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장마가 드디어 끝났다. 무려 50일 넘게 이어진 긴 장마였다. 공기 중에 습기가 많아 몸은 찌뿌둥했고,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수해를 입은 지역도 속출했다. 먹구름이 걷히고 화창한 날씨로 바뀌며 마음 한켠의 우울함도 사라지는 듯하더니 폭염이 시작되었다. 그냥 지나가기 아쉬운 여름의 변덕인가보다.
한때 일본어를 공부했거나 일드(일본드라마)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오래전에 방송했던 인기 드라마 <호타루의 빛>을 기억할 것이다. 직장에서는 완벽한 커리어 우먼이지만, 퇴근 후 집에서는 츄리닝 바람으로 오징어와 맥주를 먹는 ‘건어물녀’라는 신조어를 유행시켰던 드라마다. 이 드라마의 배경은 여름으로, 건어물녀인 호타루(아야세 하루카)는 퇴근 후 툇마루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내일을 위한 충전의 시간으로 보냈다.
귀뚜라미와 매미 소리가 들리는 툇마루에서 시원한 맥주라니! 캔을 따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캬아~ 역시 맥주가 최고야!’라고 그녀의 행복한 외침에 필자는 드라마를 볼 때마다 편의점으로 달려가 맥주를 사서 돌아왔다.
누가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하나의 공식처럼 우린 ‘여름철엔 맥주’라고 말한다. 더위를 가시게 하는데 가볍고 청량감 있는 라거, 탄산의 힘이 크리라. 필자도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맥주를 집어 들곤 했다. 스파클링 막걸리를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입안이 산뜻해지는 청량감, 이랑이랑
지평주조의 <이랑이랑>은 이마트 <발견의 맛> 프로젝트와의 콜라보를 통해 선보이게 된 스파클링 막걸리다. ‘이랑(怡浪)’은 물결치는 기쁨이라는 뜻으로 제품을 열었을 때 탄산이 소용돌이치는 모양과 탄산이 입안에서 상쾌하게 퍼지는 모습을 표현했다고 한다. ‘흔들지 않아도 뚜껑을 여는 순간 알아서 섞인다’는 문구가 병에 쓰여 있는데, 이를 간과하고 병을 흔들었다가는 막걸리 세안을 하게 될 수도 있다(물론 막걸리가 피부에 좋긴 하다). 그만큼 스파클링의 위력이 대단하다.
<이랑이랑>은 일반 막걸리(6%)보다 저도수(5%)로 부담이 덜하고, 레몬 농축액, 허브류, 자일리톨이 들어가 깔끔하면서도 은은하다. 아침에 가볍게(?) 마셔도 좋고 식전주로 마셔도 산뜻함이 식욕을 돋운다. 마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어 캠핑이나 나들이에 챙겨가기 편하다.
오미자 스파클링 막걸리, 오희
오희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만찬주로 문경지역 특산물인 오미자를 원료로 만든 스파클링 막걸리다. ‘다섯 가지 즐거움’이라는 뜻의 오희. 오미자의 오묘한 다섯 가지 맛을 느낄 수 있는 기포와 고급스러운 붉은 색상에 미각과 시각을 고루 만족시키니 다섯 가지 즐거움은 이미 넘어선 듯하다. 특별한 날이나 축하하고 싶은 날, 함께 한다면 즐거움이 배가 되는 술이다. <오희> 역시 스파클링 막걸리이기 때문에 45도 비스듬한 각도에서 천천히 개봉해야 한다.
경북 문경시 동로면에 있는 문경주조에서 빚는 술은 <오희> 외에 여럿 있지만, 대표적인 프리미엄 막걸리는 <문희>다. 오희와 문희, 예쁜 자매의 이름처럼 느껴지는데, <문희>는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뜻으로 경북 문경의 옛 이름이었다고 한다. <문희>는 유기농 찹쌀과 전통 누룩만으로 빚으며, 삼양주 기법을 사용하여 100일 이상 옹기 숙성시킨다. 묵중하면서도 걸쭉한 질감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막걸리다. 정성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얼마나 좋은 재료를 썼는지 구구절절 말이 필요 없다. 그저 술 한 잔이면 충분하다.
딸기향이 은은하게, 편백숲 딸기 스파클링
1998년 폐교한 장성 북초등학교를 개조한 청산녹수 양조장. 청산녹수 양조장의 대표 막걸리는 <사미인주>다. 어디선가 본거 같은데? 그렇다. <사미인주>는 송강 정철 선생의 <사미인곡>에서 모티브를 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과 귀한 시간을 보낼 때 마시는 술이 되길 바란다는 의미를 담았다. <사미인주>는 한복을 입은 여인을 닮은 호리병 디자인조차 인상적이다.
최근 청산녹수에서 스파클링 막걸리를 출시하였다. 장성 편백숲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편백숲 산소 막걸리>. 상쾌한 숲내음이 나는 듯하나 실제론 사과 농축액을 넣어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탄산감이 있다. <편백숲 딸기 스파클링>은 전남 장성지역에서 재배한 딸기와 멥쌀을 사용하며 좋은 원료를 활용하였다. 딸기향 나는 달콤한 청량감은 미각을, 분홍빛 색감에 세련된 디자인은 시각을 사로잡는다.
이제는 워낙 유명한 복순도가의 손 막걸리, 최근에 나온 배상면주가의 아띠까지… 전통주에는 생각보다 많은 스파클링 막걸리가 존재한다.
<호타루의 빛> 후반부에서 호타루(아야세 하루카)는 부쵸(후지키 나오히토)에게 이런 대사를 한다. “맥주가 맛있는 계절이 돌아왔네요.”
여름철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처럼 몸속의 쾌감을 터뜨리는 건 맥주만이 아니다. 스파클링 막걸리도 마찬가지다. “스파클링 전통주가 맛있는 계절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