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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아르 VS 남아공. 슈냉 블랑의 승자는?

루아르 VS 남아공. 슈냉 블랑의 승자는?

조나리 2022년 2월 23일

프랑스 루아르 밸리에서 주로 생산되는 신선한 화이트. 싱그러운 시트러스 풍미에 가끔은 달콤한 열대과일의 아로마, 그리고 스모키한 느낌까지 즐길 수 있다. 이름은 ‘ㅅ’로 시작하고, 뒤에는 ‘블랑’이 붙는다. 자, 이 품종의 이름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망설임 없이 “소비뇽 블랑!”을 외칠 것이다. 물론 틀린 답은 아니지만 유일한 답도 아니다. 루아르에서 태어나 남아공까지 건너가서 널리 사랑받는 포도, 슈냉 블랑(Chenin Blanc) 역시 이런 묘사에 빠지는 것 없이 들어맞는 품종이니까. 스틸부터 스파클링까지, 드라이한 것에서 아주 달콤한 스타일까지 천의 매력을 뽐내는 이 슈냉 블랑이 다름 아닌 오늘의 주인공이다.

[쥘 트롱시가 <L’Ampélographie : traité général de viticulture(포도 연구학 : 포도 재배 개론)>의 슈냉 블랑 일러스트]

아찔한 산도의 변화무쌍한 포도

슈냉 블랑은 아주 다재다능한 포도다. 한 송이에서도 포도알마다 익는 속도가 제각각인 품종 특성상 기계를 쓰지 않고 손으로 여러 번 수확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일찍 수확한 포도로 양조하면 청사과처럼 풋풋한 맛을, 여물 대로 여문 포도를 사용하면 구운 사과나 살구 같은 보다 따뜻한 맛을 낸다. 이 외에도 서양배와 젖은 지푸라기, 캐머마일 등이 슈냉블랑을 묘사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기본적으로 산도가 높아 장기 숙성이 가능하고, 귀부균에 취약해 귀부 와인으로도 많이 만들어진다. 짭짤한 미네랄이 느껴지는 드라이한 스타일부터 오프 드라이, 스위트까지 커버하지 못하는 달기도 없다. 양조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와 오크통이 두루 쓰이며 효모 접촉(Lees contact)나 젖산 발효(Malolactic fermentation)를 통해 부드러운 느낌을 더하기도 한다.

[사브니에르의 포도밭 / 사진 출처: jamesonf via Wikimedia commons]

루아르, 원조의 자존심

슈냉 블랑의 고향은 프랑스의 루아르 밸리다. 845년의 기록에 이미 이 품종에 대한 언급이 있다니, 못해도 1180년 동안 프랑스인들의 손에 재배되어 온 것. 루아르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다양한 개성의 슈냉 블랑 와인이 탄생하고 있다. 과거 상공업 중심지였던 앙제(Anger) 근처의 사브니에르(Savennières)에서는 주로 드라이한 슈냉 블랑을 생산하고, 단 와인의 경우에는 레이블에 그에 걸맞은 표기(Demi-sec, Doux, Moelleux)를 해야 한다. 드라이한 사브니에르는 찌르는 듯한 산도와 샤블리를 연상케 할 만큼 단단한 미네랄리티를 자랑하는데, 세월과 함께 농익어 가며 핵과일의 달콤함으로 밸런스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아름다운 고성으로 유명한 프랑스 중부의 도시, 투르(Tours) 근교의 부브레(Vouvray)에서도 다양한 당도의 슈냉 블랑을 생산한다. 최근에는 샴페인처럼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드는 스파클링 와인도 주목을 받는 추세다. 화사한 흰꽃 향기, 사과와 배, 모과 등이 특징적이며, 귀부 와인의 경우 생강이나 밀랍의 아로마가 언급되기도 한다.

[사진 출처: Marianne Casamance via Wikimedia Commons]

단맛 슈냉 블랑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꼬또 뒤 레이용(Côteaux du Layon), 그중에서도 까르 드 숌(Quarts de Chaume)과 본느조(Bonnezeaux)는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귀부 와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늦여름이면 레이용 강에서 피어오르는 아침 안개가 귀부균의 번식을 돕고, 껍질이 얇은 슈냉 블랑의 특성상 귀부균 감염이 쉬워 가론강과 세미용의 만남만큼이나 훌륭한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다. 본느조의 생산자 장 봐뱅(Jean Boivin)이 소테른에서 귀부 와인 양조 기술을 배워와 루아르 지역에 전했다는데, 슈냉 블랭의 높은 산도 덕에 밸런스 면에서는 꼬또 뒤 레이용이 오히려 소테른보다 낫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남아공의 슈냉 블랑 고목 / 사진 출처: Old Vine Project]

벌크 와인에서 프리미엄으로, 남아공의 슈냉 블랑

슈냉 블랑의 고향이자 프리미엄 생산지로서 루아르 밸리의 명성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렇다고 경쟁 상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17세기에 이미 슈냉 블랑을 들여와 재배하기 시작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그 생산량에 있어서는 프랑스를 뛰어넘은 지 오래다. 스텔렌보스(Stellenbosch), 스와틀랜드(Swartland) 등 다양한 지역에서 재배되며 ‘스틴(Steen)’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남아공의 슈냉 블랑은 저렴한 벌크 와인이나 브랜디 증류를 위한 재료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최근 들어서는 아로마틱한 고급 와인을 빚는 와이너리들도 늘어났다.

특히 수령 70~100년에 달하는 고목들이 만들어낸 포도송이는 열대과일 – 바나나, 멜론, 파인애플 등 – 풍미의 리치한 와인으로 재탄생하곤 한다. 루아르에서와 달리 오크를 쓰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짱짱한 산도에 무게감까지 더해진 슈냉 블랑은 셀러에서 15년도 거뜬히 버틴다니, 컬렉터의 소장품으로서도 자격이 충분하다.

[‘올해의 와인 인물상’을 받는 올드 바인 프로젝트의 주역 로사 크루거 / 사진 출처: Old Vine Project]

남아공의 슈냉 블랑이 벌크 와인에서 프리미엄 퀄리티의 와인으로 발돋움한 것은 남다른 노력의 결과였다. 슈냉 블랑 어소시에이션(Chenin Blanc Association)은 품종의 조직적인 관리와 연구, 홍보를 도맡고 있으며, 포도 재배 전문가인 로사 크루거(Rosa Kruger)는 ‘올드 바인 프로젝트(Old Vine Project)’를 통해 수령 35년 이상의 고목들을 선별하고, 생산자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해 오래된 나무를 섬세히 관리하며 수확량은 낮춰 응축된 풍미를 유지하도록 힘써왔다.

품질에 비해 아직은(?) 저렴한 가격 역시 남아공 슈냉 블랑의 빼놓을 수 없는 경쟁력이다. 가볍고 상쾌한 테이블 와인은 만 원대부터, 비교적 응축된 풍미의 와인도 4~5만 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으니 와인숍에서 남아공 슈냉 블랑을 마주친다면 그 매력을 한 번쯤 즐겨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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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리

애주 경력 15년차 북 에디터. 낮에는 읽고 밤에는 마십니다. / mashija@winevisi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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