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신입생 환영회의 폐해를 뉴스 기사로 접하며 ‘나도 저렇게 되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앞섰다. 과다한 구토로 죽은 대학생, 문란한 술 게임, 먹기 싫은 술을 부러 강요하는 선배들.
수능 시험을 보고 나서 원서를 쓴 뒤, 입학허가를 받기까지 시간은 그동안 쉼 없이 달려온 나에게 너무 길었다. 그사이 나는 부모님에게서 술도 배웠으며 만 19세를 넘은 기념으로 친구들과 쭈뼛거리며 맥줏집에도 드나들었다. 그렇게 단련이 돼서인지 처음 도착한 신입생 환영회는 생각처럼 무시무시한 곳은 아니었다.
그 ‘신입생 환영회’ 장소에 모인 수십 명의 새내기는 어색한 표정을 숨기며 비좁은 술집에 들어왔다.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는 신입생 사이로는 선배들이 껴 앉았다. 쑥스러운 첫 자기소개를 마친 우리 앞에는 수십 병의 소주가 놓였고 서로를 알아간다는 이름 아래 술게임이 시작됐다. 처음 접한 게임에 연거푸 지며 나는 소주를 들이켰다. 그 알싸하고 찡하고 약간의 시큼한 냄새. 첫 모금에는 ‘이걸 어떻게 마시나.’ 했는데 자꾸 먹다 보니 잘 들어갔다. 말이 꼬이고 행동이 빨라지는 그 취한 무리 사이에서 난 소주를 처음 마셨다.
선배들은 몇 시간 후 취한 모습으로 일어서는 나를 굳이 붙잡지 않았다. 나는 나와 같은 모습으로 취한 친구들과 함께 비틀거리며 집을 향했다. 희석식 소주로 얼큰하게 취했던 나는 다음 날 숙취로 고생 좀 했다.
대학생들도 싼값에 자주 찾는 희석식 소주는 국민주처럼 여겨지지만, 소주가 인기를 얻은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지금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희석식 소주는 고구마나 사탕수수 같은 원료로 당밀을 만든다. 이 당밀은 95%의 알코올 농도를 갖고 있다고 하는데, 이것을 연속식 증류기를 이용해 에탄올 (에틸알코올)을 만들어낸다. 그런 다음 여기에 물과 그 밖의 첨가물을 타면 우리가 먹는 소주가 나온다.
1960년대 중반에 쌀이 부족한 탓에 순곡주 금지령이 내려지면서 사람들은 알코올 함량이 높아 외면했던 소주에 눈을 돌린다. 막걸리의 질이 너무 떨어져 소주를 먹기 시작한 것이다.
1960~70년대에 ‘카바이드’ 막걸리라는 게 있었다. 이때에는 막걸리를 쌀로 만들 수 없으니 밀가루 등으로 만들었는데, 발효를 빨리 시키려고 카바이드라는 하얀 돌 같은 것을 넣었다고 한다. 이 물질을 물에 넣으면 가스가 나오는데 여기에 불을 붙여 램프 대용으로도 썼다. 이런 화학물질을 넣어 막걸리를 만들었으니 이 술을 마시면 뒤탈이 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 등으로 국민은 막걸리를 외면했고 대신 소주를 찾게 된다. 이 관습이 굳어져 소주가 더 인기가 있는 술이 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원래 청주(혹은 약주)와 막걸리(혹은 탁주)를 주로 마셨다. 귀족은 청주를 마시고 일반 백성들은 막걸리를 즐겼다. 우리 조상들은 소주같이 센 술 만드는 법을 잘 몰랐다고 한다. 고려 말에 몽골의 지배를 받게 되며 우리나라에 소주가 들어왔다.
몽골에서는 소주를 가리켜 ‘아라키(arrack)’라고 불렀는데 그 시초는 페르시아의 위장약이다. 아라크는 아랍 어로 ‘땀’을 뜻하는 단어인데, 증류기에서 물방울이 응축돼 방울져 떨어지는 모습을 비유했다. 이 증류식 계통의 소주로 지금 세간에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안동소주이다.
몽골이 일본을 치기 위해 만든 병참기지가 안동과 개성에 있었기 때문에 몽골군이 이곳에 주둔해서 소주를 만들던 것이 그대로 정착되어 안동이 소주로 유명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개성에서는 소주를 ‘아락(arrack)주’라고 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소주를 마시고 죽은 사례나 소주를 이용해 사람을 살해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 시대 소주 도수는 45도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성계의 맏아들(이방우)도 소주를 마시고 병이 나서 죽었다고 나온다. 태종 4년(1404년) 경상도 경차관 김단은 고을 수령이 권한 소주를 과음한 뒤에 급사했다.
중종 36년(1536년)에는 소주와 백화주를 섞어 아버지를 살해한 두 불륜 남녀가 나온다. 최초의 폭탄주는 말 그대로 ‘독주’였다.
현재에 와서도 술로 인한 폐단은 이어진다. 알코올 도수가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과음으로 죽는 사람은 존재하고, 신입생 환영회로 대표되는 여러 대학 행사에서 과음으로 인한 불상사가 매년 생겨난다. 우리나라 대학문화에서 첫째로 없애야 하는 게 과도한 술 권유문화이다. 대학생 때 술을 잘못 배운 사람들이 사회에 나가서도 자기보다 낮은 사람에게 술을 무작정 권한다.
술의 힘을 빌려 어색함을 없애고 긴장감을 해소하는 건 좋지만 과하지 않은 적당한 취기만이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회식이나 환영회에서 서로를 불쾌하게 하는 술은 지양하자.
그런 과한 술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서로를 잘 알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