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랑 지역을 걸어다니다 보면 옛날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샵하우스들 뿐만 아니라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등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기사 이 겔랑이라는 이름의 어원 역시도 말레이어로 ‘geylanggan’ 이라는 일명 “twist” 또는 “ crush” 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에서 왔는데, 아마도 말레이시아에서 이주해 온 농민들이 칼랑 강 근교에서 코코넛 농사를 지은 것과 관련한 단어인듯 싶다. (겔랑 영어단어 해석-위키피디아)
또 말레이 화교의 주식중에 하나인 커리와 락사를 만드는데에 이 코코넛 크림과 코코넛 밀크는 빠질수 없는 식재료였고 이를 채출하기 위해 코코넛을 부시는 과정에서 흔히 불려지는 단어가 ‘geylanggan’ 이라는 단어 였다. 짐작하건데 이 모습 또한 생계를 위해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말레이 화교들의 다치고 부서지는 모습을 비슷하게 담고 있지는 않나하는 생각도 잠시 든다.
또 다른 추측은 말레이시아의 멜라카라는 도시가 그 지역에 자라는 나무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처럼 겔랑 역시도 말레이어로 먹을수 있는 일종의 덩굴식물의 이름에서 이름을 따온게 아닐까 라는 것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겔랑은 말레이 화교들과 뗄레야 뗄수없는 관계를 지닌 곳이고 그 영향으로 말레이 화교들의 음식인 일명 페라나칸 요리가 특별히 발달했다.
페라나칸이란 말레이 반도로 이주해 온 중국인 남성과 말레이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로 남성은 바바(baba), 여성은 논야(nonya)라고 부르는데 특히 싱가포르에서는 구분없이 페라나칸으로 부르고 주로 사람, 음식 그리고 문화를 통칭하는데 쓰여진다.
겔랑에서는 이 페라나칸 요리를 싱가포르의 어떤 지역에서 보다 저렴하게 맛볼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또한 필자가 겔랑을 사랑하는 이유중에 하나이기도 하고!)
페라나칸 요리가 종류도 많고 이름도 기억하기 어렵지만 쉽게 설명해서 이 지역에서 주로 나던 코코넛 크림과 밀크가 들어간 커리와 락사 그리고 말레이 반도 전역에서 나는 향신료 (허브)가 들어간 음식들, 싱가포르 인들이 즐겨 먹는 빨간 고추양념 (칠리 파디 또는 삼발소스라고 부른다)이 들어간 음식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요리를 꼽으라면 서슴치 않고 락사라고 얘기할 수 있는데 락사도 말레이 반도 각 지역에 따라 수프 베이스며 토핑이 각기 다르지만 (예를 들면 페낭에는 생선 뼈로 국물을 낸 아쌈락사가 유명하고 멜라카지역에는 바바락사, 논야 락사가 유명하다.)
엠알티 (MRT) 알주니드 역 (Aljunied) 역에서 도보로 1분 거리에 위치해서 찾기 쉽고 근처에는 싱가포르 현지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위)
싱가포르 스타일 락사를 논하는데는 겔랑, 특히 겔랑에서도 페라나칸 문화의 중심지 카통 락사를 빼놓을 수가 없다. 락사는 말레이 말로 쌀국수라는 뜻이지만 우리가 평소 쉽게 접하는 베트남식의 쌀국수와는 비주얼에서부터 많은 차이가 난다. 국물은 매콤한 커리 국물에 코코넛 밀크를 섞어 만드는데 신기하게도 그 맛이 느끼하지도 않고 중독성이 강하다.
이 코코넛 커리 국물에 튀긴 두부, 어묵, 새우 그리고 중국어로 “함”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로 치면 꼬막류의 조개가 들어가는데 이 “함”이 첨가되어 락사의 감칠맛을 더해준다.
페라나칸의 거리 카통에는 수많은 샵하우스들이 늘어져 있고 곳곳에 락사집이 많지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일명 원조라 불리우는 328 카통 락사를 즐겨 찾는다. 328 카통 락사는 가느다란 쌀국수 (중국어로 마이신 또는 미시엔이라고 부름)가 잘게 조각이 내어져 있어 숟가락으로만 먹는 것이 특징이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예전에 인부들이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는데 숟가락으로만 먹는것이 편해서 아마도 그렇게 고안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가게에 따라서 삼발이라고 불리는 칠리소스를 한 숟가락 떠서 주는데 코코넛의 느끼한 향이 두려운 분들에게는 삼발 소스 곱배기를 추천하는 바이다.
락사와 짝을 이루는 페라나칸 요리의 대표적인 음식은 바로 나시 레막 (Nasi Lamak) 이다.
나시 레막은 말레이시아에 가면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음식으로 판단잎에 고이 싸여져 있는데, 코코넛 밀크에 지은 밥에 말레이식 멸치 볶음, 견과류 그리고 피클이 한데 들어 있어 한 끼 식사로 거뜬하며 영양가는 물론이고 휴대가 간편해 겔랑 지역에 사는 인부들에게는 최고의 도시락이 아니었을까?
요즘에는 생활 수준이 급격하게 나아지고 이 나시레막도 진화해서 계란 후라이와 닭다리 튀김도 함께 먹는 추세지만 원래는 향긋한 코코넛 향이 묻어나는 밥에 소박한 반찬과 야채를 곁들여 삼발 소스와 먹는 것이 정석이다.
겔랑 지역을 가 볼 기회가 생긴다면 이 샵하우스들에 자리 잡은 전통이 깊은 락사집에서 락사와 나시레막을 맛보며 싱가포르에 이주해서 자리잡은 페라나칸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느껴보는것도 싱가포르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야기 셋에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