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날, 뿌리의 날, 잎의 날, 과일의 날. 달의 움직임과 별자리에 따라 날마다 붙여진 이름이 있고, 같은 와인이라도 매일 와인 맛이 달라진다면 어떨까? ‘땅, 물, 바람, 물’이라는 속성이 ‘날(日)’의 이름을 정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엔 ‘땅 불 바람 물 마음 다섯까지 힘을 하나로 모으면 캡틴 플래닛 캡틴 플래닛-” 하는 만화영화를 떠올렸다. 대체 별자리와 달의 움직임이 와인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얼핏 점성술이나 미신 같은 이야기 같다. 하지만 이것은 바로 바이오다이내믹(Biodyanmic)이 주장하는 바다. 부르고뉴의 생산자들도 열광한다는 바로 그, 바이오다이내믹.
땅 불 바람 물 마음 다섯 가지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해서 지구특공대 반지를 모았던 기억이 난다. ‘마음’ 반지는 특히 구하기 어려워 그걸 가진 친구는 단연 인기가 최고였는데, 믿었던 짝꿍이 다른 여자애에게 반지를 줘서 배신감에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내 나이 다섯 살. 처음 남자 때문에 울었나 보다. 실은 이런 생각을 하며 ‘When Wine’이라는 어플을 다운로드했다. 바로 위의 ‘날(日)’들을 알려주는 달력이다. 불의 속성을 가진 별자리- 사자자리, 양자리, 사수자리가 놓인 날이 바로 과일의 날(Fruit Day), 와인이 가장 맛있는 날이다. 달력을 참고하면 이번 달, 이번 주, 어떤 날이 와인을 가장 마시기 좋은 날인지 알 수 있다. 그것도 시간 단위로. 약 6개월 정도 이 달력을 참고했다. 하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가장 와인이 맛이 없다는 뿌리의 날(Root Day)에도 와인은 늘 맛있었으니까. 매달 잡지의 별자리 운세를 탐독하고 ‘행운의 날’과 ‘행운의 컬러’ 따위를 외워두는 나지만, 와인과 별자리를 엮는 건 여전히 어색하다. – 정말 와인 맛이 달라지는지, 나보다 더 오랜 실험을 해본 분이 있다면, 메일을 부탁한다.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 와인 중 ‘오가닉 와인’과 ‘바이오다이내믹’을 헷갈려 한다. 둘의 뿌리는 같으나, 그 농법과 용법, 철학과 우주관은 현저히 다르다. 시작은 1924년 오스트리아 철학자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였다. ‘영적인 기초를 통한 농업의 부활’이라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강의에서 ‘바이오다이내믹(Biodynamic)’이란 개념이 시작됐다. 이후 1940년 영국 옥스퍼드의 한 농학자가 ‘오가닉(Organic)’이란 단어를 처음 사용했는데, 이것은 루돌프 슈타이너의 강의에서 언급된 ‘하나의 유기체로서의 농장(The farm as organism)’이란 말에서 착안한 것이다. 즉, 바이오다이내믹과 오가닉은 역사적 뿌리를 함께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바이오다이내믹은 오가닉에 비해 엄격한 농법과 용법, 그리고 높은 차원의 철학을 요구한다. ‘오가닉 와인’의 정의는 앞선 기사 ‘친환경 와인의 눈부신 성장과 오가닉 와인’을 참고하길 바란다. 바이오다이내믹의 기본 개념은 ‘농장은 자생 가능한 폐쇄된 유기체’라는 것이다. 외부와 단절되어도, 와이너리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완벽한 생태계가 되는게 바이오다이내믹의 목표다. 때문에 바이오다이내믹은 외부에서 구입한 친환경 비료는 권하지 않는다. 직접 소와 가축을 키워 거름을 만들고, 포도 이외에 풀, 나무 등 식물을 심어 재료를 얻는다. 벌레와 바이러스 같은 ‘병충해’도 약을 쳐서 없애지 않는다. 토양이 건강하면 알아서 이겨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직접 만든 거름과 비료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 해충을 잡아먹는 익충 번식을 장려하여 자연스러운 생태계 균형을 맞춘다.
바이오다이내믹 와이너리의 풍경은 색다르다. 가축도 키우고, 말이 포도밭을 갈며, 포도나무 사이에는 군데군데 다양한 식물이 심어져 있다. 해충과 익충이 공존하고, 생태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생물이 살고있다. 단순히 화학적 농약 사용을 금지하고 친환경 재료를 사용하는 오가닉 농법보다 높은 차원의 것이다.
바이오다이내믹은 꼭 사용해야 하는 9가지 재래적 비료가 있다. 한편으로는 ‘미신적이다’ ‘민간요법이다’ ‘토속적이다’와 같은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바이오다이내믹 인증을 위해서는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 바이오다이내믹 생산자들은 이 비료를 사용한 후, 토양과 포도가 몰라보게 건강해졌다고 말한다. 짐짓 경건하게, 마치 신앙적 고백을 하듯,본인이 목격한 기적과도 같은 변화를 이야기한다. 재래적 비료는 예컨대 소의 뿔에 소의 거름을 넣고 땅에 묻어 겨울을 지내 삭힌 것을 토양에 살포하는 등의 것이다. 이 경우, 반드시 가을에 땅에 묻어, 비료가 겨울의 기운을 받게 해야 한다. 카모마일, 서양풀톱, 민들레, 쐐기풀 등 식물 등도 사용하는데, 재료들을 동물의 해골, 소의 창자 등에 넣고 땅에 묻어 숙성한다. 특정 비료는 제조해야 하는 특정 계절이 있기도 하고, 살포해야 하는 특정 날이 있기도 하다. 모두 별자리의 움직임과 우주 리듬에 따른 것이다.
바이오다이내믹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철학적 그리고 우주적 믿음이다. 바이오다이내믹은 우주적 힘, 달과 별의 움직임, 자연의 생태 리듬이, 지구상 모든 생물에 영향을 준다고 믿는다. 그래서 자연의 리듬에 따라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그것을 달력으로 만든 것이 바로 ‘뿌리의 날(root day)’ ‘꽃의 날(Flower day)’ ‘과일의 날(Fruit Days)’ ‘잎의 날(Leaf Day)’과 같은 것이다. 과일의 날에 농사를 시작하고, 뿌리의 날에 가지치기를 하고, 꽃의 날에 농사를 쉬고, 잎의 날에 포도에 물을 준다. 비료와 거름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살포하는 것까지 모두 이 ‘리듬’에 근거한다.
바이오다이내믹 생산자로 가장 유명한 니콜라스 졸리(Nicolas Joly)를 비롯 열정적인 바이오다이내믹 와인 생산자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말한다. 바이오다이내믹을 사용한 이후 토양이 눈에 띄게 건강하고 비옥해졌으며, 포도 생산량은 현격히 줄었지만 더욱 농축된 포도를 생산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결국, 바이오다이내믹으로 만든 와인은 더욱 순수하고, 토양을 여실히 반영한다는 것이다.
땅 불 바람 물 마음, 다섯 가지를 모아할 수 있는 건 ‘캡틴 플래닛’을 불러 지구를 지키는 일 뿐만은 아니다. 땅 불 바람 물 마음이 있어야 와인을 만들 수 있다. 천지인(天地人)의 개념이다. 자연과 인간의 마음을 합해야 비로소 순수한 와인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점성술’ ‘우주의 힘’과 같은 비과학적인 용어가 등장하고, ‘소의 창자’ ‘동물의 뼈’ 등을 비료를 만드는데 사용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많다. 하지만 적어도, 바이오다이내믹 생산자들이 추구하는 ‘토양을 여실히 반영한 순수한 와인’, ‘자연과 공존하는 와이너리’, ‘생태계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농업’이란 목표는 동의할만한 것 아닐까?
하지만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여실히 소비자의 몫이다. 정말 와인이 특별히 맛있는 날이 있을까? 바이오다이내믹 와인은 훨씬 순수하고 토양을 잘 반영할까?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호기심과 의구심을 가진 채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바이오다이내믹 와인을 마셔보고 싶다면 Demeter 로고를 확인하면 된다. Demeter는 유럽에서 1927년에 만들어진 오래된 조직으로, 바이오다이내믹 와인을 인증하는 유일한 기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