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와인을 논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한 가문이 있다. 미국 와인의 역사 그 자체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는, 지금의 미국 와인이 누리는 명성의 탄탄한 초석을 세운 몬다비 패밀리(Mondavi Family)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은 이 가문의 스토리는 이제 팀 몬다비(Tim Mondavi)에 의해 제2막이 시작되고 있다.
몬다비 패밀리가 처음 와인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은 1919년, 체사레 몬다비(Cesare Mondavi)에 의해서다. 성공한 이탈리아 이민자인 그는 아내와 함께 자가 양조로 와인을 양조했다. 1920년, 금주법 시행으로 종교적인 목적과 의료용 와인을 제외한 모든 알코올음료의 상업적인 제조와 판매가 금지되었는데, 미국 와인 역사의 암흑기라 할 수 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나 금주법이 폐지되면서 몬다비 패밀리는 나파 밸리의 써니 세인트 헬레나(Sunny Saint Helena) 와이너리의 일부 소유권을 확보하여 상업적인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1943년에는 찰스 크룩 (Charles Krug) 와이너리를 인수한다. 이는 1861년 나파밸리 최초로 설립된 오랜 역사를 가진 와이너리로, 체사레 몬다비가 로버트와 피터, 그의 두 아들과 함께 프리미엄 와인 생산을 시작한 곳이다.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 ‘미국 와인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가 등장한다. 몬다비 패밀리의 사업은 순항했으나 로버트와 피터, 두 형제의 잦은 다툼은 결국 결별로 이어졌다. 1966년, 로버트는 세계적인 와인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오크빌(Oakville)에 자신만의 첫 와이너리를 설립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미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와이너리가 되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을 지금의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려놓은 로버트 몬다비의 혁신적인 행보는 너무나 유명하다. 온도조절 가능한 스테인리스스틸 탱크 등 최신 설비를 나파밸리에 최초로 들여왔으며, 고품질 와인 숙성을 위해 프랑스산 작은 오크통을 사용하고, 화이트 와인의 품질 개선을 위해 저온 발효를 시도했다. 또한, 세계 최초로 와이너리 투어를 도입하고, 레이블에 포도 품종을 표시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선도했으며, 여러 세계적인 와이너리와 합작하여 오퍼스 원(Opus One), 루체(Luce), 세냐(Seña) 등과 같은 명품을 탄생시켰다. 이외에도 오크통 숙성한 소비뇽 블랑으로 퓌메 블랑(Fumé Blanc)이라는 새로운 와인 스타일로 만들었으며, NASA와 함께 포도나무 해충과 역병을 연구하거나 환경친화적인 병을 디자인하는 등 환경을 생각하는 운동도 활발히 진행했다.
이처럼 모두 나열하기에 벅찰 정도로 많은 업적을 남긴 로버트 몬다비에게는 든든한 두 아들이 있었다. 장남인 마이클(Micheal Mondavi)은 마케팅과 세일즈를 담당했고, 팀(Tim Mondavi)은 양조 팀을 30년 이상 이끌며 모든 고급 라인의 양조를 직접 맡았으며, 해외 합작법인 프로젝트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와이너리 최초로 나스닥에 상장하며 승승장구하던 로버트 몬다비에게 큰 위기가 찾아온다. 2004년, 집안 분쟁과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구조조정을 하게 되고, 몬다비 패밀리의 주식 보유율이 떨어지면서 대주주의 자리에서 밀려나게 된다. 그리고 결국 세계 최대 주류기업인 컨스텔레이션 브랜드(Constellation Brands)에 매각된다. 2008년 9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로버트 몬다비는 동생과의 결별과 주식 상장과 같은 과한 욕심을 부린 것을 살면서 가장 후회한다는 말을 남겼다.
One Purpose, One Wine, One Estate, One Family
2005년, 몬다비 패밀리 이야기의 제2막이 열린다.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가 매각된 이후, 팀과 여동생 마샤(Marcia)를 포함한 가족 구성원 전원은 새로운 와이너리를 설립한다. 하지만 프리미엄 와인 생산을 중요시한 팀과는 달리 보급형 와인에 비중을 두고자 했던 그의 형, 마이클은 함께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자신들의 와인에 몬다비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었기에, 가문의 전통과 유산을 이어받는다는 의미의 컨티뉴엄(Continuum; 계승)이라 명명했다.
팀은 ‘단 하나의 포도밭에서 만들어지는 단 하나의 와인’을 컨셉으로 특급 프리미엄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세계적인 와인 전문지인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의 2011년 11월호 커버 스토리는 ‘팀 몬다비의 귀환’으로 장식되었다. 팀의 아버지인 로버트 몬다비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와이너리를 설립한 나이가 53세였고, 팀이 컨티뉴엄으로 새 출발한 나이도 53세다. 이에 몬다비 패밀리에게 53은 새 출발을 의미하는 숫자가 되었다.
위대한 와인은 위대한 땅에서 나온다는 강한 믿음을 가진 팀이 선택한 곳은 바카 산맥(Vaca Range)의 높은 곳에 위치한 세이지 마운틴 빈야드(Sage Mountain Vineyard)다. 마시자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훌륭한 와인 생산에 대한 잠재력이 매우 높은 이곳을 선택했습니다. 이곳의 토양은 1~1.5m의 깊이에 돌이 많은 붉은 화산토로 이뤄져 있어 자연적으로 에이커당 1~2.5톤의 낮은 수확량으로 포도나무의 활력을 제한합니다. 토양은 미네랄이 풍부하고, 해발고도가 400~520m로 적정한 기온을 유지하며, 샌프란시스코 만(San Francisco Bay)이 내려다 보이는 서쪽과 남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냉각 효과의 이점으로 와인이 신선함과 생동감을 유지할 수 있죠.”라고 설명했다.
2013년은 그에게 특별한 해다. 와이너리 건설이 완료되면서 에스테이트 포도밭의 포도만을 100% 사용하여 자신의 양조장에서 모든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팀 몬다비가 와인 메이킹을 시작한 지 40주년이자 로버트 몬다비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문득 그가 만들고자 하는 와인이 궁금했다. “저는 우리의 과거를 기리는 동시에 지금 우리가 가진 뛰어난 떼루아를 와인에 온전히 담기 위해 저의 48년 와인 양조 인생을 쏟고 있습니다. 최고의 와인을 생산함으로써 우리 가족의 과거를 지키고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죠. 약 55%의 카베르네 소비뇽, 30%의 카베르네 프랑, 8%의 쁘띠 베르도, 7%의 메를로 등 컨티뉴엄은 우리의 뛰어난 단일 부지의 품종들로 최고의 블렌딩 와인을 생산하여, 화산 언덕 지역의 독특함을 멋지게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제 메를로와 카베르네 프랑을 더 많이 사용하여 한층 더 향기롭고 우아하며 부드러운 와인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감과 애정을 듬뿍 담아 자신의 와인을 소개했다.
그리고 2019년, 몬다비 가문의 100번째 수확을 맞아 100주년 빈티지 와인을 생산한 기념비적인 해다. 그에게 있어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가족은 함께 나누는 존재입니다. 꿈과 기쁨, 슬픔, 이 모든 것을 공유하죠. 그리고 음식과 와인을 나누는 자리를 가족과 많이 가지는 것 또한 소박하지만 위대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가족과 팀 모두가 각자의 가족을 꾸리고 열정을 품으면서 더욱 매혹적인 와인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100년을 이어 가문의 와인을 만들고 나아가 미국 와인의 역사를 써 내려간 몬다비 패밀리. 팀 몬다비와 그의 아이들에 의해 만들어갈 새로운 100년의 역사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