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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렝게티, 그 뜨거운 여행

내가 어렸을 때,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날 수 있는 동력을 주던 것은 바로 월트 디즈니에서 동물을 주제로 한 다양한 애니메이션이었다. 라이언 킹의 주인공인 심바,그리고 그들의 영원한 친구 티몬과 품바는 어린 시절 간접적으로 동물의 왕국을 ‘꿈’꾸게 했다. 그리고 그 꿈이 현실이 되었다.

세렝게티 국립공원까지 가는 길을 쉽지 않았다. 탄자니아에서 가장 큰 도시 다르에르살람에 도착해서도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아루샤로 이동해야 했다. 그리고 다시 그곳에서 비포장도로를 몇 시간이나 달려 국립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엉덩이가 부서질 듯 사륜구동을 타고 먼지 속을 수 시간 동안 달리면 임팔라, 얼룩말, 누떼가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한다.tanzanie-13

세렝게티에서 며칠간 머물 야영장에 도착했을 때, 해는 이미 수평선을 넘어가고 있었다. 야영장은 케냐국경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보통 국립공원 내에 야영장은 경계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드넓은 사바나에 크고 작은 텐트를 쳐서 안과 밖을 구분할 뿐이었다. 야영장 내에서 보내는 시간도 야생 그대로다. 1킬로 미터 밖에서 사자 울음소리가 들리고, 밤새 텐트 옆에는 물소, 하이에나, 누떼가 영역표시를 하며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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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렝게티의 아침은 지저귀는 새들과 함께 시작한다. 피곤함에 지쳐 잠들었던 지난밤과는 달리 새소리를 들으며 아침 햇살에 눈을 뜨는 건 꽤 달콤한 일이다. 텐트를 나와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고 기지개를 피고 나면 아침 식사를 즐기고 있는 동물들이 보인다. 야영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풀을 뜯고 있던 물소는 사람을 보고 슬금슬금 도망가려고 뒷걸음친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화가 나면 그 어떤 동물보다도 무섭기로 소문난 그들이지만, 겁이 많은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인 것 같다.

아침마다 우리를 반기는 건 다름 아닌 치타가족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세렝게티를 여행하는 동안 아침마다 치타를 볼 수 있었다. 아직 털갈이하는 새끼 치타는 어찌나 장난을 치고 싶어 하는지 잠시도 가만있지 못한다. 세상에 나온 지 이제 겨우 몇 달밖에 안 돼 보이는 새끼 치타에게 이 세상은 너무나도 즐거운 놀이동산이다. 마른 나뭇가지 하나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고, 뛰다가 구르다가 어미 치타에게 얼굴을 비비며 사랑을 표시한다.tanzanie-44이곳에서 며칠을 돌아다니다 보면 자연의 흐름을 저절로 느끼게 된다. 강한 자, 영리한 자, 공동체는 살아남고, 혼자 남겨진 약자는 누군가의 먹잇감이 된다. 맹수에 의해 대부분의 살과 뼈가 발라지고, 하이에나 독수리가 그다음을 잊는다. 그리고 수많은 곤충과 미생물에 의해서 죽은 동물은 완전히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런 곤충과 미생물은 또 다른 동물의 먹잇감이 된다. 모든 것은 자연에서 와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덕분에 사바나는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즉 무척이나 깨끗하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어떤 것도 거부한다.tanzanie-45

사바나를 여행하는 것은 자연에 다가서는 것을 의미한다. 비가 많이 오는 우기에는 사바나가 초록으로 물 들고 알록달록한 꽃들이 피어난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고 사바나가 금색으로 물드는 건기에는 하늘과 땅의 경계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구불구불 모양새를 더한다.

세렝게티 국립공원의 다른 이름은 아마도 동물의 왕국일 것이다. 20만 마리가 넘는 얼룩말은 세렝게티를 얼룩덜룩하게 장식해 주고, 수천 마리씩 무리 지어 마라 강을 건너는 누떼의 이동은 경이롭게 느껴진다. 조용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과시하는 사자를 찾아내는 일은 사파리의 묘미이며, 코끼리는 특유의 영리함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흰색 양말을 신은 기린은 우아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작은 두 개의 뿔과 그 옆으로 살랑살랑 움직이는 귀는 기린이 생각보다 귀여운 동물이라는 걸 알게 한다.

세렝게티에서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동물은 다름 아닌 치타와 표범일 것이다. 치타와 표범을 구분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낮에는 나무 위에서 생활하고 밤에 먹이를 사냥하는 표범은 차가운 시선을 풍기며 치타보다 그 기운이 더욱 날카롭다. 치타는 낮에 사냥하기도 하며 무엇보다 양쪽 눈에서 코와 입까지 연결되는 진한 두 개의 검정 줄무늬가 있다. 치타와 표범은 생각보다 주변에 무신경하다. 그들 주변을 사파리 차량으로 맴돌아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이 광활한 대지에서 다양한 새를 구경하는 것도 놓칠 수 없다. 세렝게티에는 500종이 넘는 새가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다름 아닌 독수리다. 해가 질 무렵 수평선 위 아카시아 나무 꼭대기에는 어김없이 독수리가 앉아있다. 날개를 곱게 접고 날카로운 눈을 부릅뜬 채 저 멀리 태양을 응시하는 이 아름다운 새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면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tanzanie-75

동물의 왕국, 인류의 보고인 이곳은 수 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은 적이 없다.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이곳은 이 모습 그래도 영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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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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