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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같은 맥주, 맥주 같은 와인의 정체는?

와인 같은 맥주, 맥주 같은 와인의 정체는?

임지연 2022년 11월 7일

한때 미국에서는 와인과 맥주를 섞어 마시는 하이브리드 주종이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2000년대 중반, 맥주인지 와인인지 헷갈리는 합성 주종이 인기를 끌었던 것인데, 주로 미국에서 운영 중인 소규모 맥주 양조 공장들이 대기업 맥주와 와인 브랜드 상품과 경쟁하기 위해 내놓은 독특한 주종이었다.

주로 황금색 맥주이면서도 화이트 와인의 샤르도네와 비슷한 맛을 내거나, 흑맥주이면서도 포르투갈 포르투 지방에서 주로 생산되는 달콤한 향의 포티파이드 와인인 포트 와인의 맛을 내는 것들이 있었다.

이 무슨 혼종이냐고 묻는 이들도 있겠지만, 실제로 델라웨어주에 있는 도그 피시 헤드크래프트에서는 오렌지 껍질과 피노 누아를 혼합해 만든 레드&화이트 맥주를 출시했었고, 알라가시 양조장에서도 샹셀러 품종의 포도를 사용해 만든 맥주 원료에 레드 와인을 이스트로 활용해 발효한 상품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캘리포니아의 러시안 리버에서는 와인을 숙성시키는 오크통에서 최장 2년 6개월까지 잘 숙성시킨 맥주를 판매하기도 했다.

이런 알코올음료들은 맛과 향은 와인의 것과 매우 유사하면서도 보리와 홉을 발효해서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정체성은 분명 맥주로 분류된다. 거품이 나고 탄산이 있다는 점도 맥주와 같다.

하지만 이를 마주한 와인 애호가들은 조금 헷갈릴 수밖에 없다. 과일 향이 강하고 일반적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맥주보다 무려 2~3배 이상 높은 10~20%의 알코올 도수를 지닌 점이 맥주보다는 와인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사실 맥주와 와인은 다른 듯하면서도 사실은 공통점이 많은 제품이다. 가장 큰 공통점을 꼽자면 단연 두 제품 모두 효모가 당 성분을 알코올로 변형시키는 발효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오직 와인의 경우 포도를 주원료로 한 반면 맥주는 보리와 같은 발효 곡물로 제조됐다는 점이 다를 뿐.

이런 유사점 덕분일까. 최근 일부 와이너리에서는 수십 년 동안 이어온 와인 제조 기술을 맥주에 적용해 새로운 맥주 상품을 완성하는 등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벨기에의 와이너리 운영자인 칸티용(Cantillon)을 포함한 몇 곳의 와이너리에서는 와인 제조 기술을 이용해 맥주 제품을 출시한 와이너리 사례가 현지 매체를 통해 공개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들이 제조한 맥주의 가장 큰 특징은 마치 와인의 향과 맛을 그대로 담은 듯한 맥주를 출시했다는 것인데, 보리를 주원료로 한 100% 맥주이지만, 그 맛이 마치 와인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는 점에서 ‘맥주 와인’ 또는 ‘보리 와인’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이 제품들은 알코올 함량 12%로 대부분 상업적으로 출시된 기존의 맥주 도수보다 와인 도수에 더 가깝다. 하지만 이 제품을 음용해본 소비자들을 가장 당황하게 만드는 점은 다름 아닌 와인의 풍미를 이 맥주에서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맥주에서 와인 맛이 나는 것은 어떻게 구현될 수 있었던 것일까? 이에 대해 와인 전문 매거진 테이스팅 테이블에서는 발효과정에서 알코올 농도를 높이기 위해 첨가되는 당 성분이 과도할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맥주 판별 자격 검정 기관인 BJCP(The Beer Judge Certification Program)에서도 맥주의 발효 과정 중 과일 향과 감귤 맛 또는 신맛 등의 풍미를 살려 마치 와인과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상품을 제조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과일 향을 머금은 맥주는 주로 벨기에에서 생산되는 맥주 중 하나이며 오렌지 껍질 향을 품은 맥주와 체리 향을 내는 맥주 등도 제조가 가능하다. 물론 이런 신박한 향과 맛을 담은 맥주들은 대부분이 맥주보다는 와인의 신선함을 더 많이 닮았다는 점에서 애호가들조차 와인인지 맥주인지 그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게 할 정도다.

그렇다면 맥주 맛을 내는 와인을 주조하는 것도 가능할까? 이에 대해 다수의 와인 전문 매체들은 그것 역시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와인 전문 매체 Wine Enthusiast는 맥주이면서 와인 향을 품은 대표적인 상품으로 뉴질랜드의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에 넬슨 소빈 홉(Nelson Sauvin hops)을 혼합하는 사례를 꼽았다.

소비뇽 블랑은 샤르도네와 더불어 뉴질랜드의 내로라하는 대표 화이트 와인인데, 소비뇽 블랑에 맥주의 핵심을 이루는 4개 요소인 물과 홉, 몰트, 효모 중 효모와 홉을 섞어 만드는 것에서 착안, 분명 맥주에 가깝지만 그 향과 맛은 와인과 더 흡사한 것이 특징이다.

게다가 일부는 와인처럼 750ml 병에 넣어 코르크로 막아 판매되기도 하는데, 병도 와인의 것과 닮았다. 뿐만 아니라 맥주처럼 차게 마시는 게 아니라 와인처럼 섭씨 10~15도에서 보관해 마시는 것이 최고의 풍미를 느낄 수 있게 한다는 점도 와인 쪽이 치우친다. 맥주와 포도주의 장점을 결합한 하이브리드인 셈이다.

이처럼 와인과 맥주의 하이브리드가 작동할 수 있는 이유는 특정한 유형의 홉과 효모가 특정한 맛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주요하다. 마치 소비뇽 블랑과 넬슨 소빈 홉(Nelson Sauvin hops)의 조합처럼 홉이 내는 과일 향, 꽃, 풀, 솔잎, 흙, 나무 등의 다양한 향과 각기 다른 맛을 활용해 와인 맛의 맥주를 생산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심코(Simcoe) 홉은 감귤류의 과일 향과 솔잎의 풍미를 가졌고 뉴질랜드의 모투에카 홉은 열대 과일 향을 품었다. 또 필스너 맥주에 가장 많이 활용되는 체코의 사츠 홉은 꽃, 과일, 허브 등의 향을 지녔다.

또, 알코올과 탄산뿐만 아니라 맥주의 향과 맛을 결정하는 효모 역시 잘만 활용한다면 와인과 흡사한 맥주를 주조하는 가장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 대기 중의 야생 효모나 박테리아의 이용해 주조한 벨기에의 람빅 맥주와 바이젠 효모를 사용한 바이젠 맥주가 특유의 바나나 향과 정향 맛을 내는 것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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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연

평범함 속의 특별함을 찾는 인생 여행자 / logan@winevisi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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