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제가 가장 아끼는 곳을 소개할 차례입니다. 날씨 좋은 날 바람 쐬러 가기에도 좋고,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곳에서 무심코 걷고 싶은 날 도보로 당도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점도 황홀합니다.
다름 아닌, 젊음의 거리 ‘우다커우(五道口)’입니다.
‘슈에위엔루(學院路, 학원로)’라고도 불리고, ‘청푸루(成付路, 성부로)’라고도 불립니다. 모두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지역이기 때문에, 거리 이름에서부터 ‘푸름’이 느껴져 좋습니다.
인근에 베이징 대학, 칭화대, 인민대 등 유수의 대학이 있고, 그 만큼 전세계에서 찾아온 피부색 다른 청춘들이 모두 친구가 되는 그런 동네죠.
그런데, 더 좋은 점은 이곳이 베이징에서 한국인들이 많이 살기로 소문난 제2의 한인타운이라는 점입니다.
거리마다 우리말로 대화를 나누는 이들이 오고가고, 상점 내부에서는 한국의 유행가가 울려퍼지는, 고향의 향취를 느끼기에도 좋고, 한국이 그리워 질 때, 찾아가 위로를 받기에도 제격입니다.
뿐만 아니라, 각지에서 모여든 젊은이들 덕분에 이 곳에서는 최신 유행 패션을 몸에 치장한 이들을 쉽게 만나 볼 수 있는데, 때문에 인근에는 고급 헤어 살롱들이 줄을 이어 자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헤어 살롱의 수가 상당해서, 외국에 살며 미용실을 찾아 자신의 머리를 쉽게 맡기길 꺼려지는 여행객들에게도 안심하고 추천할 수 있는 미용실이 상당합니다.
하지만, 고급스런 외관과 실력자로 불리는 디자이너 선생님에게 헤어 시술을 받기 위해서는 다소 고가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60~100위안 정도에서 컷팅을 받을 수 있고, 파마나 염색 등은 300~1000위안 까지 상당한 고가를 지불해야 하죠. 대학교 캠퍼스 내에서 운영하거나, 골목, 골목 마다 자리한 동네 미용실(美发厅)에서는 8~12위안만 지불하면 컷팅부터 시원한 샴푸까지 받을 수 있는 것과 비교해도 엄청난 금액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인근에는 젊은이들을 겨냥한 최신 유행 상품을 판매하는 유명 백화점 화리부터 한국 동대문에서 공수됐다는 물건들을 진열해놓고 판매하는 ‘복장시장(服裝市場)’, 네일 패티 큐어를 저렴한 비용에 받을 수 있는 네일 아트 샵들이 즐비한 거리까지 패션에 관해서라면 무엇 하나 빠짐없이 ‘누리고, 즐길 수 있는’ 동네 인것이 틀림 없습니다.
인근 지역 상점에 근무하는 헤어디자이너와 상점 직원들에게는 한국은 언제나 코리안 드림을 꿈꿀 수 있는 곳으로 보여지는 듯 합니다.
단골로 다니는 미용실에 근무하는 정 씨는 종종 한국에서 미용사로 일하는 것에 대한 전망을 제게 묻곤 합니다. 한국에 한 번도 다녀온 적이 없다는 그의 질문 속의 우리나라는 ‘무릉도원(武陵桃源)’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저는 정작 그의 질문에 대한 긴 이야기는 하려다 말고, 오히려 그의 고향과 그에 대한 궁금증을 쏟아냈습니다.
베이징에서 남쪽으로 200km 거리에 떨어져 있는 허베이(河北)를 고향으로 둔 이 청년의 나이는 올해 21세인데, 그는 이곳 미용실에서 근무하기 이전 처음 베이징에 왔을 때 고향 선배라는 남성에게 소개받은 핸드폰 수리점에서 수리공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습니다. 그 때 그는 왼쪽 네 번째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입었습니다.
그 후 벌이가 상대적으로 더 좋고, 업무가 단순하다고 알려진 미용사가 되기 위해 지금의 미용실에 취업할 수 있게 됐는데, 현재 그는 미용실을 찾아오는 손님들의 옷을 보관함에 담는 것부터,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잔해들을 치우는 일까지 미용실에서 가장 허드렛일로 여겨질 법한 잔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전문 헤어디자이너가 손님의 머리를 시술하고 있으면, 그때마다 한 옆으로 서서 그 장면을 가만히 두 눈에 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대견한 감정과 아련한 감정이 동시에 떠올라, 안간힘을 다하여 저의 얄팍한 감정을 있는 힘껏 눌러 담아야 했음을 고백합니다.
아마도 멀고 먼 고향을 떠나, 녹록치 않은 형편에도 그저 열심히 꿈을 키우고 있는 그의 사연을 제가 알고 있는 탓에, 저의 지레 짐작으로 그의 일거수를 눈 여겨 보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한때, 도시의 삶에 지칠 대로 지쳤다며 서울을 떠났던 그 무렵의 저와 지금 이곳 미용실 바닥을 청소하고 있는 정씨의 삶이 순간적으로 오버랩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삶이 경제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또 사회적으로든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한 그 날이 언제라도 반드시 도래할 것이라는 믿음만은 확실히 하고 싶었던 순간입니다.
그의 사연을 뒤로 하고, 우다커우 거리를 걷다보면, 거리 곳곳에는 눈 요기를 할 수 있는 것 외에도 입을 즐겁게 해줄 먹을거리도 풍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798즉석떡볶이’, ‘화로화 떡볶이’, ‘김삿갓 닭갈비’, ‘코코닭’, ‘나나네 김밥’, ‘대학로 김밥’ 등 셀 수 없이 많은 한글 간판들이 거리마다 줄을 잇고 있죠.
더욱이 최근에는 중국에 방영된 한국 드라마의 영향으로 치킨을 파는 치킨 전문점과 즉석 떡볶이를 판매하는 식당, 한국식 김밥을 즉석에서 말아 주는 노점상 아주머니는 물론, 한 겨울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붕어빵도 맛볼 수 있죠. 가격은 한국과 비교해 약 2배 가량 더 비싸고, 맛은 한국의 것을 모방한 차원에 불과하지만, 한국에서의 추억을 구입해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한국인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는 곳이죠.
그런데, 지난 10여년 전과 비교해 이곳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수는 크게 줄어든 것이 사실입니다. 바로 베이징의 치솟는 부동산 가격 탓인데요, 전세 개념이 없는 중국에서 한 달 월세 비용만 약 7000~2만 위안(약 126만원~360만원)까지 지불해야 한다는 점에서 번화한 우다코우 인근을 떠나 순의(順義), 칭펑(昌平) 등 외곽 지역으로 떠나는 젊은이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지난 10여년 전 처음 베이징에 여행 왔을 당시, 중국 돈 1위안이 우리 돈 100원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무려 1위안에 180원까지 중국 돈의 가치가 올랐으니, 도심 한 복판에서 거주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울 만도 하죠.
그럼에도 중국 내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은 물론, 긴 여행으로 고국이 그리워 질 때면 찾아가 우리말과 우리의 맛, 우리나라 사람들과 광활한 도시 베이징의 한 켠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장소 임에 틀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