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와인과 각종 주류, 관련 기사를 검색하세요.

세월이 지나간 흔적 그대로의 후통(胡同) : 베이징을 걷다 ➃

세월이 지나간 흔적 그대로의 후통(胡同) : 베이징을 걷다 ➃

임지연 2016년 3월 22일

지난(至難)했던 700여년의 수도 베이징으로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 길이 있다. ‘좁다란 골목’이라는 뜻에서 ‘후통(胡同)’이라고도 불리고, 오래된 베이징의 모습을 변함없이 가진 곳이라 해서 ‘라오베이징(老北京)’이라고도 불린다.

바로 ‘난뤄구샹(南锣鼓巷)’이다. 좁고 길게 조성된 골목길에 붙은 이름인 난뤄구샹은 지금으로부터 740여 년 전 베이징에서 가장 오래 전 조성된 이 길에는 그 때 지어진 좁고 낮은 단층 건물들이 회색의 빛을 입고 긴 행렬을 잇고 있다.

beijing_6

원대(元代)의 도성과 동시기에 지어졌고, 이후 수 백 년 동안 계속됐던 숱한 전쟁과 왕조의 변화를 겪으면서도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 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했던 기억을 간직한 오랜 연인을 조우했을 때의 기쁨과 아련함을 회상하는 기분이 들어 종종 찾게 되는 곳이다.

처음 사람들이 집을 짓고 마을을 형성한 것은 700여 년 전이지만, 1700년 무렵 청나라시기에 들어와서야 ‘난뤄구샹’의 규모와 길이를 처음 측정해 도안을 만들었을 정도로 역사가 길다. 가로 8m의 좁은 길을 따라 지어진 단층 집들의 모습은 과거 개발이 진행되기 이전 서울 어느 동네에서 봤던 익숙한 모습을 하고 있다. 모두 1층 집으로만 나란히 지붕을 기대로 있다.

beijing_8

beijing_7

하지만, 최근 들어와 이 길은 어느새 남북으로 약 1000m에 이르는 긴 골목을 형성, 오래된 골목을 체험하기 위해 몰려드는 이들로 골목의 길이는 지금도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추세다.

눈부신 경제 성장과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련된 베이징의 모습에 지친 이들이, 낮은 담벼락에 기댄 좁고 낡은 골목을 찾아오는 ‘기현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찾아오는 관광버스에서 수십여 명의 관람객들이 주변 곳곳을 탐문하듯 오래된 골목 자취를 사진에 담아가기 분주한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의 움직임에 휩쓸리듯 걸음을 옮기다 보면, 관광객들을 겨냥한 ‘후통 투어’를 외치는 ‘인력거 부대’를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다. 이 일대 골목 투어에 필요한 비용으로 20~100위안까지 천차만별 요금이지만, 흥정을 통해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점도 재밌다. 인력거에는 최대 성인 2명까지 탑승할 수 있고, 인력거 기사에게 주민들만 알고 있을 법한 맛 집 정보를 알아보고 찾아가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beijing_4

beijing_3

한편, 중국 국가여유국(國家旅游局,중국관광청)에서는 이 일대를 관광지로 개발, 지원하는 한편 지역 주민들의 사생활 보호에도 힘쓰는 모양새다.

실제로 본래 이곳에 살고 있던 마을 주민들은 밤낮없이 찾아오는 관광객들과, 사진 세례에 사생활 보호의 필요성에 대해 강력한 주장을 했는데, 국가여유국에서는 이 지역 일대를 주민 생활 구역과 관광지로 구분, 주민들이 살아가고 있는 골목 어귀마다 경비시스템을 지원하고 주민 생활구역에서의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불과 1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만 해도 볼 수 없던 새로운 광경이다. 그 만큼 해를 거듭할 수록 이 지역에 쏠리는 관심의 크기가 커져가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면서도, 중국 정부는 이 일대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지난 2013년부터 좁은 골목 곳곳에 무료 와이파이(WIFI)를 설치했다.

일명 ‘디지털 난뤄’라고 불리는 온라인 지원 서비스로, 골목 마다 서린 역사 고적과 대표적인 맛 집, 투숙 시설 등을 관광객들이 온라인 접속해 직접 검색하고, 탐방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실제로 이곳에 자리한 상점마다 고유 QR코드를 가지고 있어, 관광객이 해당 코드를 인증하면 다양한 할인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했다.

beijing_2

beijing_1

긴 이야기를 가진 골목 곳곳을 2~3시간 가량 오고 가면, 허기진 배를 채울 ‘타이밍’이 다가온다. 맛집을 찾아갈 시간이다. 대표적인 미식 거리 역시, 주머니 두둑한 관광객을 겨냥한 고급 레스토랑이 즐비한 곳과 주민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저렴한 가격의 소박한 맛을 자랑하는 현지 로컬 식당 거리로 나눠진다.

필자가 찾은 식당은 3평 남짓한 조그마한 규모로, 주인장 내외가 운영하는 라면집이다. 주인장이 직접 뽑은 면에 뜨끈한 국물을 말아주는 라면 한 그릇에 13위안(약 2천300원), 곱빼기는 15위안(약 2천800원)이다. 식성에 맞게 첨가할 수 있는 양념간장 한 종지가 반찬으로 곁들여 나온다. 중국식 자장면과 볶음면 등 가격 대비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이 근방 토종 면 요리 집인 것이 틀림없다.

뜨끈한 국물 한 국자를 넘기며, 최근 며칠 간 계속됐던 여행과 일상이 혼연일체 된 피로를 풀고, 다시 걸음을 옮길 힘을 얻는다. 주머니 가벼운 청춘의 어느 날, 불현듯 찾아가도 좋을 베이징의 한 면을 ‘난뤄구샹’ 골목 어귀에서 발견하고 돌아간다.

Tags:
임지연

평범함 속의 특별함을 찾는 인생 여행자

  • 1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