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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몬첼로 이야기

리몬첼로 이야기

Eva Moon 2022년 8월 2일

오래전 처음으로 로마에 여행을 갔을 때 마침 로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친구가 그곳에 머물고 있어 운 좋게도 철저한 관광객으로 여행했다기보다는 로마 사람들이 자주 가는 장소를 경험하고 맛있는 것들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친구는 인생의 절반을 프랑스에서 그리고 다른 절반을 이탈리아에서 보내며 살아왔는데, 부모님은 프랑스 사람일지라도 자신은 프랑스 사람이기보다는 로마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로마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친구다.

이탈리아는 풍성하게 차려 잘 먹고 잘 마시는 게 참으로 중요한 나라이지만, 무엇이든 화려하고 다채로운 프랑스에 비해 식당과 바에서 마실 수 있는 아페리티브와 디제스티브의 선택권이 적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용량이나 가격이 비교적 가벼운 맥주를 와인만큼 자주 마시기도 하는지라 음료의 가짓수는 많지 않지만 여행자들이 넘치는 로마에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그라빠와 리몬첼로는 매번 레스토랑 메뉴의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여행 중이라면 어디에서나 현지의 음식과 음료를 최대한 맛보고 싶어 시도하는 내게 이탈리아식 디제스티프는 놓칠 수 없는 것인지라 매번 주문하려 했는데, 로마 출신의 친구가 나를 가로막는다. 그 이유는 메뉴에 가격이 쓰여 있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리몬첼로만큼은 항상 서비스로 마시는 술이라고. 서버나 식당의 주인과 대화를 좀 나누면 으레 식사의 마지막에 리몬첼로가 자연스럽게 제공이 된다고 했고, 함께했던 레스토랑에서 식사의 마지막엔 대부분 그의 말처럼 리몬첼로를 공짜로 얻어 마실 수 있었다.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리몬첼로의 유래

리몬첼로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1900년대 아주라(Azzura) 섬에서 마리아 안토니아 파라체(Maria Antonia Farace)라는 여성이 큰 레몬과 오렌지 농장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의 조카가 근처에서 바를 열어 할머니의 오래된 레시피를 따라 만든 레몬 술을 팔기 시작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988년 바를 운영하던 조카의 아들은 리몬첼로를 소규모로 만들어 상표권을 등록했는데, 좋은 레몬을 생산하기로 유명한 소렌토(Sorrento)와 아말피(Amalfi) 등에서도 레몬을 이용한 술은 만들고 마셔왔기에 정확히 그 유래를 짐작하기는 힘들다고 한다.

이 밖에도 선원의 아침과 함께 레몬 술을 마셨다거나 수도원이 중세 시대부터 레몬으로 술을 빚었다거나 하는 등의 여러 이야기가 아직까지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이야기 했던 가족의 후손인 마시모 카날레(Massimo Canale)가 등록한 상표권의 이름인 리몬첼로 디 카프리(Limoncello di Capri)가 리몬첼로를 여러 바와 레스토랑, 그리고 슈퍼마켓 등지에서 판매되고 유명해진 계기였음은 분명하다.

리몬첼로는 카프리에서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리몬첼로가 아닌 리몬치노(Limoncino)라고 같은 음료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던 밀라노와 로마와 그 아래쪽까지 눈길을 끄는 매력적인 노란색의 술은 이탈리아의 바에 진열되고 모두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보기보다 도수가 꽤 높은 술이지만 상큼한 레몬을 연상시키는 색상과 알코올 도수를 가리는 달콤함은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모두가 마셔보고 싶은 술이 되는 데 크게 기여했던 것 같다. 다른 디제스티프 음료와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일반 냉장고의 온도보다도 훨씬 차가운 온도에서 보관하고 서비스하는 것인데, 이는 리몬첼로가 뜨겁고 무더운 여름을 나기에 최적인 음료로 자리잡는 데 한몫 했다.

레몬으로 만든다고 다 같은 리몬첼로는 아니야.

오늘날 여느 슈퍼마켓에서 여러 종류의 리몬첼로를 구입할 수 있게 되었지만, 대량으로 생산하는 리몬첼로와 아티잔 방식으로 생산되는 리몬첼로는 꽤 맛이 다르다. 대량 생산된 리몬첼로도 매우 차가운 온도에서 마시기에 나쁘지 않지만, 포도 품종과 만드는 방식을 관리하듯 생산지와 그 지역을 관리하는 아티잔 리몬첼로는 한 번쯤 맛봐야 할 음료다.

다양한 기후를 가진 소렌토의 두 지역에서 생산하되, 바다 옆에서 전통적인 방식을 따라 레몬을 기르고 매년 2월에서 10월까지 손으로 수확된다. 리몬첼로를 만들기 위해 중요한 재료는 레몬의 껍질이라 농약이나 약품으로 처리되지 않은 과실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풍부한 아로마를 지닌 잘 자란 레몬으로 만든 리몬첼로는 빠르게 목으로 털어 넣기에 아쉬울 만큼 훌륭한 맛을 자랑한다.

리몬첼로를 만들어보았다.

리몬첼로가 이탈리아의 디제스티프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유럽의 여러 나라가 그러하듯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유럽의 도시들에 그 식문화 음료의 경계가 모호하다. 이탈리아와 가까운 니스엔 레몬과 오렌지 나무를 쉽게 볼 수 있고, 니스와 가까운 도시인 망통(Menton)은 매년 오렌지 레몬을 총망라한 감귤류 계열의 축제를 열 정도로 프랑스의 감귤류 생산지로 잘 알려져 있다.

때문에 망통의 중심가엔 리몬첼로, 그와 유사한 디제스티프를 판매하는 상점들이 있는데, 프랑스의 남부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레몬 산지 정도로 좋은 레몬을 생산할 수 없겠지만 이탈리아의 분위기를 프랑스에서도 리몬첼로를 통해 느껴보려 하는 것 같다. 레몬은 일 년 내내 수확할 수 있는 과실 중 하나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레몬이 자랄 수 있는 따뜻한 날씨를 가진 곳이라면 사시사철 녹색 혹은 노란색으로 주렁주렁 달린 레몬을 바라보는 기쁨이 있다.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시골집엔 몇 년 전 화분에서 정원으로 옮겨 심어 몇 년 만에 무성하게 자란 레몬 나무가 있다. 요리나 칵테일에 쓰는 걸로는 나무에 열린 레몬을 다 쓰지 못해 생각해낸 묘안은 리몬첼로 만들기 였는데, 주재료인 레몬은 이미 충분히 준비가 되었으나 베이스 술인 알코올을 구입하는 게 쉽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특정한 라이센스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시중에서 높은 도수의 증류주를 구하기가 어려워 번거롭지만 의사로 일하다 최근 퇴직하신 이웃이 높은 도수의 술을 구해주었다. 온라인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많은 홈메이드 리몬첼로의 레시피는 보드카를 쓸 것을 제안하지만, 이탈리아에서 마시는 제대로 된 리몬첼로를 만들어보고 싶다면 곡물로 만든 아주 높은 도수의 증류주를 사용할 것으로 권하며 만들어 보았던 레시피는 아래와 같다.

<2.5 리터 분량의 정통 리몬첼로 만들기>

재료

  • 중간 크기의 유기농 레몬 10개
  • 껍질이 주재료이기 때문에 잔류 농약이 없고, 레몬 껍질에 왁스 처리가 되지 않은 것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 50도 이상의 무색무취의 증류주 1750ml
  • 200-800ml의 설탕

만드는 법

1. 필러를 이용해 레몬의 겉껍질을 오려낸다. 흰색 내피는 쓴맛을 더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노란색 부분의 껍질을 얇게 벗긴다. 필요하다면 필러로 벗겨낸 껍질의 흰 부분은 칼을 이용해 제거한다.

2. 레몬 껍질에 술을 부어 최소 4일에서 한 달까지 향과 맛이 녹도록 직사광선이 없는 공간에 밀폐해 보관한다.

3. 종이필터나 거름망을 이용해 껍질을 술에서 제거한다.

4. 물과 설탕을 1:1 비율로 섞어 설탕을 녹이고 데워 설탕 시럽을 준비한다. 레시피는 술과 시럽을 동량으로 만들어졌으나 준비할 설탕 시럽의 양은 원하는 도수와 리몬첼로의 당도를 감안해 조절한다.

5. 술에 시럽을 천천히 섞으며 붓는다. 맛을 보며 시럽의 양을 더한다.

6. 공병에 완성된 리몬첼로를 담는다. 냉장고에 보관하면 약 한 달까지, 냉동실에선 일 년 이상 보관이 가능하다. Sal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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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 Moon

파리 거주 Wine & Food Curator 음식과 술을 통해 세계를 여행하고, 한국과 프랑스에 멋진 음식과 술, 그리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합니다. / oli@winevisi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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