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cific crest trail?
미국 서부의 산맥들을 따라 멕시코 국경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2658miles, 4278km를 걸어서 횡단하는 트레킹 코스다. 단련된 몸에 가벼운 배낭을 메고 빠르게 걷는 사람들은 4개월 여만에 끝낸다고도 하나 쉬는 날을 빼고는 부지런히 걸어도 하루 30km 이상을 걸어야 6개월 안에 끝낼 수 있는 길고도 어려운 코스이다.
그 긴 길을 걷기 위해 나는 지금 로스 엔젤레스로 가는 비행기에 앉아 있다. LA 공항에서 샌디에이고로 가서 2일간 정비를 마친 뒤 3월 30일 아침 일찍 이동해 그 시작점에 서게 될 것이다. PCT의 시작점(Trail Head)은 샌디에이고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멕시코 국경 인근의 Campo 라는 곳에 있다. 대부분의 하이커들은 그 시작점에 있는 조형물에 올라서거나 그 옆에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긴 여정의 시작을 알린다.
하지만 그전부터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한데 먼저 해야 할 것은 몇 가지 허가증과 서류 그리고 백패킹에 필요한 장비들이다.
1) Long distant trail permit
이 코스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관리되기 시작한 것은 1968년부터라고 한다. 올해로 50년이 되는 셈인데 그동안 꾸준히 하이커(이 트레일을 걷는 사람들을 Hiker라고 부른다)들이 증가하다 몇 년 전 영화 ‘Wild’의 개봉과 상영으로 명성을 얻으면서 그 수가 급격하게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이커들의 수가 늘기 전부터 대부분의 자원봉사자로 운영되는 단체인 Pacific Crest Trail Association:PCTA에서 자연상태를 최대한 유지 보호하기 위해 트레일 관리와 함께 최근 장거리 트레킹 허가증(Long distant trail Permit)을 발급해 왔는데 500mile 이상의 트레일을 걷는 사람은 무조건 이 허가증이 있어야 한다. 헌데 이 허가증은 하루 50명에게만 발급이 되기 때문에 신청이 시작되는 날에는 마치 인기 공연 티켓이 마감되기 전에 구해야 하는 것처럼 전 세계 하이커들이 PCTA의 운영 시간에 맞춰서 자신의 컴퓨터 앞에 앉아 경쟁한다. 이 퍼밋이 없으면 출발조차 할 수 없으니 이 시점부터 이미 긴 여정이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2) VISA
PCT Long distant Permit 신청에 성공해서 발급을 기다리라는 메일을 받았다면 그다음으로 준비해야 할 것은 장기간 미국에 체류할 때 필요한 서류다. 한국의 경우 관광비자는 3개월까지만 머물 수 있기 때문에 항공권을 두 번 구입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6개월짜리 비자가 필요하다. 나의 경우 B1(사업)/B2(관광) 비자를 발급받았다.
위의 두 가지가 해결되면 그때 항공권과 각종 백패킹 장비들을 준비하면 된다.
3) 항공권
앞서 말했다시피 트레일이 멕시코 국경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이어지므로 대부분 In/Out 도시가 다르다. 미국은 입국 심사할 때 출국 항공권이 없으면 입국이 거절될 경우도 있다 하니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 여유가 있다 하더라도 티켓을 미리 구매해서 미국에 도착하기 전에 지니고 가자. 열심히 준비했는데 작은 것 하나로 입국이 거부돼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낭패를 겪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4) 캐나다 입국 허가증
트레일이 산속에 있는 국경지대에서 끝나는데 주변에 마을이 없기 때문에 걸어갔던 길을 39.4miles/64km나 되돌아 걸어 나와 가장 가까운 미국의 마을로 가거나 아니면 트레일이 끝나는 지점에서 그대로 걸어서 0.9mile/1km 떨어진 캐나다의 Manning Park라는 곳으로 가는 방법이 있다. 캐나다로 넘어갈 경우 국경 검문소가 없기 때문에 사전에 PCTA를 통해 캐나다 입국 허가증을 받아야 하고 캐나다에 머무를 동안 이 허가증을 늘 소지하고 다녀야 한다. 이 입국 허가증을 받기 위해서는 여권 사진/PCT Long distant trail permit 허가번호/VISA 사진/PCTA 사이트에서 내려받은 신청서를 작성해서 이메일로 보내야 한다. 그 후 2주 정도 지나면 캐나다 입국 허가증을 메일로 받을 수 있다. 이것을 인쇄해서 가지고 다니면 된다.
5) 기본 장비
배낭/텐트/침낭/신발(통상 5~6켤레 정도가 소비된다고 하며 쿠션이 좋고 가벼운 것을 추천한다)/조리도구(버너, 코펠, 수저 등)/등산용 스틱/입을 옷/갈아입을 옷/모자(처음 한 달 반 정도는 사막 구간을 걷는다)/양말/장갑/보온의류/방수 의류 등
장비는 품목이며 종류가 무척 다양해서 일일이 적지 않고 대표적인 것만 적었다. 공통 포인트는 가성비가 아니라 비싸도 가볍고 성능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6개월 동안 장비와 먹을 것, 물을 직접 배낭에 넣어 메고 산길을 걸어야 하니 칫솔 손잡이도 잘라 버리고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무게에 예민하기 때문이다.
자, 준비가 끝났다면 이제 비행기를 타고 떠나면 된다. 물론 저 위에 열거한 것들만으로 모든 준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어디서 잠을 자고 무엇을 어떻게 먹으며 물은 어디서 구할 것인지, 6개월 치 식량은 다 배낭에 어떻게 넣고 가는지 등. 궁금한 것들이 아주 많겠지만 긴 여정을 이야기해야 하니 그때마다 차근차근 알아가기로 하고 우선은 그 출발점에 서서 한 걸음을 내딛어보자.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했으니 말이다.
30 March 2018. 4278km의 첫 발.
LA 공항에 아침 일찍 도착해서 짐을 정리하고 Union Station으로 이동. 예약해 둔 Amtrak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앞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San Diego의 Santa fe 역에 도착했다. Union Station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있으니 안내 요원은 나보고 기다리라 하고는 자기가 움직여서 곧 출발할 열차의 승강장과 다음 티켓으로도 이번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고 알아봐 주고, 계단 앞에서는 지나가던 사람이 짐을 함께 들어준다. Santa fe역에서도 입구까지 짐을 들어준 고마운 사람들을 만났다. 신세 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인데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시작부터 이렇게 여기저기 신세를 지고 있다. 한국에서의 나는 낯선 여행자들에게 어떤 모습이었을까 반성하게 된다.
일찍 도착한 덕에 시간이 여유가 좀 생겨서 도착역 의자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준비하고 여기까지 24간. 생각에 잠길 짬도 없이 따끔따끔 피곤한 눈이 편안해지자 잠이라도 자고 싶을 지경이다. 그러나 아직 정신을 놓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