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홍보를 해도,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를 헷갈리는 세계인들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이를 바로잡을 아이디어가 관광상품으로 나오기도 한다. 움밧 Wonbat은 호주와 몇몇 섬에서만 서식하는 희귀 초식동물이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상징인 움밧은 곰같이 생긴 동물로 캥거루처럼 새끼를 기른다. 그래서 이 동물을 캥거루와 혼돈하다고 한다(물론 이 동물은 캥거루 목에 속한다.). 이곳은 오스트리아 빈. 관광상품을 파는 상점 앞에 움밧의 모형물이 서 있다. 실제로 상점 안에는 움밧을 캐릭터한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인근에 유명한 움밧 호스텔도 있다. 아무튼,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아이러니하다.
[사진 001] 빈의 거리에서 심심치 않게 보이는 움밧 모형물.
유럽의 그 많은 도시 가운데 ‘음악의 도시’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은 바로 빈이다. 누구도 이 수식어에 토를 달지 않는 것은 과거 수많은 음악가가 바로 빈에 모여들어 깊은 영감을 얻고 대작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차르트부터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요한 슈트라우스 등 클래식 음악의 거성들이 모두 빈을 사랑했다. 덕분에 빈은 1년 내내 각종 음악축제가 끊이지 않는다. 봄철에는 이웃 도시 프라하, 부다페스트와 더불어 ‘빈 봄 축제 Vienna Spring Festival’이 열리고, 그에 앞서 3월 말에는 정통 델타 블루스에서 록, 소울, R&B를 즐길 수 있는 ‘빈 블루스 스프링 Vienna Blues Spring’도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 또 5월 말에서 6월 초에는 쇤부른 궁전 뜰에서 열리는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세계의 음악 애호가들을 모이게 한다.
오스트리아 빈에 오면 오페라를 보는 건 필수 코스다. 빈 국립 오페라 하우스 Wiener Staatsoper는 파리 오페라 하우스, 밀라노 오페라 하우스와 함께 세계 3대 오페라 하우스 중에 하나다. 1869년에 완성되어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로 막을 올렸다. 정면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대계단과 샹들리에가 빛나는 로비, 진홍빛 객석, 황금빛으로 가장자리를 장식한 흰색 발코니 등이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오페라는 300유로 이상을 지급하고 좋은 자리에서 볼 수도 있지만, 20유로 이하로도 가능하다. 물론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보고 싶은 오페라를 검색하고 예약하면 좀 더 편하게 관람할 수 있다. 입석은 보통 공연 시작 2시간 전부터 여는데, 줄은 그 이전에 서 있는 게 좋다. 입석은 보통 5유로 이하이지만, 그만큼 육체적인 희생이 필요하다. 미리 줄 서 있는 시간에서 공연이 끝날 때까지 보통 5~6시간은 서 있어야 한다는… 그래도 기다린 보람은 몇 배 채우고 갈 터이니…
[사진 002] 빈 국립 오페라 하우스 Wiener Staatsoper
오페라 하우스에 진입하면, 쇼핑 1번지이자 슈테판 대성당과 이어진 거리, 케른트너 거리 Kerntner Strasse가 모습을 드러낸다. 오페라 하우스 건물을 기점으로 시작되는 이 거리는 그야말로 빈의 중심지다. 고급 부티크 매장부터 패스트푸드점 까지 여행 및 쇼핑하면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고, 고전과 현대가 교차하는 곳이기도 하다. 눈이 내린다. 그 눈이 녹지 않고 공간 족족마다 채워진다. 꾸미지 않아도 빛난 보석 같은 건축물에 조명이 달린다. 위풍당당한 성당 하나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케른트너 거리를 걷다 보면, 저만치에서 웅장한 그 무언가가 서서히 다가온다. 쇼핑에 눈이 멀다가도, 이 건축물에 다다르면 감탄을 금치 못한다. 슈테판 대성당 Stephan Cathedral은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양식 건물로서, 12세기 중엽 로마네스트 양식의 작은 교회가 건설된 것이 시초이며, 14세기에 합스부르크가의 루돌프 4세에 의해 고딕 양식의 대교회로 개축되었다, 성당 이름은 그리스도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된 성인(聖人) 슈테판에서 딴 것이다. 남탑의 높이는 137m이며, 이곳에 올라가면 빈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화려함의 정점을 찍는 것은 25만 개의 청색과 금색 벽돌로 만든 화려한 모자이크 지붕이다. 보헤미아 왕이 세웠던 ‘거인의 문’과 ‘이교도의 탑’도 남아 있다. 이 성당은 모차르트의 결혼식(1782)과 장례식(1791)이 치러진 곳이며, 빈 시민들은 매년 12월 31일 슈테판대성당 광장에 모여 새해를 맞는다. 상상해 본다. 내가 모차르트이고, 지금 맞이하는 건 새해라고 말이다.
[사진 003] 사람들이 슈테판 대성당 주위로 모인다.
일요일 아침, 빈 소년합창단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왕궁 안으로 들어갔다. 특별한 여행 책자가 없어서 순전히 블로그 검색만으로 그 위치를 찾느라 고생했다. 왕궁 자체가 넓으므로, 왕궁예배당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겨울 아침 7시의 공기는 너무 매서웠다. 우여곡절 끝이 왕궁예배당을 찾았고, 일정 돈을 지급하고 미사에 참석했다. 원래는 일요일 아침 8시 30분까지 가면 입석 현장구매가 가능하다고 했는데, 그 날은 판매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좌석을 구매하고 들어갔다. 대부분 사이트에서 예매하고 예배당에 온다. 가격은 좌석의 위치별로 다른데, 7~35유로 정도 한다. 미사는 매주 일요일 오전 9시 15분에 시작한다. 예배를 예매하고 본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지만, 난 얼른 소년들이 나오길 학수고대했다. 제사보다 잿밥에 관심이 더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사진 004] 왕궁 예배당의 입구
호프부르크에는 합스부르크가의 역사와 번영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1220년경에 세워진 최초의 성관을 중심으로 역대 군주들이 증축을 거듭해 각기 다른 양식의 왕궁이 되었다. 그 이유는 황제마다 자신이 거처하는 동안 세력을 과시하기 위함이다. 왕궁 내 건축물을 아름답고 웅장하게 보이도록 독특한 양식으로 지은 것이 특징인데, 이에 따라 예배당은 15세기 중반, 아말리엔호프·스탈부르크는 16세기, 레오폴트 저택은 17세기, 마리아테레지아 저택, 황실사무처, 스페인 승마학교, 세계 최대의 그래픽아트 미술관인 알베르티나 Albertina와 국립도서관은 18세기, 노이부르크 Neue Burg는 1914년에 조성되어 각각 서로 다른 다양한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현재는 박물관. 악기 박물관, 전쟁 박물관, 민속 박물관 등이 있다. 왕궁은 크게 16~18세기에 지어진 구왕궁과 19~20세기에 지어진 신왕궁으로 나누어지며, 신왕궁은 무기·악기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구왕궁에는 빈소년합창단이 일요예배 찬양을 하는 왕궁예배당을 비롯해 왕궁보물창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승마학교인 스페인 승마학교 Spenisch Reitschule 등이 있다. 전 황제가 사용하던 방은 다음 황제가 사용하지 않는다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불문율 때문에 무려 2,600개나 되는 많은 방이 있고, 나폴레옹에게 대승을 거둔 카를 장군, 나폴레옹의 장인인 프란츠 2세(오스트리아 황제로는 프란츠 1세) 등의 기념상이 있다.
[사진 005] 눈에 쌓인 호프부르크 왕궁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좋아하는 작가인 구스타프 클림트. 특히 그의 대표적인 작품은 ‘키스 Kiss’. 그 원본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벨베데레 궁전 Schloss Belvedere이다. 이 궁전은 오스트리아 바로크 건축의 거장인 힐데브린트가 세웠다. 당시 빈의 세력가였던 오이겐 폰 사보이 공이 이 건물을 소유하고 상궁과 하궁을 건설한 후 이 두 건물 사이에 프랑스식 정원을 펼쳐놨다. 봄, 여름에 오면 장관이다. 내가 갔던 때가 겨울이라 정원이 좀 황량하긴 했다. 오이겐 공이 죽은 뒤 합스부르크가에서 궁을 사들여 미술 수집품을 보관하였다. 현재 상궁은 19, 20세기 회화관, 하궁은 바로크 미술관인 오스트리아 미술관이 되었다. 입장료는 상궁과 하궁을 같이 볼 수 있는 티켓과 따로 볼 수 있는 것으로 나뉘어 있다.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작품이 있는 상궁의 인기가 더 많은 게 사실이다. 궁전 앞에 있는 연못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예술 작품이 나온다. 이곳은 트램 D번을 타서 벨베데레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 물론 시내에서 도보로 15분 정도로 찾아가도 된다.
[사진 006]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벨베데레 궁전.
클림트의 ‘키스’가 있는 전시관은 경비가 삼엄하다. 물론 미술관 안에서의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는데, 그 전시관은 작품 옆에 항상 시큐리티가 서 있다. 비수기에 간 터라, 관람객이 거의 없어서 클림트 ‘키스’ 앞에서 10분 동안 그의 붓 터치 하나하나를 감상했다. 뭐 내가 미술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저 눈으로 읽어가면 그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클림트에 대해 더 관심이 있다면, 클림트가 1912년부터 191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던 클림트 빌라 Klimt Villa Wien을 찾아가면 된다. 이곳은 당시의 사진을 참고해 방의 모양과 가구 등을 재현해 놓았다고 한다.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난방설비뿐이다. 클림트는 햇볕이 들지 않는 북쪽을 아틀리에로 사용했다. 그의 그림은 빛이 나지만, 그 안의 정서는 차갑게 느껴진다.
[사진 007] 벨베데레 궁전의 상궁과 하궁 사이에 있는 프랑스식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