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의 문화공정 논란으로 나라 안팎이 시끄럽다. 중국은 한복이 중국 한족의 전통 복식인 한푸로부터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기에 중국의 전통 의복이라거나 각종 채소를 절여 만드는 파오차이가 다름 아닌 쓰촨식 김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겨울을 앞두고 김치를 담그는 김장 문화는 2013년 유네스코에 한국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 있으며, 2020년 국제표준화기구는 “중국식 김치가 국제 표준”이라는 중국 언론의 주장을 반박하며 파오차이의 표준이 김치에 적용되지 않음을 명확히 했다.
이처럼 문화와 전통을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는 일은 중요하다. 민족이나 국가의 자긍심도 중요한 이유지만, 문화를 도구 삼아 정치∙외교적 세력 확장을 꾀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기후 변화나 세계화, 정치∙경제적 이유로 그 존속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국제 사회로부터 인정받은 문화와 유산은 일정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식문화는 인류의 문화유산에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며, 특정 주류의 산지나 양조법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혹은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사례도 여럿이다. 오늘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주류 관련 유산들을 하나씩 알아보며 각각의 주류 생산 지역 및 문화가 어떤 점을 인정받아 등재되었는지도 함께 살피도록 하자.
알토 도루의 와인 산지부터 샹파뉴의 언덕까지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유산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로, 세계유산과 무형문화유산 그리고 세계기록유산이며, 세계유산은 다시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으로 나뉜다. 이 중 주류 관련 유산이 이름을 올리는 것은 세계유산 중 문화유산, 그리고 무형문화유산이다. 참고로 유네스코에서는 상업화를 우려해 특정 술이나 음식 자체가 아닌 그 제조 방식이나 문화, 생산지를 유산으로 지정한다. ‘김치’가 아닌 ‘김장 문화’가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처럼 말이다.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중 문화유산의 등재 기준은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하거나 “오랜 세월에 걸쳐 혹은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할 것 등 여섯 가지다. 문화유산의 주류 관련 등재 사례로는 “샹파뉴의 언덕, 샴페인 하우스와 저장고”, “생테밀리옹 특별지구”, “클리마, 부르고뉴의 테루아”를 꼽을 수 있다.
생테밀리옹 특별지구는 “오늘날까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운영되고 있는 역사적인 포도밭 단지의 대표적인 예”로서 “정확히 제한된 지역에서 포도주를 생산하기 위해 포도를 집약 생산하고, 그로 인해 탁월한 조경술이 발달”한 사실이 인정되어 1999년에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 특별지구에는 생크리스토프 데 바르드, 생테티엔 드 리스, 생이폴리트, 생로랑 데 콩브, 생페 다르망스, 생쉴피스 드 팔레랑스, 비뇨네, 리부른 등 아홉 개 마을이 포함된다.
조금 더 최근으로 거슬러 와볼까. 2015년은 프랑스 와인 업계에 특별한 해였다. 샹파뉴의 언덕, 샴페인 하우스와 저장고, 그리고 클리마, 부르고뉴의 테루아가 동시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기 때문이다. 샹파뉴의 경우 “오랜 세월에 걸쳐 완성된 전문성, 여러 직종의 전문 조직과 스파클링 와인 명성의 보호, 다문화 간의 관계 발전과 장기적인 사회적 혁신, 그리고 여성의 참여가 어우러져 탄생한 산물”이라는 점, “공급처와 가공 공간 그리고 판매 및 유통 센터가 본질적으로 상호 연계”되어 있다는 점, “샴페인의 고유한 이미지는 영향력 및 지속성을 일관되게 증명”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클리마(climat)’는 프랑스어로 지역의 기후나 풍토를 뜻하지만, 부르고뉴에서는 코트 도르의 포도밭 구획과 생산 농가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클리마, 부르고뉴의 테루아는 “부르고뉴 지방의 중세 성기 이래로 발달한 포도 경작과 와인 생산을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로서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물론 프랑스 밖에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와인 관련 유산들이 있다. 이탈리아의 “피에몬테의 포도밭 경관:란게-로에로와 몬페라토”는 2014년 “포도 재배와 와인 생산 전통에 관한 특별한 산 증거”이자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자연환경 사이의 상호 관계를 보여주는 특별한 사례”로서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헝가리의 “토커이 와인 역사 문화 경관”은 “최소 1천 년 동안 유지해 온 전통적인 포도 재배 방식을 보여” 주며 “전통적인 경작지의 전문화된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다는 점을 들어 2002년에 등재되었다. 한편 포르투갈의 “알토 도루 와인 산지”는 2천 년에 달하는 포도주 생산의 역사와 아름다운 경관, 인간 생산 활동의 발전상을 반영한다는 점을 인정받아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세계 최초의 양조법, 무형문화유산이 되다
이제 무형문화유산으로 넘어가 보자. 현재 주류와 관련하여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은 단 세 가지, “벨기에의 맥주 문화”와 “고대 조지아의 전통 크베브리 와인 양조법” 그리고 몽골의 “호후르에 담아 아이락을 만드는 전통 기술과 관련 풍습”뿐이다.
“조지아의 전통 크베브리 와인 양조법”은 2013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크베브리’란 와인을 저장하고 숙성하는 달걀 모양의 전통 항아리로, 조지아인들은 8천 년 전부터 크베브리를 활용해 와인을 양조했다고 하며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 크베브리 와인이 인류 최초의 와인이다. “조지아의 사회, 정치적 환경이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크베브리 제작 및 크베브리 와인 양조 전통은 활발히 전통되고 있”다는 점, 조지아의 기독교 문화 및 음악, 미술에 있어 와인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 등이 이 무형문화유산의 의미로 언급되었다.
2016년 등재되어 벨기에인들의 자긍심을 드높인 “벨기에의 맥주 문화”는 “벨기에 전역의 여러 공동체가 행하는 살아있는 유산”으로서 맥주의 종류가 1,500가지에 달하는 다양성, 정립된 양조 및 전승 시스템, 물을 절약하는 신기술을 도입하거나 재활용 가능한 포장을 권장하는 등 지속 가능한 생산을 장려한다는 점, 맥주를 이용한 요리나 음식과의 페어링을 통해 식문화를 풍부하게 해준다는 점 등이 언급되었다.
2019년에는 몽골의 “호후르에 담아 아이락을 만드는 전통 기술과 관련 풍습”이 등재되었다. 아이락은 마유를 발효해 만드는 몽골의 전통주, 호후르는 소가죽으로 만든 자루 모양의 용기다. “암말의 아이락, 아이락 제조법 그리고 아이락의 소비는 목부 공동체가 지닌 사회의 관계의 본질적인 특성을 반영하고 설명하는 사회문화적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이 유네스코 측에서 밝힌 이 무형무산의 의미다.
우리 술의 등재 가능성은?
자국의 주류 관련 지역 혹은 문화를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하려는 나라는 많다. 지난해 2월 일본의 스가 총리는 사케와 일본 소주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10년간 3배 가까이 급증한 사케의 수출 규모에 힘입은 움직임으로 보인다. 2015년 샹파뉴와 부르고뉴의 등재 소식을 전해 들은 스코틀랜드 역시 스카치위스키의 유네스코 등재를 향한 희망을 내비쳤다. 리처드 로치드 당시 농천경제관광청 장관은 “스카치위스키 산업은 상징적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전통과 기술에 깊은 관련이 있다”면서 샹파뉴의 성공적인 등재 사례를 조사해 스카치위스키의 유네스코 유산 등재를 추진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은 어떨까. 우선 한국의 국가무형문화재 중 전통주로는 문배주와 진달래로 빚는 면천두견주, 경주 교동 법주가 있으며 지난해 6월 ‘막걸리 빚기’가 새로운 국가무형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숨은 무형 유산 찾기’와 ‘국민신문고’를 통해 국민들이 직접 무형문화재 등록을 제안했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은 등록 사례다. 막걸리 업계에서는 여세를 몰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도 추진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다. 이대형 경기도농업기술원 자문위원은 《한겨레》 칼럼을 통해 2018년 등재된 씨름의 경우처럼 북한과 공동 등재를 추진하는 것도 막걸리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