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의 시작을 따지자면 무려 16,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이때의 이야기는 오늘 잠시 접어 둘 겁니다. 대신, 4~5백여 년을 거슬러 온 샴페인의 요즈음 모습, 그것도 최근 더 주목받기 시작한 Brut Nature(브뤼 나뛰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수백 년 동안 샴페인은 쉽지 않은 술이었습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샴페인을 만드는 과정이 꽤 복잡했기 때문인데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먼저 기본 와인이 필요합니다. 각 샴페인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이 기본 와인은 여러 빈티지의 포도를 섞어서 만들기도 하고(이 경우 NV, Non Vintage 샴페인이 됩니다.), 수확 상태가 아주 좋았던 해의 포도로(이 경우 Vintage 혹은 Millèsime 샴페인이 되죠.) 만들기도 하죠.
이 기본 와인을 병에 넣어 효모와 함께 발효시키게 되는데, 발효가 끝나면 자연스레 효모 찌꺼기가 생깁니다. 당연히 이 찌꺼기를 담은 채로 출시할 수 없으니 이것을 제거하게 되는데, 이 과정을 보통 ‘데고르주망(degorgement)’이라 부릅니다.
데고르주망은 병목으로 찌꺼기를 모아 살짝 얼린 후, 병 캡을 열어 빼 버리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요. 이때 같이 빠져나간 와인들을 보충하고자 와인과 당분의 혼합물을 추가하게 되는데, 바로 이 과정이 오늘 눈여겨 봐야 할 ‘도사주(Dosage)’입니다.
이 도사주의 역할은 비단 빠져나간 와인을 채우는 것뿐만 아니라, 당분을 통해 샴페인의 높은 산도와 균형을 맞추는 것에 있습니다. 프랑스 북부의 쌀쌀한 샹파뉴 지방 특성상, 포도의 당도가 충분히 올라올 만큼 익기 어려웠다는 점에서 비롯된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물론 도사주를 얼마큼 하느냐는 생산자의 선택이고, 이에 따라 달라지는 샴페인의 당도는 아래와 같이 구분됩니다.
그리고 이 중에서도 오늘의 주인공은 가장 적은 당도, 1리터당 0~3g 정도의 당분만을 지닌 ‘Brut Nature’입니다.
Brut Nature
극단적으로 적은 당도를 자랑하는 Brut Nature는 Zero dosage(제로 도사주)라고도 불립니다. 말 그대로, 샴페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도사주 작업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당분을 전혀 첨가하지 않았으니 달달할 리 없습니다.
이런 달지 않은 샴페인의 인기는 생각보다 거셉니다. 2010년대 초반부터 슬금슬금 Brut Nature에 대한 인기가 언급되는가 싶더니, Comité Champagne(샴페인 생산자 조합)에 의하면 2017년 샴페인 수출이 9.1% 증가할 때, 드라이한 편인 Extra Brut과 Brut Nature는 무려 35.4% 증가했다고 합니다.
그럼 이제 자연스레 ‘왜?’라는 의문이 떠오릅니다. 대체 왜 달지 않은 샴페인이 인기가 많아지고 있는 걸까요?
Brut Nature가 인기인 이유
필자는 이 흐름에 대한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변화와 와인 시장의 주요 구성원인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점에서 말이죠.
1. 지구 온난화가 만들어낸 변화
와인을 다루는 데에 지역과 기후는 너무나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런 와인 업계에 있어 지구 온난화는 큰 영향을 미치죠. 이건 샴페인을 생산하는 샹파뉴 지방에도 예외 없이 적용됩니다. 실제로 2003년 빈티지는 1852년 이후로 가장 따뜻했던 해의 빈티지로 기록되었고, 이어 2015년은 2003년을 훌쩍 뛰어넘는 높은 기온이었던 해의 빈티지로 기록될 정도로 기후가 빠르게 더워지고 있다고 해요.
이렇게 더워진 날씨 덕분에 와인의 자연 숙성이 더 많이 진행되고, 이전보다는 훨씬 더 당도가 높고 산도가 낮은 포도가 수확되니 상대적으로 당분을 첨가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지요.
2. 날로 발전하는 생산자들의 와인 양조법
앞서도 소개되었지만, 애초에 도사주는 산미가 튀는 포도의 맛에 균형을 잡고자 추가된 과정이었습니다. 적절한 산미를 갖춘 포도를 수확하지 못하였으니, 당분을 통해 산미를 살짝 숨기는 역할이었지요. 하지만 이제 생산자들은 보다 더 노련한 방법으로 포도를 익히고, 더 정확한 방법으로 알맞은 시기에 포도를 수확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이제 도사주는 산도를 숨기는 용도가 아닌, 그저 음식에 소금간을 살짝 더하듯 풍미를 추가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지요. 심지어 당분을 추가하지 않더라도, 외려 떼루아(포도밭이 위치한 지역, 토양, 기후 등)의 특성을 그대로 살려 생산자 고유의 매력을 드러내어 준다는 점 때문에 Brut Nature를 꾸준히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3. 소비자들의 입맛과 자연주의를 향한 관심
유기농 와인, 비오다이나믹 와인, 내추럴 와인 등 최근 자연주의 와인에 대한 인기는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Brut Nature도 인위적으로 당분을 첨가하는 공정인 도사주를 생략한 것이니, 이러한 흐름에 편승하는 샴페인이지요.
더불어 소비자들의 입맛이 점점 변하고 있다는 점도 있습니다. 포츈(Fortune)지에서 인터뷰한 뉴욕 및 샌프란시스코 와인샵 Verve Wine의 공동 창업자인 Dustin Wilson은 “와인을 소비하는 대중이 점점 더 드라이한 와인을 찾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다는군요. 또한 위에서 소개했듯, 드라이한 편인 Extra Brut과 Brut Nature의 수출이 2017년 35.4%나 증가했던 것도 소비자 입맛 변화의 증거가 되겠습니다.
시장의 트렌드는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견고해 보이는 샴페인 시장도 이러한 규칙에서 예외가 아니지요. 그러나 이 트렌드에 따른 와인이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고, 따르지 않았다 하여 뒤처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우리는 이 트렌드를 잘 알아두었다가 언젠가 이 샴페인을 만난다면 즐겁게 마셔보면 될 뿐이죠.
앞으로 샴페인을 고르다 Brut Nature를 발견하면 ‘제로 도사주(Zero Dosage)군!’하고 외쳐 보세요. 독자 여러분들의 즐거운 와인 시간을 위하여, Sant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