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솟은 건물들 사이를 잰걸음으로 뛰는 듯 걷는 직장인들의 도시 뉴욕. 좁은 도시를 획을 그은 것처럼 구획한 뉴욕시 곳곳엔 식사 시간도 거른 채 채소와 햄을 적당히 섞어 넣은 샌드위치 한두 장이 담긴 브라운 백을 들고 바쁜 하루를 시작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미국인들 가운데서 스트레스 지수가 가장 높은 도시에 매년 뉴욕시가 링크되는 것도 이즈음 되면 당연지사로 보일 정도다.
그래서인지, 퇴근 시간만 되면 골목 어귀에 한둘씩 불을 켜는 레스토랑과 와인바에는 유독 도심 생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짧은 밤을 아쉬워하는 뉴요커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탓에 유독 알코올 중독의 위험성이 주의 깊게 다뤄지는 곳도 바로 뉴욕이다. 미국 상당수 도시에서의 주류 거래 방침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지만, 뉴욕 시에서의 주류 취급은 한층 더 조심성 있게 다뤄진다는 것이 정설이다. 소비자의 입자에서 주류를 구매할 때마다 매번 성인 인증을 받은 후에야 구매가 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주류 판매자의 경우에도 정부에서 허가증을 발부받은 일부 주류 전문 취급 상점에서만 제한적으로 판매가 허가된 상태다.
그 때문에 주류를 판매하는 상점과 레스토랑, 바 역시 매우 제한적인 장소에 특정돼 운영 중이다. 한국이나 일본, 중국과 같은 국가에서 대부분의 식당과 레스토랑에서 쉽게 주류를 판매하고 구입할 수 있는 것과 그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 이런 분위기 탓에 일각에서는 미국에서는 술보다 마약 거래가 더 쉽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에도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어서 관심이 집중됐다. 가장 먼저 주류 취급에 대한 변화를 시작한 곳은 다름 아닌 뉴욕 주다. 미국에서도 주류 취급이 가장 엄격하기로 소문난 지역이었던 뉴욕에서 술에 대한 엄격한 빗장을 풀고 알코올 ‘테이크아웃’이 가능한 시대를 열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
기대감이 고조된 가장 특별한 계기는 캐시 호컬 뉴욕주 주지사가 지난 1월 신년사를 통해 알코올에 대한 테이크 아웃 합법화를 영구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는 입장을 공개한 것으로 시작됐다. 캐시 호털 주지사는 당시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기자들과의 대화 중 와인이나 칵테일과 같은 알코올 제품을 포장 또는 배달 서비스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에 대해 지지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는 “코로나19로 뉴욕 소재의 수천 곳의 바와 레스토랑이 문을 닫아야 했다”면서 “지난 한 해의 뉴욕 상황에 비추어 필수 방역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침이었지만, 그 일로 인해 뉴욕 주민들은 영혼의 단짝인 와인과 칵테일을 즐길 수 없는 암흑과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뉴욕 주는 약 100억 달러 규모의 주 복구 비용을 투입해 최종 예산안을 발의, 주 의회와 상원 의회까지 통과될 수 있도록 해당 법안을 영구적으로 지지할 것”이라고 제법 상세한 계획안을 구상했다.
그의 발표가 있은 직후 뉴욕주 레스토랑 협회는 주지사의 공식 입장에 대해 절대적인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특히 이에 앞서 지난 2020년 3월, 코로나19 사태가 처음 발생했을 당시 뉴욕 주지사였던 앤드루 쿠오모가 이와 유사한 내용의 임시 조치를 실시했던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주류에 대한 테이크 아웃 및 배달 서비스를 허용한 것은 일정 기한의 매우 한정적인 기간을 허가한 조치였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한계가 있었다.
실제로 당시 쿠오모 전 주지사의 행정 명령으로 시행됐던 정책은 지난해 6월을 시점으로 기한이 만료되면서, 이전과 같은 알코올에 대한 주류 취급은 여전히 어려운 상태가 됐다는 지적을 받아왔던 것.
이와 관련해, 뉴욕시 맨해튼 한복판에서 유명 와인바 ‘러피안과 킨드레드’의 공동 운영자이자 와인 담당 이사인 알렉시스 퍼시벌은 “이제 실내 식사가 가능하다는 시 정책이 유지되고 있다”면서 “시민들의 즐겁고 황홀한 저녁 식사를 위해 우리는 더 많은 매력적인 와인들을 구비해 판매해야 한다는데 입장을 같이한다. 고객들의 즉각적이고 변화하는 요구에 맞춰서 유연성 있는 알코올 판매 방식이 도입되어야 할 시대가 왔다”고 했다.
특히 이 정책이 시행될 경우 뉴욕 주민들의 와인에 대한 접근성이 크게 높아지고, 와인의 대중화 역시 한 걸음 역사적 진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조된 분위기다.
뉴욕주 레스토랑협회가 후원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뉴욕 시민의 약 78%가 알코올 판매 및 거래의 자율적 행위에 대한 영구적인 합법화를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이 같은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표하는 이들도 있다. 뉴욕의 알코올 취급 전문 업체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단체인 메트로PSA는 성명서를 통해 “이번 정책은 주류 전문점들의 생계권을 박탈하고, 공중 보건을 위기로 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면서 “향후 주 정부는 미성년자들의 알코올 중독과 과도한 거래행위, 주류 유통 및 판매 시스템의 붕괴 등을 막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 제기된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상당수 레스토랑 및 와인 바 관계자들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하는 등 뜨거운 관심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는 분위기다.