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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보슬 비 오는 날 느껴보는 미네랄리티

보슬보슬 비 오는 날 느껴보는 미네랄리티

Rachael Lee 2020년 5월 26일

봄비가 내린다. 적당히 보슬보슬 비 오는 날에는 빗길을 살짝 걷고 싶어진다. 흙냄새나 풀냄새도 함께 맡을 수 있는 뒷동산이나 연못에 가면 더 좋겠다.

전 세계에 370명 밖에 없다는 Master of Wine (MW)이 진행하는 시음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와인의 Minerality가 무엇이죠? 정확히 어떤 향인가요”라는 한 참석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비 오는 날, 비가 조금씩 그쳐갈 때 길을 걸어 보세요. 땅 위에 올라오는 그 향기, 비와 흙내가 섞여 맡을 수 있는 그 향. 비 오는 날 길을 걸을 때의 그 느낌, 그게 ‘미네랄리티’에요.”

그때만 해도 미네랄리티는 약간의 짭짤(salty & savory) 정도로 단편적으로 인지하고 있던 필자에게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는 참 적절한 표현이었다. 그 설명을 듣고 나서 글라스에 조금 남은 비오니에 와인 한 모금을 머금었을 때, 비 내리는 날 길을 사뿐사뿐 걷고 있는 나를 연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난 아직도 비 오는 날 장화에 우비를 갖춰 입고 미네랄리티 그윽한 화이트 와인 한잔 마시는 기분으로 길을 걷는 걸 좋아한다.

사진 출처: Shutterstock

미네랄리티의 아로마를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면, 맛에 대한 표현은?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연상은 대학생으로 처음 유럽 여행 갔을 때, 미네랄 워터를 사 마셨던 느낌. (이때만 해도 물을 돈 주고 사 먹는다는 건 상당한 문화적 충격이었던 90년대다.) 보리차나 끓인 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상큼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생수의 맛. 처음으로 돈 주고 사 마신 잊을 수 없는 그 물 한 모금, 그 첫 느낌이 와인에서 미네랄리티를 느낄 때 연상되곤 한다. 상당히 유사한 맛이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네랄리티는 와인에 포함되어 있는 미네랄(무기질)적 요소를 지칭하는 것이지만, 그 향과 맛은 정확히 규정하기 어렵다. 실제로 와인의 미네랄리티는 명확한 정의가 존재하지 않고, 와인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용어이기도 하다. WSET(Wine & Spirits Education Trust)의 Systemic Approach to Tasting Wine에서 Minerality의 요소는 earth, petrol, rubber, tar, stony, steely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 용어의 사전적 의미를 보자면 – 흙맛, 석유맛, 고무맛, 타르맛, 돌맛, 철맛 등 – 썩 유쾌한 풍미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와인에 있어 미네랄리티 요소는 좋은 와인이 갖춰야 할 요소로 점점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림 출처: www.FT.com © Graham Roumieu

“포도밭 토양에 함유된 칼슘, 마그네슘과 같은 무기질이 포도나무 뿌리를 통해 흡수되고, 포도 열매로 전달되어, 와인의 풍미에 영향을 준다. 이것이 미네랄리티이다.” 진실 혹은 거짓?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과학적으로는 전혀 검증되지 못한 사실이다. (지질학자인 Alex Maltman은 ‘Vineyards, Rocks, and Soils’ 이라는 책에서 포도밭 토양과 포도나무의 상호작용에 대해 규명하고, 와인에서 토양이 함유한 미네랄을 맛보는 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it’s not possible for us to taste minerals from the soil when we drink wine.”)

하지만, 와인 테이스팅을 통해 각 와인 산지의 토질 특성과 연관하여 미네랄리티 요소를 평가해 보자면, 필자는 분명 와인 산지 토양의 요소가 와인에 반영된 게 미네랄리티라고 믿고 있다. 실제 와인에 포함된 미네랄 성분은 리터당 1.5그램~4그램으로 와인마다 함량 차이가 있으며, 구세계 와인 산지의 토양에 대해 많은 지질학자들이 연구, 분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샤블리(Chablis) 와인은 키메르지안 토양(Kimmeridgian soil)의 미네랄 성분이 샤블리 와인의 미네랄리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기도 하다.

Minerality-driven wine으로 알려진, 굴/성게알 같은 해산물과의 궁합이 좋은 Chablis 와인

대중적으로 많이 언급되고 있는 ‘단짠’의 조화도 와인의 미네랄리티를 설명할 때 도움이 되는 표현이다. 포도라는 과일로 만든 알코올 음료인 와인은 과일의 풍미만 갖춘 게 아니라, 과실적 풍미에 추가로 짠맛이 느껴진다. 단맛과 짠맛을 함께 가진 와인은 밸런스를 갖춘 와인, 마시기 좋은(drinkable) 와인이기도 하다. Master of Wine인 Olivier Humbrecht은 아래와 같이 미네랄리티에 대해 설명해 준다.

“와인의 미네랄리티는 와인의 맛을 보다 짭짤하게 느끼게 만들어 주는 요소다. 산도나 타닌의 요소는 미네랄리티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 적절히 짠맛은 산도의 요소를 더 맛깔스럽게 만들어 주고, 와인 산도의 날카로움을 감소 시켜 준다. 좋은 미네랄리티란 적절한 짠맛으로 와인을 한 모금 더, 한잔 더 마시게 만들어 주는 요소다.”
“It is the fraction on the palate that makes the wine taste more saline or salty. High acids or high tannins do not mean that the wine has lots of minerality. High salt contents make the acidity more ‘savoury’ and therefore less aggressive. Good minerality makes one salivate and want to have another sip or glass or bottle.” (by Olivier Humbrecht)

종종 와인에서 정말 그 향이, 그 아로마가 나는지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쉬운 과실 향도 그 향을 많이 맡아보고 익숙해지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딸기나 블랙베리는 일 년 내내 먹는 과일도 아니고, 과일을 먹으며 일일이 향을 맡아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와인의 아로마를 알려면, 풍미를 이해하려면, 아로마 대상 물질을 많이 맡아보고 익숙해져야 한다. 미네랄 향? 그 정체를 모른다면, 나 스스로 연상시키는 요소가 없다면, 어떻게 이 와인은 미네랄리티 느낌이 있네요, 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MW의 ‘비 오는 날의 미네랄리티 향’ 표현 덕분에 일상에서 와인의 풍미를 발굴(?)하고, 유사성을 찾는 경험치를 많이 쌓고자 한다. 비 오는 날 촉촉이 젖은 땅에서, 항상 그날 테이스팅했던 비오니에(Viognier)와인의 미네랄리티를 연상하게 되는 건 습관처럼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 같다.

향이라는 건 항상 어떠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Marcel Proust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에서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을 머금는 순간 유년의 기억을 환기하는 유명한 에피소드에서 비롯된 프루스트 효과(Proust Effect)란 용어가 있듯이. 미네랄리티 뿐만이 아니다. 푸릇푸릇 풀밭에서는 허브, 민트와 같은 아로마를 충분히 찾을 수 있고, 요즘처럼 봄꽃이 많이 핀 야외에서는 흰 꽃향을 풍부히 느낄 수 있다. 또는 아카시아 나무 아래서 느낀 꿀 향기를 기억하고 와인을 마시면 그 꿀 향을 느낄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후각과 미각을 마비시키는 증상이 있다는 기사를 보았을 때, 참으로 끔찍하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의 오감인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중 시각, 후각, 미각을 절대적으로 충족시켜줄 수 있는 게 와인이다. 요즘처럼 이 잔인한 바이러스가 많은 인간 활동을 제약할 때,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 자연에서, 소소한 매개체에서 와인이 가진 요소를 발견하고, 그 기억을 오래 가져갈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참고자료]
– Adams, Paul. Seven Fifty Daily. “Understanding Perceived Minerality in Wine.” <https://daily.sevenfifty.com/understanding-perceived-minerality-in-wine/>
– Goode, Jamie. “Rescuing minerality.” Wineanorak. Global Wine Journal. <https://www.wineanorak.com/mineralityandterroirinwine.htm>
– “What does “minerality” mean in a wine’s flavor profile? Aren’t minerals flavorless?” Wine Spectator. <https://www.winespectator.com/articles/what-does-minerality-mean-in-a-wines-flavor-profile-arent-minerals-flavorless-49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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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chael Lee

Life, world, contemplation, and talk through a glass of wine 여행과 예술을 사랑하는 프리랜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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