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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와 전통주] 돼지 등심과 전통주 ①

[돼지고기와 전통주] 돼지 등심과 전통주 ①

이재민 2023년 12월 5일

[돼지 등심]
등심은 등줄기를 따라 길게 형성되어 있는 부위다. 여기서 등뼈를 완전히 도려내고 두꺼운 등지방을 7mm 이하로 제거하면 우리가 흔히 보는 매끄럽고 둥글넓적한 등심의 형태가 된다. 맛의 특징으로는 안심과 마찬가지로 지방 함유량과 운동량이 적어 담백한 맛과 연한 식감이 있다. 지방이 없는 부위로 요리를 하면 다소 뻑뻑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이를 보완한 음식이 대표적으로 돈가스와 탕수육이다. 기름을 더하는 조리 방식으로 입안에서 녹아드는 부드러운 질감을 만들어 낸 것이다. 반대로 기름기가 많은 음식에서 적당한 밸런스를 맞추고자 지방이 없는 등심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레시피마다 다르겠지만 주로 잡채와 짜장면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근섬유 방향이 일정해서 크기나 두께를 맞춰 손질하기가 쉬워 산적 꼬치처럼 일정한 모양이 필요한 요리에도 많이 사용한다.

[돼지 등심 돈가스]


등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인 돈가스. 만두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인의 구황작물을 줄 세워 본다면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지 않을까 싶다. 이런 돈가스를 집안에 갖춰 둘 땐 꼭 같이 준비해 둬야 하는 게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기름이다. 돈가스에서 기름은 참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름은 빵가루와 만나 “바삭”거리는 소리를 만들어 내고, 살코기 사이로 잘 스며들어 뻑뻑하지 않은 식감을 자아낸다. 이런 이유로 나는 에어프라이어보다 기름에 튀긴 돈가스를 더욱 선호한다. 기름의 쓸모가 끝났다면 다음으론 소스는 있는지 한 번 살펴보면 좋다. 새콤한 돈가스 소스는 기름이 남기고 간 느끼함을 잘 잡아준다. 그렇다고 소스 하나에 안심하긴 이르다. 기름으로 인한 느끼함은 사라질 수 있으나, 소스의 단맛으로 인해 또 다른 느끼함이 찾아올 수도 있다. 그럴 땐 맥주 한 잔을 곁들여 보는 것을 추천한다. 탄산이 느끼함을 말끔히 씻어주는 것을 경험해 보면, 왜 튀김 요리에 맥주 한 잔을 많이들 즐기는지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돼지 등심 돈가스에는 맥주를 페어링할 수 없다. 국내 수제 맥주 브루어리는 많지만, 결과적으로 그 술들은 전통주가 아니기에 이번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대신 맥주처럼 탄산, 홉, 맥아가 들어간 술을 준비하여 아쉬움을 달래보려 한다.

1) 심쿵하리 (과실주, 4.5%)


술의 특징
세종시의 솔티마을 양조장에서 만드는 스파클링 과실주다. 꿀에서 느껴질 법한 특유의 구수한 풍미와 사과의 달콤한 풍미를 눅진하면서도 중후하게 풍기는 것이 특징이다. 쓴맛은 거의 없으며, 사과 원액에 가까운 맛으로 부담 없이 청량감 넘치게 마실 수 있다.

돼지 등심 돈가스와의 궁합
술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맛이 아무래도 단맛이기 때문에 음식의 기름짐과 술의 달콤함으로 쉽게 물리게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먹어 보니 술과 음식 모두 무거운 풍미를 가진 덕에 서로의 맛이 엇나감 없이 조화롭게 합을 이루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시면 마실수록 중첩되는 탄산과 희미하게나마 자리 잡고 있던 술의 산미로 인해 느끼함 없이 맛있는 돈가스에 탄산음료 한 잔 곁들이듯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2) 요새로제 (과실주, 6.4%)


술의 특징
충청북도 충주시의 댄싱사이더 컴퍼니에서 만드는 스파클링 과실주다. 재료로는 사과즙, 오미자, 레몬그라스, 라즈베리 티 등이 사용된다. 라즈베리 음료를 마시는 듯한 느낌의 강한 단맛을 갖고 있으며, 단맛 못지않게 산미도 강렬한 편이다. 한마디로 달콤 상큼한 술이라고 할 수 있다. 알코올이 있는 술이지만 씁쓸한 맛은 거의 없는 편에 가까워, 무알콜의 맛있는 음료를 마시는 기분을 선사해 주기도 한다.

돼지 등심 돈가스와의 궁합


느끼할 때 마시는 탄산음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궁합이다. 돈가스의 풍미는 혓바닥 쪽으로 무겁게 깔리는 반면, 요새로제의 달콤 상큼한 풍미는 입천장 쪽으로 톡톡 튀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잘 어울리고 안 어울리고를 떠나서 서로 엉키는 맛이 없다. 그래도 소스를 찍은 돈가스와 술 사이에는 산미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크게 모나지 않은 맛으로 즐길 수 있으며, 요새로제의 탄산이 돈가스의 느끼함을 잡아주기 때문에 최악의 페어링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3) 첫사랑 (증류주, 25%)


술의 특징
수제 맥주 브랜드인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에서 개발한 증류주로 현재에는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술샘 양조장에서 만들고 있다. 수제 맥주 브랜드에서 개발한 술답게 첫사랑에는 맥주의 필수 재료인 홉이 들어갔으며, 홉 특유의 씁쓸함을 풍긴다. 홉의 풍미 외에 파인애플, 고수, 민트 등에서 느껴질 법한 화사함도 지니고 있다. 다양한 맛과 향을 갖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가벼운 강도로 발현되는 편이라 깔끔한 편이다.

돼지 등심 돈가스와의 궁합
다양한 풍미와는 별개로 가벼운 강도를 갖고 있어서 돈가스에는 부딪혀 보지도 못하고 목을 넘어가는 느낌이 든다. 만약 첫사랑과 돈가스를 함께 즐기고 싶다면 돈가스에 생맥주 한잔 곁들이듯이 청량감 넘치는 하이볼로 만들어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4) 돼지 등심 돈가스에 어울리는 술


혓바닥 위로 중후하게 쌓이는 돈가스의 풍미와 잘 만나 놀 수 있도록 술 또한 어느 정도 바디감이 있는 것을 추천한다. 어울리는 술의 맛으로는 단맛과 신맛이 있다. 반대로 도수가 높거나 드라이한 술은 지방 하나 없는 등심의 살코기와 만나 뻑뻑함을 야기할 수도 있으니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탄산이 있는 술로 느끼함을 잡거나, 벌컥벌컥 마실 수 있는 술을 준비하여 목멤 없이 돈가스를 촉촉하게 즐기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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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

음식과 술에 대해 글을 쓰고 말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전통주 큐레이터'이자 팟캐스트 '어차피, 음식 이야기' 진행자, 이재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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