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무알코올 음료에 대한 인기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주류연구기관 IWSR(International Wine and Spirit Record)의 데이터 분석 결과, 무알코올 및 저알코올 카테고리는 2024년까지 31%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저알코올 제품(0.5%~3.5% ABV)보다 무알코올 제품(0.5% ABV 이내)의 성장이 눈에 띈다. 전 세계 무알코올/저알코올 소비량의 75%를 차지하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10개 주요 시장의 최근 데이터를 살펴보면, 이들 국가에서 2019년과 2020년 사이 무알코올 제품의 소비량은 4.5% 증가한 반면, 저알코올 제품은 5.5% 감소했다.
굳이 수치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최근 주변 애주가들로부터 무알코올 와인에 대한 문의가 많아지는 것만 봐도 그 높아지는 관심도를 느낄 수 있다. 건강 문제 또는 웰빙을 추구하는 트렌드 때문이기도 하지만, 술이 약한 사람들과 함께 즐기기 위해 무알코올 제품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이러한 인기를 반영하듯,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니 꽤 많은 무알코올 와인을 찾을 수 있었다. 아직 시작 단계인 국내 무알코올 음료 시장에 일찍이 출사표를 던진 이 제품들은 과연 어떤 품질을 보여줄지 궁금해서 총 9종을 택배 주문했다. 주류 통신 판매가 허용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간편한 주문 배송은 무알코올 와인의 또 하나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용어부터 정리하자. 국내 주세법상 알코올 함량이 1% 미만인 경우, 주류가 아닌 음료로 구분된다. 그리고 알코올이 전혀 없다면 무알코올(알코올 프리), 1% 미만일 경우에는 비알코올(논알코올)로 표기해야 한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무알코올’이라는 표현이 널리 사용되고 있기에, 기사에서도 편의상 무알코올로 통칭하기로 한다.
무알코올 와인은 일반 와인에서 시작된다. 넓은 의미에서 와인의 재료는 모든 과실을 포함하지만, 정확하게 규정하자면 와인은 ‘포도’즙을 ‘발효’ 시켜 만든 알코올 음료이다. 수확한 포도를 으깨고 압착하여 분리된 즙은 효모를 활용하여 당분이 알코올로 전환되는 발효의 과정을 거친다. 이후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 오크 배럴 등 다양한 통에서 원하는 만큼의 기간에 걸쳐 숙성이 진행된다.
이러한 복잡한 과정을 통해 복합적인 맛과 풍미를 지닌 와인이 완성된다. 그리고 지금부터 무알코올 와인을 만들기 위한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 시작된다. 알코올을 제거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은 잠시 뒤로 미루고, 시음을 위해 주문한 9종의 와인을 살펴보자.
재미있게도 9종의 와인 중에서 위의 설명대로 일반 와인에서 알코올 제거 과정을 거친 진짜 무알코올 와인은 3종뿐이다. 나머지 6종은 발효를 거치지 않은 포도 주스에 다양한 농축물을 섞거나 가향제를 더했고, 심지어 포도 주스가 전혀 포함되지 않은 제품도 있었다.
9종을 모두 시음한 후 내린 결론은 ‘발효의 과정 없이 와인 특유의 풍미를 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무알코올 와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한껏 높아진 기대를 허무하게 꺾어버리는 아쉬운 품질의 제품들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와인에 익숙하지 않은 이에게는 오히려 이러한 주스 제품이 더 편할 수도 있다.
비발효 음료 중에서 첫 번째로 추천하는 제품은 반네이만 리슬링(Van Nahmen Riesling)으로, 다른 첨가물 없이 오직 리슬링 포도만으로 만든 주스다. 100년에 걸쳐 발전된 가공 방식으로 리슬링 품종의 매력을 잘 표현했으며, 달콤한 스위트 와인이 연상되었다.
그리고 적포도 주스에 탄산가스를 주입한 벌블 오브 그레이프(Burbujas of Grapes)는 우리에게 익숙한 웰치스가 생각나는 맛이다. 원래 웰치스는 무알코올 와인으로 탄생했다. ‘취하지 말라’는 성경을 받들어 성찬식에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을 사용하고 싶었던, 신앙심 깊은 토마스 웰치(Thomas Bramwell Welch)는 ‘저온살균법’을 통해 포도즙에서 효모를 파괴한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웰치스는 애주가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외면당했다. 다행히 그의 아들에 의해 건강한 포도 주스로 포장된 웰치스는 금주법 시대를 맞이하면서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이제 ‘진짜 무알코올 와인’의 시간이다. 발효를 끝낸 일반 와인에서 알코올을 제거한 진짜 무알코올 와인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알코올은 어떻게 제거하는 것일까?
발효는 단순히 당분을 알코올로 전환하는 과정이 아니다. 발효를 통해 복합적인 향과 풍미, 그리고 바디감과 질감을 만들어내며, 생성된 알코올은 아로마를 증발 시켜 전달하는 역할도 한다. 그런데 무알코올 와인은 알코올이 제거되는 과정에서 ‘와인을 와인답게, 그리고 맛있게 만드는’ 요소들을 잃게 된다. 훌륭한 품질의 무알코올 와인은 가장 와인-스러움을 보여주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무알코올 와인을 만드는 현대적인 방법은 진공증류법(Vacuum Distillation), 역삼투법(Reverse Osmosis), 스피닝 콘 칼럼 방법(Spinning Cone Column), 이렇게 3가지로 나뉜다. 진공증류법은 말 그대로 진공 상태에서 증류하는 것이다. 알코올의 끓는점이 78.3°C로 물보다 낮아, 알코올을 먼저 날려버리면 쉽게 무알코올 와인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알코올과 함께 매력적인 아로마와 풍미가 모두 날아가 버리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최대한 막고자 매우 강한 진공 상태를 만들고 증류를 시키면,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25~30°C)에서 알코올을 제거할 수 있다. 이후 방향성 물질을 다시 혼합한다.
역삼투법은 서로 다른 분자 크기에 따라 구성 요소를 분리하는 방법이다. 극도로 높은 압력으로 와인을 미세한 필터에 밀어 넣는 작업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아로마 성분에서 물과 알코올을 분리한다. 분리된 물과 알코올의 혼합물을 증류하여 알코올을 제거한 후, 아로마 화합물과 페놀을 재결합한다.
세 번째 스피닝 콘 칼럼 방식은 매우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원뿔 기둥에 와인을 넣으면, 원심력에 의해 매우 얇은 막으로 변형된다. 그리고 기둥에서 질소 가스가 펌핑되어 와인의 아로마 성분을 추출한다. 이후 물과 알코올 혼합물은 회전하는 원뿔 기둥을 다시 통과하는데, 이때 기둥 내부의 온도를 높여 알코올을 물과 분리한다. 마지막으로 물과 아로마 성분을 재혼합하면 무알코올 와인이 완성된다.
발효 과정을 거친 무알코올 와인 중에서 추천 제품은 라이츠, 아인스-츠바이-제로 리슬링(Leitz, EINS-ZWEI-ZERO Riesling)과 톰슨&스캇, 노티 스파클링 샤르도네(Thomson&Scott, Noughty Sparkling Chardonnay)다. 두 제품 모두 진공 상태에서 낮은 온도로 알코올을 제거하는 진공증류법을 사용하여 와인의 풍미를 최대한으로 지켰다.
특히, 라이츠는 독일 라인가우의 ‘최고 재배 농가이자 가장 훌륭한 생산자 중 하나’라는 명성을 얻고 있으며, 최근 무알코올 와인으로 다시 한번 주목을 받고 있다. 톰슨&스캇은 최초로 유기농, 비건 그리고 할랄까지 인증받은 무알코올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하며, 세계적인 와인 비평가인 잰시스 로빈슨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에서 “마셔본 최고의 무-알코올 와인”으로 소개되며 그 품질을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