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영화에서 막 빠져나온 것 같은, 파리 중심부의 면적과 같은 크기의 16세기 프랑스 샤토가 200년 만에 처음으로 와인을 생산할 예정이다.
샤토 드 샹보르의 규모를 정확히 글로 전달하기는 어렵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대지는 파리 중심부 면적과 같다. 5,400헥타르의 땅이 32km에 달하는 담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유럽에서 가장 넓은 담이 둘러진 공원인 동시에 프랑스에서 가장 긴 담장이 된다.
지금 나는 이곳에서도 오르메트루라고 불리는 지점의 담장 그늘 아래 서있다. 이곳은 1786년 당시 지도에 의하면 작은 농장이 있던 자리다. 여기에 13헥타르의 포도밭이 있는데 아직 4년밖에 안 되어서 조금 제멋대로 자라난 듯 보인다. 첫 번째 진짜 수확이 끝나고 잎이 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중 30%가 올해 초 기온이 영하 8도까지 떨어졌을 당시 서리에 상해 버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포도밭의 전경이 그 아쉬움을 보완하고도 남는다.
포도밭에서 시선을 떼어 서너 곳의 거대한 목초지를 지나면 샤토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뾰족뾰족한 첨탑과 탑들은 콘스탄티노플의 스카이라인을 닮도록 지어진 것이 분명하고, 아마도 프랑스 혁명 이전시대에 귀족 숙녀들은 이곳에서 귀족 남자들이 사냥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프랑수아 1세도 검 하나만 들고 멧돼지와 싸우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이곳에는 아직도 500마리가 넘는 사슴은 물론 무수히 많은 날짐승, 멧돼지, 토끼, 양들이 돌아다닌다.
포도나무 주변으로는 울타리가 설치되어있다. 지금 상태가 좋지 않더라도 이 포도나무들은 보호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 중 족히 4헥타르가 로모랑탱 품종이다. 이것은 1519년부터 샹보르의 건설을 감독했던 16세기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가 좋아했던 품종인 동시에 프랑스 전체를 통틀어 71헥타르밖에 재배되지 않는 품종이다.
그런데 이 품종은 이러한 사실 외에도 특이한 점이 또 있다. 바로 접목시키지 않은 순수 ‘비티스 비니페라’라는 사실. 접목시키지 않은 로모랑탱 포도의 역사는 18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나무 중 일부를 소유한 것으로 유명한 도멘 드 라 샤르무아즈의 마리오네트 가문이 전해준 필록세라 이전의 가지에서 나온 것이다.
로모랑탱 말고도 루르부에(L’Ourboue, 메누 피노라고도 알려진, 프랑수아 1세가 좋아한 또 다른 품종이다), 피노 누아의 이 지역 이름인 오베르나 루즈, 소비뇽 블랑, 가메가 있다.
이것들이 합쳐져 프랑스 혁명 이후 샹보르에서 처음으로 심은 포도밭을 형성하고 있고, 이 샤토의 건설 500주년이 되는 2019년에 공식적으로 판매가 시작될 것이다. 현재 와인은 예전에 담배 헛간으로 쓰던 곳에서 만들고 있는데 건축가 장-미셸 윌모트가 설계 중인 와이너리가 2020년에 문을 열 예정이다. (그는 여러 유명 와인 프로젝트를 포함해 포이약의 샤토 페데스클로를 설계한 바 있다)
이곳은 루아르 중에서도 솔로뉴 지역에 해당한다. 샹보르 담장 바로 너머는 바로 프랑스의 로모랑탱 품종 나머지 전부가 재배되고 있는 셰베르니와 쿠르 셰베르니 아펠라시옹이다.
샹보르는 아직 그곳에 포함되지 못했다. AOC 규정이 만들어지던 당시 이곳에서 포도 재배는 먼 기억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9년에는 아펠라시옹에 포함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2018년 첫 수확의 경우에는 레드는 IGP 발 드 루아르, 화이트는 뱅 드 프랑스로 라벨링 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는 샹보르의 문화 유산 일부를 되찾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에스테이트의 소득도 얻기 위함이기도 하지요.” 이곳 디렉터 파스칼 테바르가 내게 말해주었다.
“우리는 품질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 숲에서 채취하여 만든 오크 배럴도 일부 사용할 것이고, 재배는 오로지 유기농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포도나무를 1헥타르 더 심을 예정이고 바라건대 궁극적으로는 5만 병 정도를 생산하여 전량 이곳에서만 직접 판매할 것입니다. 이곳을 찾아오는 고객은 포도나무 한 그루를 자기 것으로 삼고 우리의 프로젝트를 지지하는 대가로 와인 구입 우선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샹보르는 1981년에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고 1932년부터는 프랑스 정부 소유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 이곳에는 50곳의 작은 농장들이 있었고 다른 작물 말고도 개인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각각 포도나무 구획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중농주의의 부흥으로 샹보르를 나라의 농업 발전의 시험장으로 사용하게 된 뒤에야 정식으로 포도밭이 운영되기 시작했고, 오베르나 루즈 재배지 6헥타르를 두고 토지 관리자가 소작인과 대화를 나눈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시기가 1787년이었고 바로 2년 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면서 샤토는 약탈당하고 포도밭은 우선순위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1817년의 자산 기록을 보면 과실나무 가까운 곳과 외벽 쪽으로 포도나무가 심어지기 시작했다고 나오지만 샹보르의 주인이 바뀌면서 포도밭이 버려지고 이내 황폐해지면서 포도나무가 완전히 사라졌다.
“사실 샹보르에 로모랑탱이 재배되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본에서 로모랑탱 나무 8만 그루를 구입하고 프랑수아 1세 앞으로 청구서가 발행된 기록이 왕의 수송, 식사, 숙박 비용과 함께 남아 있고 그가 루아르에 그 나무를 심을 것을 명한 것도 알고 있습니다.” 테바르가 말했다.
지금까지 내가 맛본 바로 와인 자체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접목되지 않은 1850년 이전 포도나무의 즙을 맛보고 흥분하지 않는다면 참으로 비정한 사람이겠지만 분명 아직 완성작은 아니다.
화이트 와인이 어떤 맛이 날지 대략 느껴보기 위해 뤽 페르셰의 레피쿠르슈아 한 병을 샀는데(그가 메누 피노와 소비뇽으로 셰베르니 블랑 블렌딩도 만든다) 정말 좋았다. 물론 그의 100% 로모랑탱은 맛보지 않았지만 말이다.
문제는 하나 더 있다. 잭 다니엘 위스키 생산자와의 법적 공방이다. 같은 이름의 리큐르를 생산하고 있는 그들이 이 샤토에 그 이름 사용권을 쓰지 못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바르는 “합의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고 우리는 그가 옳을 것이라고 믿어야만 한다. 새로운 와인 출시에 숙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와인이 그렇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