쉬운 길을 택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바로 이 테루아로부터 최상의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거의 10년 전 여기에 왔을 때 라 포앙트는 세 번째 층의 이미지와 두 번째 층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페티-클리네, 부르뇌프, 라 크루아, 부르가르 같은 포도원들과 함께 두 번째 계단 지대의 최고에 이르렀다고 보고 싶습니다. 고원 지대를 위협할 정도까지요.”
테루아를 이해하는 건 “말하지 말고 보여줘라”는 식의 개념이 통하는 영역이다. 그 점에서는 페삭 레오냥에 있는 샤토 올리비에에 한 번 가볼 것을 추천한다. 그들은 최근에 2005년, 2010년, 2015년의 포도원 구획에 따라 만들어진 2015년 빈티지 와인 세 가지를 선보이는 아주 흥미로운 테이스팅을 실시했다.
이곳은 보르도가 테루아를 어떻게 되찾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라 포앙트와는 조금 다른 이유로 흥미로운 또 다른 샤토다. 등급에 따라 레드와 화이트 와인으로 분류된 보르도 포도원은 여섯 곳뿐인데 올리비에는 지금까지 늘 잘 눈에 띄지 않았다. 예전부터 나는 이곳이 보르도 최고의 화이트 와인 중 하나를 생산한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최근까지 레드 와인은 그 일관성이 훨씬 떨어진다고 생각했었다.
2003년에 부임한 새로운 책임자 로랑 레브륀(그는 본래 푸이-쉬르-루아르 출신이지만 처음에는 샹파뉴에서 일하다가 오스트레일리아 블루 피레네에 있는 레미 마르탱을 거쳐 보르도로 왔다)은 테루아 전문가 재비에 쇼네를 불러 실제 포도나무를 재배하는 50여 헥타르뿐 아니라 한때 사냥터로 쓰이던 포도원 전체 230헥타르의 토양을 조사하게 했다. 토지 중 상당 부분은 숲으로 덮여 있었지만 그들은 당시 소나무 아래에 있던 극도로 품질이 좋은 자갈과 강하게 응축된 진흙 지대를 발견해냈다. 주 재배 지역으로부터 걸어서 약 10분 거리에 있던 이곳은 지금 벨에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곳에 다시 포도나무를 심었고, 지난 10년에 걸쳐 이곳에서 생산한 포도가 조금씩 와인으로 만들어졌다. 그들은 1760년 당시의 이곳 지도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보면 당시에 그 구획에 포도나무가 자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그 지역 기록 보관소를 통해 과거의 역사를 조사하고 있는 중이다.
이 테루아 테이스팅을 통해 알아내려는 것이 바로 이 구획의 영향력인데, 실제로 놀랍도록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특히 공정한 표현입니다. 2003년 완공된 새 셀러에 기존의 200헥토리터 들이 통 말고도 더 작은 크기의 통들도 들여놓았기 때문에 2005년에 이미 더 잘하고자 하는 야심을 품었거든요. 소유주인 알렉상드르 드 베트망이 그때부터 이곳의 미래에 투자하고 있었습니다. 훌륭한 와인이 되는 데 있어 돈이 큰 장벽인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테루아가 갖춰지기 전까지는 야심을 실현시킬 수 없지요.” 레브륀의 말이다.
샤토 올리비에 2015, 2005년 버전 (Chateau Olivier 2015, version 2005)
전체 면적이 오늘날의 75퍼센트 정도 되었던 2005년 당시의 구획대로 만들어진 와인으로, 포도나무가 막 심어진 벨에어 구획의 포도는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이때의 테루아는 대부분 깊은 자갈이고 벨에어처럼 진흙이 응축되지 않아 그 힘이 덜하다. 과일 풍미는 깔끔하지만 중간이 빈약하고 여운이 조금 짧다. 메를로와 카베르네 소비뇽이 각각 50퍼센트로 이루어져 있다.
샤토 올리비에 2015, 2010년 버전 (Chateau Olivier 2015, version 2010)
이 시점에서 벨에어 포도를 모두 사용했으나 전체적으로 수확량은 15퍼센트에 불과하다. 벨에어 포도를 더 쓰다 보니 55퍼센트 카베르네 소비뇽과 45퍼센트 메를로로 만들었다. 2015년 수확한 포도로 만들었으니 숙성 기간은 정확히 똑같지만 색상이 조금 더 보랏빛이 돈다. 입안에서는 더 밝고 두껍게 느껴지며 깊이가 있다. 2005년 버전의 빈약한 중간은 느껴지지 않는다.
샤토 올리비에 2015, 2015년 버전 (Chateau Olivier 2015, version 2015)
여기에서는 벨에어 포도가 30퍼센트를 차지하고, 이제 이 포도나무는 10년이 되었다. 2015년에 헥타르 당 45헥토리터가 나왔으니 수확량도 나쁘지 않다. 또한 1헥타르의 프티 베르도가 들어갔으니 전체적인 블렌딩은 55퍼센트 카베르네 소비뇽, 40퍼센트 메를로, 5퍼센트 프티 베르도라고 할 수 있다. 2010년 버전과 카베르네 소비뇽의 비중은 똑같지만 벨에어에서 수확한 포도의 양은 두 배로 늘었다. 다시 한 번 색상의 강도와 와인의 힘 및 균형이 한 단계 높아졌고, 태닌이 진정으로 풍부하게 느껴지지만 동시에 여전히 신선하고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숙성 가능성을 명확히 보여주는 강한 구조감을 느낄 수 있다.
작성자
Jane Anson
번역자
Sehee Koo
작성일자
2016.04.21
원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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