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 지역에서 강 건너 페스트 지역을 바라보았다. 희뿌연 안개 사이로 보이는 건물이 헝가리의 국회의사당 Parliament Building이다. 영국 국회의사당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시내의 최고 중심지인 벨바로시의 바로 위쪽에 있는 립토바로시 Liptovaros는 역사적으로 정치, 행정의 중심지였고, 국회의사당이 대표적 건물이다. 당시 헝가리는 건축 1,000년에 세워질 정치적 건물이 민족적 자존심을 세우는 동시에 굴곡진 헝가리 역사의 어두운 과거를 청산할 수 있는 건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거셌던 시절이었다. 이 국회의사당은 런던의 영국 의회가 자리 잡은 웨스트민스터 Westminster 궁을 벤치마킹했다. 국회의사당은 건축 형식으로만 따져보면 고딕, 바로크, 르네상스 형식을 모두 갖추고 있지만 결국 그것은 헝가리식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렇게 알고 바라보니, 템스 강의 그것과 오버랩된다. 국회의사당의 외벽에는 헝가리 역대 통치자 88명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지붕에는 1년 365일을 상징하는 365개의 첨탑이 있다. 국회의사당의 내부에는 총 691개의 집무실이 있으며, 카펫의 길이를 모두 합치면 무려 3,456m에 이른다고 한다. 김춘수 시인의 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의 배경이 바로 국회의사당 앞에 있는 코슈트광장이다. 1956년 혁명 당시 부다페스트 대학생과 시민들이 소련군의 철수와 헝가리의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연좌데모를 벌이다가 소련군의 총탄에 쓰러져간 곳으로, 헝가리 민주의회 정치의 현장으로도 유명하다. 헝가리의 역사를 들춰보면, 피와 혁명의 흔적들이 선연하다. 후대의 우리는 야경이 아름다운 곳으로만 알겠지만, 빛 속에 드리운 그림자는 짙고 무겁다.
바치 거리 Vaci. 부다페스트의 가장 번화가인 보행자 전용 쇼핑가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명동과 같은 거리다. 차량 통행이 전면 금지된 거리라서 보행하는 데 편하다. 고급 부티크와 선물 가게 등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번화가로 이곳에 오면 헝가리의 명물을 모두 살 수 있다. 헝가리의 명물 도자기 헤렌드의 직영점도 있다. 이곳만큼은 서유럽의 중심가와 다르지 않다. 쇼핑에 큰 관심이 없는 나에게는 그저 그런 길에 불과하지만… 호스텔에 들어와 다음 날 여행지들을 계획하고 있는데, 한국인 청년 한 명이 내게 다가오더니 이런저런 정보를 물어본다. 게다가 저녁을 먹을 시간이라,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자는 제안했다. 어차피 혼자 먹을 계획이라, 흔쾌히 수락한 후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중앙시장 Vsrcsarnok은 바치 거리가 끝나는 지점에 모자이크 모양의 지붕이 덮인 이색적인 건물로 부다페스트 최대의 상설시장이다. 이 시장은 다이애나 황태자비와 오스트리아 요제프 황제도 방문했었다. 지하에는 슈퍼마켓과 활어와 생고기(사슴, 토끼 등)가 있고, 1층에는 채소, 과일, 향신료 등을 파는 작은 가게가 줄지어 있다. 특산품인 푸아그라 통조림과 파프리카는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저렴하게 요리를 해서 끼니를 해먹어야 하는 배낭여행객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그만큼 저렴하고 싱싱한 현지 음식을 찾을 수 있는데, 재래시장인지라 발품을 팔아야 싸고 괜찮은 식재료를 득템할 수 있다. 등심과 각종 채소들은 각자 한화 10,000원 정도로 해결했다. 부다페스트는 배낭족에게 천국과 같은 곳이다. 다음날 페스트 지역을 걸어 다니기로 정하고 호스텔에서 나왔다. 치욕스럽지만, 우리나라는 성형외과 천국이다. 서울 압구정동에 가면 성형외과 간판 일색이고, 대한민국의 성형 기술은 인근 국가에도 소문이 나서 중국에서는 아예 성형패키지 여행상품이 붐을 일고 있다. 내가 유럽에 있는 동안에도 유럽 친구들에게 한국 하면 연상되는 키워드를 답하라고 했더니, 몇몇은 성형수술 Plastic operation이라 할 정도다. 불명예스럽지만, 아무튼 우리나라의 의술이 훌륭한 것만은 확실하다. 유럽에서는 헝가리의 부다페스트가 치과 시술로 유명하다. 확인된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헝가리가 임플란트의 시초라고 들었다. 부다페스트 시내를 걷다 보면, Dentist란 간판을 종종 볼 수 있다. 심지어 치과 거리가 있을 정도다. 부다페스트가 치과로 유명해진 건 속칭 ‘가성비’가 우수하다는 점이다. 저렴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유럽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도 여행할 겸 부다페스트를 많이 찾는다. 유럽의 노년층도 부다페스트에 방문하여 치과 치료도 받고, 온천도 즐기곤 한다. 지하철 1호선이 쭉 이어진 언드라시 거리 Andrassy ut로 끝까지 걸어가 보자. 걸어가다 보면, 오른편에 노란색 건물의 우리나라 대사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 대사관에서 3분 정도 더 걷다 보면, 영웅 광장 Hősok tere이 보인다.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여 1896년에 지어진 커다란 광장이다. 그 꼭대기에는 이슈트반에게 왕권을 부여하라고 로마 교황에게 계시를 내린 대천사 가브리엘이 서 있다. 주변에는 마자르족의 족장 아르파드와 다른 부족장의 기마 상이 있다. 광장을 감싸듯이 둥글게 세워져 있는 열주 사이에는 이슈트반과 마차시 등 역사에 남은 국왕들, 그리고 헝가리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싸운 라코치와 코슈트 등 근데 지도자 14명의 동상이 있다. 기념비 앞으로는 무명용사의 무덤이 있으며, 광장 양쪽으로 그리스 신전 모양의 근대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 광장은 주말에 부다페스트의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스케이트보드나 자전거 등의 묘기 향연을 볼 수도 있다. 헝가리의 국가 주요 행사도 이 광장에서 열린다. 헝가리 1,000년 건국을 기념하는 반원형의 영웅광장 뒤편으로 가서 다리를 건너면 시민 공원 Varosliget이 보인다. 겨울이라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스케이트장이다. 서울시청 앞의 그것보다 훨씬 크다. 이것은 도나우 강의 물을 끌어들여 만든 인공 호수인데,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이용된다. 매우 전통 있는 곳이며, 많은 시민이 이 공간에서 즐기고 있다. 그리고 좀 더 걷다 보면, 버이더후냐드 성이 그 역사를 누리며 서 있다. 예전에 헝가리의 영토였지만, 지금은 루마니아에 속해 있는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드라큘라 전설이 깃든 성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루마니아에 있는 성은 15세기에 베오그라드에서 투르크의 대군을 격파한 트란실바니아의 후녀디 야노시 후작의 성관이었다. 버이더후냐드 성은 여러 가지 건축양식이 혼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안에는 농업박물관이 있다. 이 성에서 반대편으로 나오면 공원 한복판이 나오는데, 좀 더 가로질러서 걷다 보면 노란색 건물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세체니 온천이다. 헝가리는 온천의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헝가리 전국에 약 1,000여 개의 온천이 성행하고 있으며, 온천에 몸을 담그는 것 자체가 의료상의 행위로 간주한다. 특히, 수도 부다페스트에만 유명 온천이 100곳이나 된다. 온천은 크게 3가지로 나뉘는데, 오랜 역사를 이어온 전통 헝가리식 온천, 수영장과 함께 레저 요소가 가미된 온천, 현대적인 호텔의 온천 등이다. 부다페스트는 여행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좋은 여행지이다. 세체니 온천은 위의 3가지 중에 수영장이 함께 있는 레저용 온천이다. 온천으로서는 유럽 최대의 건물이기에, 관광객이 많다. 페슈트 지구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20세기 초의 대규모 온천이다. 3개의 야외 수영장 중 중앙의 직사각형이 수영용이고, 양옆의 것은 온천이다. 온천 안에서 남성들이 체스를 하는 광경은 이곳의 명물이다. 실내에도 온천탕이 여럿 있다. 내부는 대리석 기둥이 로마식이지만, 외관은 네오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건물이다. 건물 밖에도 온천 때문인지, 관광용 장치인지 뜨거운 연기가 피어오른다. 온천은 수영복을 착용하므로, 미리 준비해 가거나 입장료를 끊을 때 대여하면 된다. 수영복을 가지고 오면 대여비 400포린트를 아낄 수 있다. 이곳은 영웅광장에서 좀 더 안으로 들어가면 보인다. 온천 주위의 호수(?)에도 더운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비둘기는 이 온도가 좋은가보다. 연중무휴며, 아침 6시에 개장하여 저녁 7시에 닫는다. 야외수영장은 저녁 10시까지 운영한다. 마사지도 가능하며, 이용료는 별도이다. 처음 입장료와 대여료를 지불할 때 보증금도 포함되어 있으니,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놀라지 말 것. 마지막으로 부다페스트의 밤을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하루는 야경을 관람하고 다음 날은 온천 파티 일원이 되어보는 걸 추천한다. 세체니 온천에서 매주 토요일 10:30~03:00까지 파티가 진행되며, 티켓을 사이트에서 예매하면 된다. 온종일 돌아다니며 육체를 혹사했다면, 이젠 내가 나에게 보상해줄 차례다. 헝가리도 전통주가 있다. 츠박 유니쿰 Zwack Unicum. 이 술은 독일의 예거마이스터 Jagermeister, 체코의 베헤로프카 Becherovka와 비견할 정도의 약초주다. 쓴맛이 강한 전통주 유니쿰Unicum은 소화에도 특효가 있는데 40여종의 헝가리 약초들이 혼합된 술인데, 알코올 함량은 40%다. 1790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주치의가 황제 요제프 2세에게 여러 가지 약초를 증류시켜 만든 술을 올렸고, 맛을 본 황제는 “이건 유니쿰이군(이거 독특하군!)(Das ist ein Unicum)!”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유니쿰은 라틴어로 ‘세상에서 둘도 없는 진귀한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후 1840년 주치의의 아들이 아버지가 만든 술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고, 황제의 찬사와 아버지의 성(姓)인 ‘츠박(Zwack)’을 조합해 ‘츠박 유니쿰’이라 이름을 붙였다. 유니쿰의 제조법은 츠박 가문 후손들을 통해서만 이어져 내려온다. 이 술은 떡갈나무 술통에서 수 개월간의 숙성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헝가리에서 판매되는 유니쿰은 연간 300만 리터 이상이고, 미국, 독일 등 30여 개국에 수출한다. 유니쿰 넥스트 Unicum Next는 2004년에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제조한 술이다. 오리지널 유니쿰은 짙은 갈색에, 걸쭉하고 액상 소화제와 비슷한 떫은맛이 나지만, 허브향과 레몬 향이 어우러진 ‘유니쿰 넥스트’는 보다 깔끔하고 가벼운 뒷맛에 삼키면 부드럽게 넘어간다. 색깔도 연한 노란색이어서 전체적으로 ‘약술’이 아닌, 일반적인 술에 가깝다. 단맛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를 겨냥한 전략이다. 기본적으로 약초주가 단맛이 있는데, 애주가 입장에서는 더 달달한 유니쿰 넥스트는 몇 잔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애피타이저용으로 제격인 술이고, 온더락으로 마시면 덜 달아서 좋다. 벌써 눈부터 서서히 해장 되는 기분이 든다. 얼큰한 걸 먹어줘야 속이 풀리는 민족인지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만난 굴라시 음식은 숙취 후 ‘모닝케어’와도 같았다. 굴라시 Goulach는 헝가리식 스튜로 이 나라의 전통 음식인 ‘구야쉬’에서 유래했다. 이 음식은 양치기가 먹던 음식에서 유래했으며, 굴라시란 단어가 ‘목동’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육개장처럼 보이지만 쇠고기, 양파, 감자, 파프리카를 넣은 쇠고기 채소 스튜이다. 그래서 그런지 생각보다 매운맛은 강하지 않았다. 주변 국가들도 이 굴라시를 주로 먹는데, 각 나라만의 특색이 있다. 체코가 대표적이다. 부다페스트 여행을 하다가 어떠한 레스토랑에 가도 이 굴라시를 먹을 수 있는데, 후추 이외에는 특별히 향이 심한 향료는 들어가질 않아 어떠한 굴라시 메뉴를 시켜도 실패할 확률은 낮다. 여기에 버터를 바른 국수나 빵을 찍어 먹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