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중에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중년의 부부가 힘든 여행을 자처하며, 그리 힘든 내색 없이 쉬다가 대화를 나누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일어나서 다음 행선지로 이동한다. 처음에는 이 모습이 생소해서, 우리나라 동시대 부부를 접목해봤는데, 매칭이 안 된다. 여행 복장도 뭐 특별하지 않다. 유명 업체 복장과 장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몸에 편하면 착장하는 거다. 새것 느낌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족히 봐도 몇십년 동행한 배낭과 운동화. 세월 흔적만큼 여행과 일상의 경계가 희미하다.
[사진 001] 여행의 동반자
서로의 등에 의지해 앉아 있다. 누가 누구를 위함조차 찾아볼 수 없이, 대등한 힘의 균형을 엿볼 수 있다. 부러우면 진다는 데, 꼭 한번 지고 싶다면 이 순간일지도 모른다. 내가 찾는 동반자를 상상해본다. 여행 과정에서 벌어지는 희로애락을 반으로 나누거나 둘로 부풀릴 수 있는 동반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진 속에 저 둘을 담아 나중에 만날지도 모를 이상형에게 이런 바람을 갈구하였노라 고백하는 것.
[사진 002] 내 이상형인가 잠시 노려봤다.
스톡홀름에서 동심과 재회하고 싶었다. 유니바켄 Junibaken. 주근깨 빼빼 마른 소녀는 빨강 머리 앤, 어머니가 계시지 않지만 슬픔을 모르는 착한 아이는 ‘말괄량이 삐삐’다. 말괄량이 삐삐의 원제는 ‘삐삐 롱스타킹 Pippi Longstocking’이다. 이 동화는 스웨덴 아동 문학가 아스트리드 린드르렌 Astrid Lindgren의 출세작이다. 나 어렸을 적(1980년대), 공중파에서 방영되어 뇌리 박힌 그 삐삐를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유니바켄 Junibaken이다.
[사진 003] 역시 아이들의 천국인 유니바켄.
이곳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비롯한 여러 북유럽 작가의 동화를 소재로 꾸민 동화 테마 박물관이다. 나도 소싯적 기억을 더듬는 계기로 삼기 위해 아침부터 찾아갔다. 다행히 아이들을 깨워 나와야 하는 다른 가족들보다는 내가 유리했다. 난 나만 대강 챙기고 나오면 됐기에. 아침 9시 오픈이라서, 이날 첫 여행지로 이곳을 선택했다(다른 곳보다 1시간 일찍 오픈하기에).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이미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의 줄이 늘어져 있었다. 유니바켄은 유르고덴 지역을 진입한 후 첫 트램 정거장에 있다. 잠시지만, 영혼이 정화되어 뇌가 순수해지는 기분을 경험했다.
[사진 004] 유니바켄의 전경.
스톡홀름 카드를 구매하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16세 이상은 159SEK(약 21,000원), 3~15세은 139SEK(약 18,500원)을 지불하고 입장하면 된다. 이날은 무슨 날인지, 할인된 가격으로 입장 가능했는데, 나는 스톡홀름 카드가 있어서 그 이유를 알 필요가 없었다. 들어서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각종 동화 캐릭터들이 다양한 장치로 아이들의 시간을 빼앗고 있다. 메인 코스인 이야기 트레인을 타면, 15분 동안 다양한 동화 이야기를 기차로 이동하면서 미니어처 모델로 들을 수 있다. 아이들의 놀이터이지만, 나 같은 향수에 젖은 관객들은 주책없이 아이들의 나와바리(?)에 침범한다. 아이들을 위해 사는 기념품만큼이나 본인 소유의 기념품 구매도 만만치 않다. 박물관 안에 있는 식당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사진 005] 프로그램은 이야기 트레인을 타고 이동하며 진행한다.
[사진 006] 빨강머리 삐삐 퍼즐
사람이 드문 세르옐 광장 sergels torg의 아침. 다음 날 일정을 시작하러 숙소에서 나와 걷는데, 어디선가 연출된 사람들이 해당 지점에 서 있다. 그리고 중앙에 주인공으로 보이는 배우들이 뒤늦게 자리를 잡는다. 어디선가에서 “Action!”의 신호가 떨어지더니, 일사불란하게 사람들이 움직인다. 드라마 촬영인 듯하다. 세르옐 광장은 이른 아침부터 바쁘다. 출근 시간이 되면, 저마다의 일터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위에서 바라보고 있어도 뇌의 긴장이 풀린다.
[사진 007] 세르옐 광장. 배우들이 각자의 위치에 서 있다.
[사진 008] 한창 드라마 촬영 중
스톡홀름의 건물들은 대부분 중세의 잘 지어진 양식으로, 도시 자체에 서 있어도 몇백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그 사이를 비집고 번화가가 형성된 곳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 하나가 스톡홀름 중앙역 부근이다. 회토리예트 Hotorget와 세르옐 광장 Sergels torg, 이 두 광장 사이에 널려진 드로트닝가탄 거리 Drottninggatan 주변은 스톡홀름 최고의 쇼핑 지역이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H&M의 매장도 보이고, 대단위의 쇼핑센터가 들어와 있다. 드로트닝가탄 거리는 감라스탄까지 보행자 전용도로로 이어져 있어서 여행자들이 자주 오가는 곳이다. 회토리예트 광장에는 벼룩 시장이나 청과시장 등이 자주 선다. 지친 심신으로 허덕일 때, 노부부 배낭 여행객이 맞은 편에서 지나쳤다. 존경심마저 들면서 다시금 마음가짐이 급속충전되었다. 나도 저 나이 되면 저렇게 보낼 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도 샀다.
[사진 009] 백패킹 여행하는 노부부
1902년에 세워진 이 백화점은 현재까지도 스웨덴뿐만 아니라 북유럽에서 최고의 백화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탄탄한 외벽에서 느껴지는 중후 감과 고급스러움이 동시에 밀려온다. 위치도 중앙역과 세르옐 광장 인근에 있으며, 현지인이나 관광객들에게 접근성이 좋다. 이 백화점을 기점으로 주위에 스웨덴의 패션 매장들이 연이어 입점해 있으며, 스웨덴 현지 유행 패턴을 눈짐작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의 지하 식품매장은 뜻밖에 관광객들이 저렴하게 끼니를 채울 수 있는 곳이며, 1층에 관광안내소 및 환전소가 있다. 이케아 매장도 있지만, 중심가에서 스웨덴 특유의 인테리어 매장과 주방용품 매장을 만날 수 있다. 백화점 내부에 들어가면, 전체적으로 중앙이 광장처럼 트여 있고, 외곽의 둘레에 매장이 배치되어 있다.
[사진 010] NK Nordiska Kompanet 엔코 백화점
바이킹의 면모를 눈으로 확인하는 시간이다. 스웨덴 해상전투의 자존심을 대변하는 바사 박물관 Vasa Museet. 세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전함 바사호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그 실체가 드러난다. 현재 95% 이상 보존되어졌다. 박물관에 들어서는데, 가이드 투어가 시작되어 초반에는 따라다녔다. 바사호는 1628년 8월 10일 스웨덴의 해군력을 과시하기 위해 스톡홀름 항에서 폴란드로 첫 항해에 나섰지만 침몰했다. 애초 계획보다 많은 대포와 포탄을 배에 싣는 바람에 균형을 유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바사호는 침몰 이후 333년 만인 1961년에 인양됐다. 전함에서는 1만 4000개 이상의 목조품과 700여 개의 조각상, 선원들의 유골과 유품들이 함께 발견됐다. 바사호는 임시 박물관으로 옮겨진 뒤 1988년 새로운 박물관으로 이전해 1990년 바사 박물관으로 개관했다. 7층으로 구성된 바사 박물관은 바사호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 또한 바사호 발견 당시 해저탐색에 사용된 잠수복, 배 안에서 발견된 보석상자 등도 전시돼 있다. 바사호는 군함치고는 대형급이며, 배 전체가 180개에 이르는 조각으로 장식되어 졌다. 특히 배의 꼬리 부분은 모두 금색이어서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보면서 우리나라의 거북선과 비교하게 된다. 그래도 거북선이 위대하다.
[사진 011] 바사 박물관 가이드
[사진 012] 바사호의 모습
북방민속 박물관 Nordiska Museet. 낯선 스웨덴의 일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곳이다. 유르고덴 섬 입구에 있는 이 박물관은 북방 후기 르네상스의 양식의 건물이다. 박물관 안에는 16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스웨덴 사람들이 사용하던 생활용품이 전시되어 있다. 1873년 A.하셀리우스가 설립할 당시에는 스칸디나비아 민속학컬렉션으로 불렀고, 1880년 지금의 이름으로 개칭하였다. A.하셀리우스가 1891년 노르디스카박물관의 부속 야외박물관으로 세운 스칸센 민속원은 1963년부터 분리·운영되고 있다. A.하셀리우스는 1880년부터 스웨덴 및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가구·의복·장난감 등을 사거나 기증받았으며 스칸센 민속원에는 건물과 농장에 관한 물품을 수집하여 전시했다. 특히 농민 문화에 집중하였으나, 이후 운영자들은 부르주아나 도시생활 관련 물품에도 관심을 가지고 수집했다. 박물관에는 직물, 의복, 가구, 집기, 농기고, 도자기 등의 생활용품 외에 스웨덴인의 주거 역사를 시대순으로 정리해 놨다. 특히, 여성들은 의복이나 도자기 등등에 관심을 두고 관람한다. 1층 홀 정면의 커다란 나무 조각상은 스웨덴의 독립에 혁혁한 공신을 한 바사 왕이다. 동상이 실제 위엄있는 분위기가 느껴져서 새로웠다. 살짝 만화 속 주인공 같은 느낌도 들었다.
[사진 013] 북방민속 박물관 앞
[사진 014] 엄청난 기운이 느껴지는 바사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