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어떤 방법으로 먹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시대를 막론하고 계속되어 왔다. 특히 지금의 고기는 단순한 조리법을 넘어 복합적이고 과학적인 원리를 통해 우리의 입을 더욱 즐겁게 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조리법 중에서도 인류가 가장 오랜 기간 또,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된 조리법이라 하면 단연 삶기다. 단순히 끓는 물에 고기를 넣는 방법이지만, 이 간단해 보이는 조리법에도 상당히 깊숙한 이야기가 있다.
1. 우리나라의 수육
우리나라의 수육은 ‘숙육(熟肉)’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한자를 풀이하면 익은 고기라는 뜻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ㄱ‘ 이 탈락되며 수육이라는 이름이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나 ’수‘의 한자가 ’물(水)’로 변한 것으로 보아 꼭 그러한 이유로만 수육이라는 이름이 된 것은 아닌 것 같다.
고기는 서민들이 일상식으로 먹었던 음식은 아니다. 오히려 김장, 제사, 잔치와 같은 일종의 행사에 사용하는 음식에 가까웠다. 생각해 보면 수육이라는 조리법은 상당히 효율적이다. 첫째로는 한 번에 두 가지 음식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지금의 수육이 국밥집 혹은 냉면집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유와 비슷하다. 즉, 고기와 국물을 둘 다 취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과영양의 시대에는 어쩌면 ‘굳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먹을 것이 부족했던 과거를 생각해 보면 단순히 고기를 불에 구워 먹는 구이보다는 보편적으로 서민들에게 인기 있던 조리법이라 생각된다. 이 때문인지, 여전히 국밥은 대표적인 서민 음식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2. 수육은 과학이다.
일반적으로 수육으로 사용하는 고기라 하면 소고기보단 돼지고기가 생각나는데, 단순히 저렴하기 때문에 자주 활용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먼저, 돼지고기는 일반적으로 소고기보다 근내 지방이 풍부하다. 특히 지방을 물에 녹여 내야 하는 조리법이라 부위에 따라 다르지만, 비교적 지방 함량이 풍부한 돼지고기의 경우가 수육으로 조리할 때 더욱 풍부한 풍미를 낼 수 있다. 그렇다면 수육을 맛있게 삶는 방법이 있을까?
맛있는 수육을 만들고 싶다면, ‘맛있는 수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나는 맛있는 수육의 조건을 크게 2가지로 생각한다. 첫 번째 잡내가 나지 않아야 한다. 두 번째 부드러워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부터는 잡내가 나지 않으며 또, 부드럽게 수육을 삶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3. 수육에 잡내가 나는 원인?
수육의 잡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부패와 산패로 가는 과정의 결과다. 사실 ‘상했다’라고 표현하는 단어를 조금 더 풀어 말하면 단백질의 부패, 지방의 산패라 말할 수 있다. 일정 수치 이상의 미생물이 증식되면서 날 수 있는 좋지 않은 냄새다. 즉 상태가 좋지 않은 돼지고기를 구매했다면 잡내가 날 수 있다. 특히 지방의 비율이 높은 돼지고기의 경우 공기 중에 오래 노출된 고기일수록 잡내가 날 수 있으니 주의한다.
또 많은 사람들이 잡내의 원인을 핏물이라 생각해 고기를 물에 담가놓는데, 실제로 우리에게 유통되는 고기에 발견되는 빨간색은 핏물보다는 고기의 육색소인 미오글로빈, 즉 육즙일 확률이 높다. 이 역시 신선하지 않다면 좋지 않은 냄새를 유발하겠지만, 꼭 완벽하게 제거해야 할 필요는 없다. 신선한 고기라면 잡내 제거를 위해 굳이 고기를 물에 담가 놓아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또 가끔은 수퇘지라 냄새가 난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거세를 하지 않은 수퇘지의 경우 ‘웅취’라는 불쾌한 냄새가 나기도 하는데, 우리에게 판매되고 있는 돼지고기의 경우 대부분 거세를 진행하기 때문에 수퇘지라 잡내가 난다고 하는 것 역시 지금 와서는 틀린 내용이라 볼 수 있다.
4. 수육의 잡내를 제거하는 방법은?
이렇듯 수육의 잡내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신선한 고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고기가 신선하지 않다고 잡내를 제거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고기의 잡내를 없애는 방법과 그 원리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알아보자. 잡내를 제거하는 방법의 핵심은 크게 단백질을 통해 잡내 성분을 흡착시키는 방법과, 향을 활용해 잡내를 덮는 방법, 또 휘발을 통해 공기 중에 냄새를 내보내는 방법이다.
먼저 단백질을 이용한 방법은 대표적으로 된장과 고추장과 같은 단백질 성분을 이용해 고기의 잡내를 없애는 방법이다. 된장과 고추장을 물에 풀어 혼탁액을 만들고, 그러한 상태의 물에 삶은 고기에 있는 좋지 않은 냄새를 유발하는 단백질을 흡착하고 같이 응고하며 잡내 일부 제거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은 상당히 활발하게 활용되지만, 생각보다 원리에 대해 제대로 알고 행하는 방법은 아니다.
이러한 방법과 비슷하지만, 아예 다른 원리로 행해지는 방법이 바로 물에 향을 넣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커피가 될 수 있는데, 커피의 향으로 돼지고기의 잡내를 잡는 원리다. 이러한 원리는 돼지고기를 삶을 때 월계수 잎, 정향, 팔각과 같은 향신료를 같이 넣고 삶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하지만 알코올을 이용한 잡내 제거의 방법은 앞서 말한 향을 덮는 것과는 또 조금 다르다. 알코올은 기본적으로 휘발성이 강하다. 때문에 물에 비해 기화되어 공기 중으로 휘발되는 온도가 낮다. 이러한 원리를 활용해 고기에 있는 잡내 성분을 가지고 공기 중으로 냄새를 내보내는 원리다. 하지만 원리에 비해 뚜렷한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확인된 바 없다. 다만, 생선찌개를 팔팔 끓이는 이유 중 하나가 생선의 비린내를 휘발시키려는 목적도 있으니 아예 없는 이야기는 아닌듯하다.
5. 부드럽게 고기를 삶는 방법은?
고기의 잡내를 잡았지만 고기가 뻑뻑하다면 맛있는 수육이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부드럽게 고기를 삶는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내가 삶는 고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즉 어떤 부위를 사용할 것인지에 따라 부드럽게 고기를 삶는 방법이 천차만별이라는 뜻이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흔히 먹는 삼겹살과 목살의 경우는 부드럽게 삶는 것이 크게 신경을 쓸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미 구이로도 충분히 부드러운 고기이기에 끓는 물에서 약 40~60분이면 충분히 부드러워질 것이다. 하지만 앞다리와 뒷다리의 경우 부드럽게 삶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부위들은 다리 근육이기에 다른 부위에 비해 크기가 크고 결합조직이 많다. 때문에 다른 부위보다는 더욱 오랜 시간을 삶아야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팁을 주자면 부드럽게 고기를 삶기 위해서는 무조건 센 불로 끓이는 방법은 옳지 않다. 어느 정도 물이 끓었고, 국물에 불순물을 잘 제거했다면, 80~90의 온도로 약하게 오래 끓이는 것이 오히려 더욱 부드러운 고기를 만드는데 기여한다.
마지막으로 소금물과 설탕을 이용해 고기를 재워놓고 고기를 삶기도 하는데, 이러한 방법으로 처리를 하고 고기를 삶으면 상당히 고기의 육질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야채들이 소금에 절이면 부러지지 않고 휘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데, 조직에 수분이 염분이 높은 외부로 나오면서 조직이 어느 정도 유연해지는 것이다. 더불어 간도 조절할 수 있어 더욱 맛있는 수육을 먹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고기를 절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소금물에 고기를 넣어 삶게 되면 간이 되어있는 국물이 돼지고기를 무르게 하는 것을 방해해 더욱 뻑뻑한 고기를 먹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수육을 맛있게 삶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 반영되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신선한 고기와 알맞은 조리법을 통해 잘 삶은 고기는 무조건 맛있다는 것은 틀린 내용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