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링에 관한 공식은 많고도 많다. 와인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알 법한 ‘생선엔 화이트, 육류엔 레드’부터 시작해서 석화는 샤블리와, 푸아그라는 소테른과 짝꿍이라는 이야기까지. 이 속설들은 과연 모두 진실일까? 답부터 이야기하자면 가끔은 그렇고, 가끔은 그렇지 않다. 재료를 요리하는 방식과 곁들이는 소스, 그리고 당신의 취향이 페어링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변수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와인 페어링은 밸런스 게임이라는 사실만 기억한다면 응용은 그리 어렵지 않을 테니 말이다.
와인과 식재료의 밸런스 게임
요즘 유행하는 밸런스 게임을 떠올려 보자. 선택지끼리 난이도 차이가 너무 많이 나면 게임은 의미와 재미를 잃고 만다. 와인 페어링도 기본적으로 밸런스 게임이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압도하여 고유의 풍미를 앗아가 버리지 않고, 비슷한 파워로 서로를 서포트해야 하기 때문. 아래는 전문가에게 인증받거나 와인 교과서에 나온 내용은 아니지만 페어링에 대한 각종 조언을 참고하여 내가 실생활에서 자주 이용하는 페어링 방법이다.
우선은 당신이 즐겨 마시는 와인의 종류를 가벼운 느낌부터 무거운 느낌까지 쭉 나열해 보자.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
*샴페인은 루아르의 소비뇽 블랑부터 부르고뉴 피노 누아까지로 걸쳐 둔다.
다음으로는 육해공 식재료를 마찬가지로 가벼운 느낌부터 무거운 느낌까지 나열한다.
이제 각 목록에서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들끼리 매치해 보자. 예를 들어 흰살 생선과 조개류는 피노 그리지오나 소비뇽 블랑, 언오크드 샤르도네와 페어링하는 식이다. 요리에 곁들이는 소스가 가벼운 편(레몬주스와 올리브오일, 비네그레트 등)이라면 같은 범위 내에서 조금 더 왼쪽의 와인을, 무거운 편(버터, 크림, 그레이비)이라면 조금 더 오른쪽의 와인을 고르면 된다. 요리법에 따라 움직여 볼까? 찌거나 데친다면 조금 더 왼쪽으로, 크리스피하게 굽거나 튀긴다면 더 오른쪽으로 가도 좋다.
생선에 레드 와인을 페어링 해도 될까?
삼척동자도 아는 ‘생선엔 화이트, 고기엔 레드’ 공식을 무시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가끔 고기 요리에 유질감 있는 화이트를 마시지만, 생선에 레드는 아무래도 겁이 난다. 자칫 비린 맛이 강조되어 입맛을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레드 와인에 함유된 철분이 생선이나 어패류의 비린 맛을 강조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럼에도 생선과 레드 와인 조합에 도전해 보고 싶다면 와인은 타닌이 적고 바디감이 가벼운 것으로 고르자. 생선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연어나 참치처럼 색이 있고 기름기 많은 생선은 비교적 레드 와인과 잘 어울리는 편이다. 그러나 생선의 종류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요리 방식과 곁들이는 소스. 숯 향이 올라오도록 바삭하게 굽거나 고기처럼 레드 와인 소스에 요리했다면 레드 와인과 잘 어울릴 확률이 높아진다. 너무 오키하지 않고 산도가 탄탄한 피노 누아, 가볍고 상큼한 보졸레 정도면 생선의 맛을 압도하지 않으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해산물과 관련하여 잘 알려진 또 다른 공식은 바로 석화에는 샤블리가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이 둘이 잘 어울리는 것은 샤블리 지역이 과거 바다였고 그로 인해 샤블리의 토양에 조개껍질―미네랄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속설도 존재한다(이 속설의 과학적 근거는 빈약하다). 물론 샤블리와 석화의 조합은 훌륭하다. 샤블리 특유의 드라이함과 라임 아로마의 청량함, 짭짤한 미네랄리티가 신선한 굴의 풍미를 끌어올려 주니까. 하지만 더 맛있게 먹어 보겠다고 덜컥 비싼 샤블리를 지르지는 말자. 샤블리 프리미에 크뤼, 그랑 크뤼 중에는 오크 숙성한 것이 많아 굴의 비릿함을 강조할 가능성이 높다.
양념치킨에 어울리는 와인을 찾아라!
레드와 화이트의 공식에서 가장 자유로운 중간지대가 어딘고 하니, 바로 가금류다. 고기는 고기지만 붉은 고기처럼 무겁거나 육향이 강하지 않고, 다양한 소스와 조리법으로 요리할 수 있어 스파클링, 화이트, 로제, 레드 할 것 없이 다양한 와인을 매치할 수 있다. 물론 가금류 요리에도 밸런스 게임의 기본 법칙은 적용된다. 닭고기보다는 오리고기가 육향도 강하고 기름기도 많은 편이니 조금 더 무게감 있는 레드 와인과 잘 어울릴 것이다. 그렇지만 오렌지 소스를 곁들인 오리 가슴살이라면? 살짝 달콤한 슈페트레제 등급의 리슬링과 멋진 호흡을 보여줄 수 있다. 닭고기를 크림소스에 요리해 부드러움을 더했다면 와인도 부드럽고 풍미가 깊은 오크드 샤르도네로 준비하자.
한국인이 가장 자주 먹는 가금류 요리를 꼽으라면 단연 치킨일 것이다.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는데 닭을 튀겼으니 치킨은 맛이 없으려야 없을 수 없는 음식이다. 한 가지 단점이라면 한두 조각 먹다 보면 느끼해서 첫 입의 감동이 오래가지는 않는다는 것. 치킨에 새콤달콤 치킨 무를 곁들이는 것도, 탄산으로 청량감을 더해주는 맥주가 치킨의 짝꿍인 것도 느끼한 맛을 잡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가장 논리적인 선택은 바로 산미가 있는 스파클링 와인이다. 톡톡 터지는 탄산이 튀김옷의 크리스피함과도 잘 어우러진다. 매콤 달콤한 양념치킨이라면 와인이 쓰거나 시게 느껴지지 않도록 어느 정도 당도가 있는 것으로 고르자. 핵과일 아로마와 달콤함을 고루 갖춘 모스카토 다스티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가장 쉽고도 훌륭한 조합, 고기와 레드 와인
이제 본격적인 고기 요리로 넘어가 볼까. 우선 돼지고기부터 짝을 찾아 주자. 돼지고기는 흰색 육류와 붉은 육류 그 어디쯤, 애매한 자리를 차지한다. 너무 가볍지 않으며 산도와 당도의 밸런스가 잘 잡힌 화이트라면 느끼함을 잘 잡아주면서도 파워에서 밀리지 않을 것이다. 로즈메리, 오레가노 등 허브를 이용해 조리했다면 화려한 향을 자랑하는 비오니에도 좋겠다. 색도 맛도 진한 바비큐 소스를 곁들인다면 그르나슈나 루비 포트가 의외의 하모니를 보여줄 것이다.
묵직한 레드 와인과 소고기, 양고기의 페어링은 그다지 실패할 일이 없다. 물론 안심처럼 기름기와 육향이 적은 부위라면 섬세하고 가벼운 피노 누아나 타닌이 적고 붉은 과실의 아로마가 매력적인 메를로가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시라보다는 잘 어울린다. 마블링 잘 된 한우 채끝 등심이나 양 갈빗살처럼 기름이 풍부한 부위라면 카베르네 소비뇽, 시라와 더불어 네비올로, 템프라니요 등의 품종이 시너지를 낼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